(16) 복합쇼핑몰 | 신세계 vs 롯데
국내 대표 유통 맞수 ‘신세계’와 ‘롯데’가 복합쇼핑몰 사업을 놓고 제대로 격돌한다. ‘스타필드’를 앞세워 순항 중인 신세계에, 롯데가 새 브랜드 ‘타임빌라스’로 맞불을 놓은 모습이다.
새 경쟁 구도에 ‘장외 설전’까지 더해지며 업계 관심이 뜨겁다. 타임빌라스 미래 청사진을 공개하는 최근 기자간담회에서 정준호 롯데백화점 대표가 스타필드와 신세계그룹 사업을 깎아내리는 듯한 발언을 하자, 신세계그룹 관계자가 즉각 반박에 나서는 등 신경전이 치열하다.
롯데백화점이 복합쇼핑몰 브랜드 ‘타임빌라스’를 앞세워 2030년까지 국내외 쇼핑몰 사업에 약 7조원을 투자하는 청사진을 공개했다. 사진은 타임빌라스 수원점 매장. (롯데백화점 제공)
롯데 “스타필드 잡아라” 천명
‘미래 쇼핑몰’에 7조원 쏟아붓기로
국내 복합쇼핑몰 사업을 대표하는 1위 브랜드는 역시 신세계 스타필드다. 쇼핑부터 문화·레저·관광에 이르기까지, 전에 없던 체험형 쇼핑몰로 각광받으며 그룹 정체성을 대표하는 브랜드로 성장했다. 지난 2016년 약 1조원을 들여 만든 ‘스타필드 하남’을 시작으로 올해 1월 선보인 ‘스타필드 수원’에 이르기까지, 총 5개 지점을 운영하며 순항 중이다. 축구장 70개와 맞먹는 크기(연면적 46만㎡)를 자랑하는 스타필드 하남은 여전히 규모나 매출 면에서 국내 최대 복합쇼핑몰로 명성을 공고히 하고 있다.
실적도 상승세다. 스타필드를 운영하는 신세계프라퍼티의 올해 2분기 매출은 752억원으로 전년 동기(659억원) 대비 14.1% 늘었다. 영업이익(7억원) 역시 전년 대비 60억원 늘어나며 흑자전환에 성공했다.
올해 문을 연 ‘스타필드 수원’ 효과가 지대하다. 오픈 초기 ‘재난 문자’가 올 정도로 사람이 몰려 화제가 됐던 스타필드 수원은 개점 1년이 다 돼가는 요즘에도 주말이면 인근 도로가 마비될 만큼 성업 중이다. 올해 1분기 매출 514억원, 영업이익 150억원을 달성했던 스타필드 수원은 2분기에도 상각 전 영업이익(EBITDA) 161억원을 기록하며 좋은 흐름을 이어가고 있다.
스타필드 선전을 지켜보던 롯데도 드디어 칼을 빼들었다. 롯데백화점은 최근 2030년까지 국내외 쇼핑몰에 7조원을 투자하는 ‘미래형 쇼핑몰 사업’을 본격화하기로 했다. 같은 기간 인천 송도·대구 수성·서울 상암·전북 전주에 신규 쇼핑몰을 4곳 세우는 등 국내 쇼핑몰을 13개까지 늘리고 매출 6조6000억원 달성을 목표로 삼았다. 스타필드를 꺾고 업계 1위로 올라서겠다는 포부도 밝혔다.
올해 10월 24일 수원점 그랜드 오픈에 나선 ‘타임빌라스’가 중심에 있다. 타임빌라스는 롯데가 올해 5월 새롭게 선보인 쇼핑몰 브랜드다. 앞으로는 타임빌라스 브랜드를 중심으로 전국에 쇼핑몰을 늘려간다는 계획이다.
타임빌라스는 ‘리뉴얼’에 초점을 맞춘 브랜드다. 기존 롯데가 운영 중이던 백화점과 아웃렛 등을 증축·재단장해, 타임빌라스라는 새 간판을 내걸고 쇼핑몰 사업에 나선다는 계획이다. 타임빌라스 수원점 역시 기존 롯데백화점 수원점과 롯데몰 수원을 통합해 재탄생시킨 결과물이다. 기존 면적 70%를 바꾸는 등 롯데백화점 역사상 최대 규모 리뉴얼을 통해 5월 브랜드를 타임빌라스로 전환한 후 최근 들어 정식 개장에 나섰다.
타임빌라스로 브랜드 전환 후 수원점 반응이 나쁘지 않다. 신규 고객 매출은 전년 대비 40% 이상 늘었고 수원 외 지역 고객 매출도 20% 이상 확대됐다. 우수 고객인 에비뉴엘 고객 1인당 매출 역시 최대 90% 가까이 증가했다.
롯데가 ‘타임빌라스’에 사활 건 이유
백화점 업황 부진…구조조정 겸사겸사
롯데가 ‘쇼핑몰’을 미래 먹거리로 내세운 데는 이유가 있다. 온라인 쇼핑에서는 쿠팡 등 이커머스 플랫폼에 밀리고 주력인 오프라인 백화점 업황은 점점 내리막을 걷고 있기 때문이다. 백화점은 올해 상반기 기준 편의점에 매출 1위 채널을 위협받고 있을 정도로 상황이 안 좋다. 롯데백화점의 올해 2분기 매출은 8361억원으로 전년 동비 대비 0.7% 늘어나는 데 그쳤다. 영업이익은 589억원으로 같은 기간 9% 줄었다.
반면 쇼핑몰 사업 성과는 두드러진다. 지난해 롯데가 베트남에 문을 연 ‘웨스트레이크 하노이’는 개점 1년여 만인 지난 9월 누적 방문객 1000만명을 돌파하며 순항 중이다. 4개월 만에 매출 1000억원을 돌파한 데 이어 올 연말에는 3000억원 달성이 점쳐지는 상황이다.
김정욱 메리츠증권 애널리스트는 “고물가와 이커머스 약진으로 백화점을 찾는 고객이 점점 줄어들고 있다. 팬데믹 이후 유입된 중산층 소비자 이탈로 기존점 성장률 개선은 어려워 보인다”며 “고객 시간 점유율을 높일 수 있는 ‘백화점+쇼핑몰’ 출점에 양 사가 집중하는 건 자연스러운 흐름”이라고 설명했다.
백화점 산업 자체가 부진하면서 과거 주효했던 롯데 특유의 ‘다점포’ 전략도 이제는 시대에 뒤처지게 됐다. 현재 롯데백화점이 운영하는 백화점 점포는 전국 32개로, 신세계(13개)·현대(16개)와 비교하면 2배 가까이 많다. 롯데백화점 골칫거리 중 하나인 다수의 노후 점포를, 수익성 좋은 신규 쇼핑몰 브랜드로 탈바꿈시키면 오히려 전화위복이 될 수도 있다. 한 유통업계 관계자는 “현대백화점은 최신 트렌드를 선도한다는 이미지가, 신세계백화점은 프리미엄 이미지로 자리 잡은 반면 롯데백화점은 현재 포지셔닝이 애매한 상황”이라며 “전국에 위치한 여러 백화점 점포를 타임빌라스로 새 단장하는 과정에서, 자연스러운 구조조정과 신성장동력 찾기를 동시에 모색하는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경기 수원은 복합쇼핑몰의 새로운 격전지로 부상했다. 올해 1월 문을 연 ‘스타필드 수원’에 이어 ‘타임빌라스 수원’까지 들어서며 치열한 경쟁이 예고된 상황이다. 사진은 스타필드 수원 별마당 도서관. (매경DB)
스타필드 견제…치열한 장외 설전
롯데 “디자인 단조롭고 객단가 낮아”
롯데 타임빌라스는 필연적으로 스타필드와 맞붙을 수밖에 없는 구조다. 인구절벽으로 내수 시장이 감소하는 상황에서 한정된 고객 시간을 자사몰로 끌어들이려면 어떻게든 타사 점유율을 빼앗아 와야 한다.
최근 타임빌라스 그랜드 오픈을 둘러싸고 양 사 신경전이 치열하게 펼쳐진 배경도 이런 맥락에서 해석할 수 있다. 기자간담회 당시 정준호 대표는 “2030년쯤 경쟁사가 화성에 대규모 프로젝트를 한다는 계획을 발표했지만, 100만평 정도 되는 규모를 과연 개발할 수 있겠느냐는 의문이 있다”며 신세계 화성국제테마파크 사업을 대놓고 겨냥했다. 타임빌라스 수원을 스타필드와 수차례 비교하기도 했다. 타임빌라스 건축 디자인 설명 시간에는 스타필드 수원 사진을 보여주면서 ‘디자인이 단조롭다’는 취지로 말하는가 하면 “스타필드 수원 객단가가 5만원 정도인데 타임빌라스 수원은 약 12만원”이라고 설명했다.
정 대표 발언에 신세계그룹도 발끈하고 나섰다. 김민규 신세계그룹 경영전략실 경영지원총괄 부사장은 “롯데백화점이 대규모 글로벌 합작 개발 사업 경험이 없어서 그런 말을 한 것 같다”며 “신세계 재무 상황을 걱정할 만큼 시장에서 (롯데를) 여유롭게 보진 않는 것 같다. 스타필드 수원 객단가 역시 5만원이 아닌 12만5000원”이라고 받아쳤다. 감정싸움으로 번지는 양상이 나타나자 롯데백화점 측은 반나절 만에 신세계 측에 사과의 뜻을 전하면서 논란은 일단락됐다.
한 유통업계 관계자는 “장외 설전이 벌어질 만큼 양 사 모두 복합쇼핑몰 사업에 사활을 건 모습”이라며 “후발 주자인 타임빌라스가 내년까지 어떤 성과를 보여줄 수 있는지가 관전 포인트”라고 말했다.
[나건웅 기자 na.kunwoong@mk.co.kr]
[본 기사는 매경이코노미 제2283호 (2024.11.06~2024.11.12일자) 기사입니다]
나건웅 매경이코노미 기자(wasabi@m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