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 각종 규제 대대적 완화나서
자율 주행 패권을 둘러싼 미·중 경쟁이 한층 치열해질 전망이다. 미국에서 트럼프 당선 이후 보름 만에 대대적인 자율 주행 규제 완화가 예고되면서다. 중국은 과감한 규제 완화로 글로벌 자율 주행 기술 경쟁에서 앞서 나가고 있다. 도시 20곳 안팎에서 로보 택시 운행이 가능해, 지금까지 수억㎞에 달하는 주행 데이터를 쌓았다. 여기에 전기차와 소프트웨어 기술력까지 더해져 자율 주행 분야에서 급성장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이에 위기를 느낀 미국이 자율 주행 업체들을 옥죄었던 규제를 완화해, 중국과 전면전에 나설 거란 전망이 나온다.
21일 블룸버그통신에 따르면, 트럼프 2기 행정부는 완전 자율 주행 차량에 대한 규제를 손보는 것을 교통부의 최우선 과제로 삼고 있다. 현재 미국에선 자율 주행 규제가 주(州) 단위로 흩어져 있는데, 연방 차원에서 통합된 체계를 마련해 효율성과 일관성을 높이겠다는 취지다. 또, 미 도로교통안전국(NHTSA)이 규정하는 각 제조사의 연간 완전 자율 주행 차량 운행 대수 제한(2500대)도 완화될 것으로 전망된다.
그래픽=백형선
中 자율 주행에 선전포고하는 美
미 정부 자율 주행 규제 완화의 수혜를 볼 업체로 테슬라가 꼽힌다. 일론 머스크 CEO(최고 경영자)는 지난달 행사에서 2026년까지 페달과 운전대가 없는 ‘로보 택시’를 대량 생산하겠다고 밝혔다. 당장 내년부터 테슬라의 일부 차량을 캘리포니아주에서 완전 자율 주행 방식으로 운행시킬 것이라고도 했다. 당초 이런 계획은 규제 때문에 어렵다는 전망이 우세했지만, 트럼프 당선 후 상황이 완전히 달라졌다. 블룸버그통신은 “테슬라의 미래를 자율 주행 기술과 인공지능(AI)에 건 일론 머스크에게 (규제 완화가) 직접적인 이익이 될 것”이라고 했다.
최근 자율 주행 사업에 속도를 내고 있는 미국 기업들도 수혜를 볼 수 있다. 구글 자회사 웨이모는 지난달 현대차와 전략적 파트너십을 맺고, 전기차 아이오닉 5를 자사 로보 택시 서비스에 투입하겠다고 밝혔다. 제너럴모터스(GM)의 자율 주행 기업 크루즈도 작년 10월 인명 사고 이후 중단했던 자율 주행차 운행을 최근 캘리포니아 등에서 재개했다.
중국 기업들은 이제 해외시장 진출을 노리고 있다. 중국 바이두는 지난달 글로벌 고객을 대상으로 설계한 새 플랫폼 ‘아폴로 10.0′을 공개했다. 싱가포르·중동 등 글로벌 시장을 대상으로 로보 택시 서비스(아폴로 고)를 출시하겠다는 계획도 발표했다. 중국에서 막대한 데이터를 쌓아 기술력을 높였고, 이제는 해외에서도 두각을 드러내겠다는 것이다. 중국 자율 주행 스타트업 위라이드도 지난달 대형 SUV 로보 택시 ‘GXR’을 내놨다. 1열 좌석을 없애 내부 공간을 크게 확보한 택시다.
“전기차 없는 자율 주행은 반쪽짜리”
미국에서 인명 사고로 자율 주행차 운행 허가 등이 취소되는 사이, 중국은 정부 지원을 등에 업고 세계 최대 자율 주행 시험장으로 거듭나고 있다. 중국 바이두는 2021년 로보 택시 서비스를 시작했음에도 누적 운행 거리가 1억㎞ 안팎이다. 반면, 이보다 1년 앞서 서비스를 시작한 미국 웨이모는 현재까지 미국에서 사람이 타지 않은 누적 운행 거리가 3000만㎞ 수준이다.
올 들어 테슬라가 자사의 완전 자율 주행(FSD·Full Self-Driving) 시스템을 중국에서 시험하겠다고 밝힌 배경이다. 중국은 로보 택시를 좁은 시범 구역에서 운행하는 대다수 국가와 달리 도시 전체에 내보내, 매달 1000만㎞ 이상의 운행 데이터를 쌓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다만 트럼프 2기 행정부의 규제 완화만으로, 자율 주행 산업의 판도를 바꾸기는 힘들 것이라는 회의론도 있다. 트럼프 당선인이 전기차 대신 내연차 중심의 자동차 정책을 예고한 상황이기 때문이다. 수많은 전자 부품이 들어가는 자율 주행차는 고성능 반도체를 기반으로 한 소프트웨어 기술이 매우 중요하고, 전력을 안정적으로 공급하기 위해 대형 배터리가 탑재된 전기차에서 최적화된 성능이 구현된다는 것이 전문가들 의견이다. 자율 주행 규제 완화만으로는 ‘반쪽짜리’ 정책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이항구 자동차융합기술원 원장은 “이미 중국이 더 많은 자율 주행 데이터를 쌓은 상황에서, 전기차와 함께 가지 않는 자율 주행 정책으론 한계에 부딪힐 가능성이 크다”고 했다.
이영관 기자 ykwan@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