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용 융자 잔고 16조대로 떨어져
일러스트=김현국
한국 증시가 유동성 부족과 투자 심리 위축으로 활력을 잃어가고 있다. 주가 상승에 대한 기대가 꺾이면서 신용 융자 잔고도 16조원대까지 감소해 연중 최저치를 기록했다. 신용 융자 잔고는 통상 개인 투자자가 향후 주가가 오를 것이라고 예상하면서 증권사에서 돈을 빌려 주식을 매수한 금액을 말한다.
21일 한국거래소에 따르면, 연초에 하루 평균 22조~23조원에 육박하던 주식 거래 대금이 최근 15조~16조원대까지 떨어졌다. 주식 거래 대금은 주식시장 참여자의 규모와 거래 정도를 나타내기 때문에 증시 침체 여부를 평가하는 대표적인 지표다. 거래 대금 감소는 그만큼 주식시장에 대한 관심이 약해지고 신뢰도도 하락했다는 의미다.
그래픽=김현국
✅‘빚내서 투자’ 신용 잔고 연중 최저
금융투자협회에 따르면, 지난 20일 기준 신용 융자 잔고는 16조6921억원으로 올해 최저치를 기록했다. 코스피에서 9조8451억원, 코스닥에서 6조8470억원 규모다. 사흘 연속 16조원대를 기록하면서 지난 9월 이후 2개월 만에 17조원 밑으로 내려앉았다. 신용 융자 잔고가 감소하고 있다는 의미는 공격적인 투자가 사라지는 등 시장 전반에 투자 심리가 약해졌다고 해석할 수 있다. 높은 변동성이 부담돼 증시에 과감히 투자하는 투자자들이 없다는 신호다. 반면 단기에 자금을 투입해 반등하는 종목의 수익만 먹고 빠지려는 움직임은 늘고 있다. 금융투자협회에 따르면, 위탁매매 미수금은 지난 8월 이후 다시 1조원을 넘어섰고, 위탁매매 미수금 대비 실제 반대매매 금액도 100억원대로 늘었다. 미수금은 거래 당일을 포함해 3거래일 내에 갚지 못하면 반대매매가 진행된다.
코스피가 최근 급락한 가운데 단기 반등을 노리고 레버리지를 사용한 뒤 자금을 빼려는 투자자가 늘어났으나 주가가 지지부진하면서 미수금을 갚지 못한 것으로 풀이된다.
증권가에선 단기 투자로 수익을 내려는 개미들이 가상 화폐 쪽으로 눈을 돌리면서 자금이 크게 빠져나가고 있다고 분석한다. 이미 국내 코인 관련 거래소에서 거래되는 금액은 하루 20조원에 육박해 코스피+코스닥 하루 평균 거래 대금(16조원)을 크게 웃돈다. 증권업계 관계자는 “비트코인 같은 가상 화폐가 주식시장의 개인 자금을 잠식하고 있다는 게 업계 정설”이라고 말했다.
가상 화폐는 진입 장벽이 거의 없는 데다 주식처럼 종목을 분석할 필요도 없으면서 24시간 거래되기 때문에 개미들이 손쉽게 베팅한다는 것이다.
30대 회사원 이모씨는 “1년 넘게 기다려도 수익이 나지 않아 화가 나서 코스닥 주식은 손절하고 가상 화폐 투자를 시작했는데, 코인 수익률이 월등히 좋다“고 말했다. 가상 화폐 거래소인 빗썸 관계자는 “신규 가입자 수가 하루 평균 2000명이 넘을 정도로 최근 참여자가 늘고 있다”고 말했다.
✅50대 이상 57%… 늙어가는 韓 증시
가상 화폐 등 대체 투자처로 자금이 이동하면서 한국 증시 자금의 노후화 조짐도 나타나고 있다. 젊은 세대가 국내 주식에서 이탈하는 경향을 보이면서 주식 보유자 연령대가 고령화하고 있는 것이다.
NH투자증권이 국내 주식(KOSPI 200) 보유자 207만명을 분석한 자료에 따르면, 전체의 57%가 50대 이상이며, 30대는 13%, 40대는 26%를 차지했다. 반면 해외 주식 투자에서는 젊은 층 비율이 훨씬 높았다. 해외 주식 보유자(70만명) 중 30~40대가 전체의 56%를 차지해 절반 이상이었고, 50대 이상은 20%에 불과했다.
특히 30대와 60대 이상 투자자의 성향은 국내 주식과 해외 주식 선호도에서 격차가 컸다. 60대 이상은 고배당 위주의 국내 주식을 선호하는 반면, 고수익을 추구하는 30대는 해외 주식 선호도가 압도적으로 높았다. 대장주인 삼성전자 주주의 연령 분포에서도 고령화 현상은 뚜렷하다. NH투자증권 통계에 따르면, 삼성전자 주주 76만명 중 60대 이상 비율은 35%로 가장 높았다. 반면 30대는 전체의 10%에 그쳐 젊은 세대의 삼성전자 사랑은 상대적으로 낮은 수준에 머물렀다. 증권업계 관계자는 “고령자들은 아무래도 국내 시장 편중 투자를 뜻하는 홈바이어스(home bias)가 있어 삼성전자 주식을 선호하는 편“이라며 ”하지만 시장 부진이 장기화되면 수요 기반이 약해지면서 결국 모든 시장 참여자가 외면하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이경은 기자 diva@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