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억만장자들의 투자 전략은
‘트럼프 2.0시대’를 앞두고 글로벌 금융시장이 출렁이고 있다. 미국 경제 전망도 마냥 밝지는 않다. 트럼프發 무역전쟁이 예고됨에 따라 일각에선 경기 침체 우려가 고개를 들고 있다. 시장의 불확실성이 확대되는 가운데 살아남는 투자 전략은 무엇일까. ‘월가의 전설’로 불리는 투자 대가 5인(워런 버핏·스탠리 드러켄밀러·빌 애크먼·마이클 버리·론 바론)의 포트폴리오를 통해, 금융시장의 격변기에 대비하는 투자법을 들여다봤다.
최근 인공지능(AI) 패러다임을 이끄는 엔비디아 등 대형 기술주를 두고 투자자들의 고민이 깊어지고 있다. 고점론이 스멀스멀 올라오는 가운데, 탄탄한 실적을 기반으로 또 다른 랠리의 시작이라는 기대도 동시에 받고 있어서다. 그런데, 미 증권거래위원회(SEC)의 ‘13F 보고서’(운용 자산 1억 달러 이상인 기관의 분기 투자보고서)에 따르면 월가의 투자 대가들은 ‘빅테크 축소’라는 뚜렷한 흐름을 보여줬다. 스탠리 드러켄밀러가 이끄는 듀케인패밀리오피스는 엔비디아에서 3분기 완전히 발을 뺐다. 21개월간 보유했던 엔비디아 21만4060주를 전량 매도했다.
금융주도 처분 대상, 버핏 BoA 20% 매도
워런 버핏이 운영하는 투자회사 버크셔 해서웨이는 최대 보유 종목인 애플 주식 수를 4억 주에서 3분기 3억 주로 25% 줄였다. ‘테슬라를 19달러에 산 남자’로 유명한 론 바론의 바론캐피탈도 테슬라와 엔비디아의 비중을 덜어냈다. 그동안 미국 증시를 이끌던 대형 기술주에 쏠려있던 무게 중심이 이동하고 있는 셈이다. 개인 투자자들도 대형 기술주 중심에서 다양한 분야의 저평가된 주식에 분산투자해야 한다는 의견이 나온다. 김후정 유안타증권 애널리스트는 “3분기 M7(엔비디아·마이크로소프트·애플·알파벳·아마존·테슬라·메타)의 이익 창출 능력이 재확인되면서 빅테크 주가 강세가 이어지고 있지만, 7월부터 기술주 자금 유입이 줄어들면서 조심스러움이 점점 커지고 있다”고 진단했다.
그래픽=양유정 기자 yang.yujeong@joongang.co.kr
금융주도 투자 대가의 주요 처분 대상에 올랐다. 금융 관련 종목은 ‘트럼프 2기’ 최대 수혜를 입을 섹터로 꼽히는 만큼 예상 외 선택이다. 트럼프 당선인은 1기 때 버락 오바마 전 대통령이 2010년 도입했던 금융 규제를 완화했다. 이로 인해 미 금융 기업의 주가가 일제히 강세 전환한 바 있다. 그럼에도 론 바론은 3분기 아치캐피털그룹·MSCI·킨세일캐피털그룹 등 금융 섹터 종목을 다수 정리했다. 워런 버핏도 보유 중인 뱅크오브아메리카의 종목을 20% 넘게 덜어냈다.
큰손들이 금융주를 내다 파는 이유 중 하나는 장기 성장에 대한 의구심이 깔려 있다. 금리 인하는 장기적으로 은행 수익에 부정적 영향을 미칠 수 있다. 은행 수익의 핵심 지표인 순이자마진(NIM) 하락이 예상되기 때문이다. 다만, 국내 금융주의 경우 밸류업과 맞물리며 매력이 크게 줄어들 가능성은 적다는 분석도 나온다. 최정욱 하나증권 애널리스트는 “트럼프 당선 이후 미국 국채 금리 상승으로 글로벌 금융주들이 전반적으로 상승하는 가운데, 국내의 경우 2000억원 규모의 기업밸류업펀드를 조성하고 투자에 나선다는 소식이 전해지면서 은행주의 랠리가 이어지고 있다”고 말했다.
미 대선과 맞물린 시장의 불확실성 속에서 월가 대가들은 각자의 투자 관점으로 기회를 포착했다. 마이클 버리가 이끄는 사이언에셋매니지먼트는 최근 중국 시장에 대한 투자를 크게 확대했다. 알리바바·징둥닷컴·바이두를 추가 매수했다. 영화 ‘빅쇼트’의 실제 주인공으로 시장 하락에 베팅해서 막대한 부를 쌓아 올린 그가 이번에는 중국 투자의 엑셀을 밟은 것이다. 실제로 시장에선 중국 둔화 직격탄을 맞고 있는 중국 대표주가 ‘저가매수’의 대상이라는 인식이 확산 중이다. 28일 한국예탁결제원에 따르면 국내 투자자가 최근 1개월간 홍콩 증시에서 가장 많이 사들인 종목도 알리바바(1087만 달러)였다. 하지만 중국의 부양책 기대에 급등했다가 실적 우려에 내림세로 돌아서는 변동성 확대는 유의할 점이다.
“미국 주식 고점 우려, 공격투자 신중해야”
경기 침체를 대비한 바이오·소비재 등 ‘경기 방어주’는 3분기 월가 큰손의 집중 매수 대상이었다. 버핏은 3분기 도미노피자와 수영용품업체 풀코퍼레이션을 신규 매입했다. 도미노피자는 강력한 시장 지배력을 구축했고, 경기 하강 기류에 저항력을 갖춘 기업으로 꼽힌다. 빌 애크먼의 퍼싱스퀘어캐피탈은 나이키에 14억 달러를 투자했다. 드러켄밀러는 바이오테크업체 나테라를 대규모 매입했다. 헬스케어 분야는 기술 발전의 발목을 잡는 족쇄를 풀겠다는 트럼프의 수혜주로도 꼽힌다.
그래픽=양유정 기자 yang.yujeong@joongang.co.kr
전문가들은 국내에서도 경기 방어주에 대한 관심이 커질 것으로 본다. 대표적 경기 방어주는 바이오·통신·필수 소비재 등이 있다. 불황에도 꾸준한 실적을 내기 때문에 ‘불황형 주식’으로도 불린다. 이 가운데 최근 통신주의 상승세가 눈에 띈다. 김홍식 하나증권 애널리스트는 “국내 통신 3사 주주이익환원 규모가 증가 추세인데다 앞으로 글로벌 4차산업 패권 경쟁이 심화하면, 현재 통신규제 정책이 육성 방향으로 전환될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
한편, 증시 폭락을 대비하는 ‘현금화’도 두드러진다. 버핏은 애플과 뱅크오브아메리카 등 보유주식을 대거 처분하면서 새로운 갈아타기보다 현금 확보에 주력했다. 버크셔 해서웨이의 9월 말 기준 현금 보유량은 3250억 달러로 사상 최대치다. 버핏은 주주 서한에서 “우리도 주식을 사고 싶지만, 위험이 거의 없고 큰돈을 벌 수 있다고 생각되지 않는 한 사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시장에선 ‘미국 주식의 미래에 대한 경고’라는 해석이 나온다. 서상영 미래에셋증권 연구원은 “미국 기관마저 주식 비중을 줄여가는 가운데, 국내 투자자가 고점 우려가 있는 미국 주식에 공격적으로 투자하는 것은 신중해야 한다”고 말했다.
배현정 기자 bae.hyunjung@joonga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