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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도체 생산 ‘심장부’까지 이전…초격차로 ‘삼성의 봄’ 앞당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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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일은없다
22시간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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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도약 준비하는 삼성전자

기술적으로 경쟁사에 밀리고, 반도체 위기설이 확산하면서 국민기업 삼성전자의 체면이 말이 아니다. 올해 들어 실적이 살아나면서 한때 ‘10만전자’를 향해 내달리던 주가는 5만원대에 머물고 있다. 여기저기서 ‘삼성의 위기’라는 진단이 나온다. 업황 부진, 대내외 불확실성 확대 등 분위기가 좋지 않은 건 사실이다. 하지만 최근 대대적인 조직 개편과 인적 쇄신을 끝내고 다시 뛸 준비를 하면서 명성을 되찾을 것이라는 기대감도 커지고 있다.


삼성전자의 5세대 HBM인 HBM3E. [사진 삼성전자]

삼성의 위기는 반도체에서 시작됐다. 올해 들어 반도체 업황 개선으로 삼성도 실적 회복세를 기록했지만, 시장의 기대와 달리 실적 상승 폭은 그리 크지 않았다. 1분기 삼성전자의 반도체 사업부인 DS부문의 영업이익은 1조9100억원으로, 직전 분기 2조1800억원 적자에 비하면 약 4조원가량 실적을 개선하는 데 성공했다.


하지만 예년과 비교해서는 아쉬움을 남겼다. 이어 2분기에 6조4500억원의 영업이익을 기록하며 완연한 회복세가 점쳐졌지만, 3분기 3조8600억원을 기록하며 다시 위축됐다. 김운호 IBK투자증권 연구원은 “4분기에도 DS부문의 부진이 이어져 전체 매출도 전분기보다 줄어들 전망”이라고 내다봤다. 중국의 범용 메모리 공습이 예상보다 위력적인 데다 미국의 반도체 수출 규제 여파도 심상찮다. 인공지능(AI) 반도체로 불리는 고대역폭메모리(HBM) 경쟁력 회복이 여전히 더딘 점도 문제다.


과거 반년 만에 64K D램 개발 ‘신기록’

최근 인적 쇄신 등 대대적 변화를 통해 분위기 반전에 나선 삼성전자가 가장 공을 들이는 것도 HBM이다. 삼성은 내년에 6세대 HBM으로 불리는 HBM4 생산을 통해 경쟁사를 따라잡는다는 계획이다. HBM4 양산에 속도를 내기 위해 삼성은 반도체 생산의 ‘심장부’로 불리는 ‘글로벌 인프라 총괄’ 조직을 경기도 동탄에서 평택 팹으로 이전한다. 글로벌 인프라 총괄은 에너지 관리부터 설비 투자, 유지 보수, 안전 환경 관리까지 반도체 인프라를 구축하는 조직으로 ‘반도체 생산의 시작’으로도 불린다.


10㎚(나노미터·10억분의 1m)급의 D램 시범 라인이 들어서는 삼성전자의 평택 팹. [연합뉴스]

이와 동시에 삼성은 평택 팹에 ‘1c D램’ 시험 라인을 구축하기 시작했다. HBM4에 활용할 1c D램은 10㎚(나노미터·10억분의 1m)급의 7세대(1d) D램이다. 내년 양산 예정인 6세대 D램을 뛰어넘어 7세대 D램에 대한 연구·개발까지 속도를 내는 것이다. 업계에서는 삼성의 특기인 속도전에 돌입한 것이라고 분석한다. 반도체 업계의 한 관계자는 “차기작 양산 단계에 진입하기 전부터 그다음 제품 개발에 착수한 것은 삼성이 경쟁사와 기술 격차를 벌리기 위한 선제적인 투자에 나섰다는 의미”라고 말했다.


갈수록 대만 TSMC와 격차가 벌어지고 있는 파운드리 부문에서는 2나노 공정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현재까지는 TSMC의 개발 속도가 조금 더 빠른 것으로 알려져 있다. TSMC는 내년 4월부터 2나노 공정 시험 생산에 돌입할 예정이다. 계획대로라면 내년 하반기부터 양산이 가능할 전망이다. 하지만 삼성의 속도도 늦지 않다. 삼성은 4분기부터 화성사업장에 있는 파운드리 라인 ‘S3’에 2나노 생산라인을 구축하기 위한 각종 장비 반입을 시작했다. 매달 웨이퍼 1만5000장(12인치 기준) 안팎을 생산할 수 있는 기존 3나노 라인을 2나노 공정으로 전환하는 것이다.


그래픽=남미가 nam.miga@joongang.co.kr

특히 내년 1분기부터는 주요 고객사의 2나노 반도체를 테스트 생산할 예정이다. 앞서 삼성은 일본 기업 프리퍼드네트웍스(PFN)의 2나노 기반 AI 가속기를 수주하는 데 성공했다. PFN은 일본 내 AI 국가대표 스타트업으로 부상하고 있는 기업이다. 연말 인사에서 파운드리사업부 수장이 된 한진만 사장도 2나노를 강조하고 나섰다. 그는 최근 파운드리사업부 임직원에게 보낸 이메일에서 최우선 과제로 ‘2나노 공정의 빠른 램프업(생산능력 증가)’을 제시했다.


임직원 사기 진작에도 나섰다. 삼성은 DS부문 임직원에게 반도체 사업 50주년을 맞아 200만원의 위기극복 격려금을 지급키로 했다. 이와 별도로 메모리사업부엔 성과급 200%를 지급한다.


그래픽=남미가 nam.miga@joongang.co.kr

이제 시작 단계지만, 삼성이 재도약 준비에 나서면서 삼성의 장기인 기술 초격차에 기대를 거는 목소리도 커지고 있다. 과거에도 삼성은 ‘64K D램’을 불과 6개월 만에 생산·조립·검사까지 모든 끝낸 바 있다. 삼성은 1983년 우리나라에서 처음 D램 사업에 뛰어들었고, 불과 6개월 만에 세계에서 3번째로 64K D램을 개발했다. 선진국이 20년의 시간을 소비했던 개발 과정(4·16·32K)을 3단계나 뛰어넘은 신기록이었고, 미국과 일본보다 10년 이상 뒤처졌던 반도체 기술을 3~4년 수준으로 단축했다.


삼성의 이 같은 속도전은 엔비디아에 HBM을 납품하기 위한 퀄테스트(품질검사)가 성공하면 더 빨라질 전망이다. 삼성은 5세대 제품인 HBM3E를 엔비디아에 공급하기 위해 품질 테스트를 진행 중이다. 잠재력도 충분하다는 평가다. 일본의 데이터분석 기업인 아스타뮤제가 특허 등 지적재산을 데이터화해 글로벌 반도체 기업의 순위를 평가한 결과에 따르면 시스템·메모리 등 주요 부문에서 삼성전자가 1,2위권에 들었다. 모리 슌스케 아스타뮤제 애널리스트는 “삼성전자는 특히 모든 분야에서 상위권에 이름을 올린 만큼 반도체 산업에서 폭넓은 영향력을 가진 회사”라고 평가했다.


일각 ‘반도체 위기론’ 과하다는 분석도

현재 확산하고 있는 반도체 위기론이 과하다는 분석도 나온다. 하지만 미래에셋증권 김영건 연구원은 “과거와 달리 최근 DDR 계약가격과 실제 판매단가(ASP)와의 괴리가 커지면서 가격 대표성이 떨어졌다”며 “4분기와 내년 D램 ASP는 각각 2.7% 상승, 3% 하락하는 데 그쳐 우려에 비해 나쁘지 않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우려와 달리 4분기 실적도 나쁘지 않을 것이라는 전망이다.


다만, 전문가들은 삼성의 최근 변화가 성공적인 결과로 이어지려면 인적 쇄신이나 조직 개편에 걸맞은 새로운 문화·마인드로 무장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삼성 출신의 한 대학 교수는 “삼성 특유의 토론 문화가 사라지고 관료주의가 팽배하다”며 “삼무원(삼성전자에 공무원을 합친 은어)이라는 비판까지 나오고 있는 실정”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책임을 따지고 묻는 것에서 벗어나 똘똘 뭉치고 새로운 것에 도전하는 조직문화를 다시 살려내야 한다”고 지적했다.


황정일 기자 obidius@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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