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로 금리' 시대가 끝나고 금리와 물가가 동시에 뛰자 부채 부담에 허덕이는 일본인들이 빠르게 늘고 있다. 실질임금이 감소하는 가운데 소비자 대출이 16년 만에 최고 속도로 늘어나는가 하면 지난해에는 가계대출이 처음으로 가계수입을 넘어섰다. 개인 파산이 12년 만에 최고치를 기록하고 부채 문제로 극단적 선택을 하는 사례도 늘었다.
블룸버그통신은 일본 금융청 통계를 인용해 개인 파산 건수가 올해 8만건을 넘어서며 2012년 이후 최대치를 기록할 것이라고 22일 보도했다. 올해 1~10월 법원의 데이터를 토대로 변호사들이 추산한 수치다. 지난해 평균 가계부채도 655만엔(약 6000만원)으로 가계소득보다 높아졌다.
금융청에 따르면 대부분의 소비자 대출잔액 이자율은 14~16%로 이자 부담이 큰 상황이다. 한때 현금을 침대 밑에 숨겨두는 고령자들의 저축으로 유명했던 일본이 이제는 제로금리 시대의 종료와 함께 부메랑을 맞고 있는 것. 수십 년간의 디플레이션과 경제침체에서 벗어난 일본이 잡아야 할 양날의 칼이다.
OECD(경제협력개발기구)에 따르면 2022년 일본의 가계 부채 규모는 가처분소득의 122%로 역대 최고치에 달했다. OECD 가입국 중 미국과 영국에서 지난 10년 동안 해당 비율이 꾸준히 감소한 것과 대조적이다. 수십 년간 정체된 일본 근로자의 낮은 급여 수준은 부채의 심각성을 더하는 요인이다. 일본의 평균 급여는 지난해 4만7000달러로 미국(약 8만달러)의 절반 수준이다. 물가를 감안한 실질임금 증가율은 올해 5월까지 26개월 연속으로 마이너스 수준이다가 잠시 벗어났으나 8~9월 다시 마이너스를 기록했다.(10월 증가율은 0%)
일본은행도 지난 10월 2년마다 발표하는 금융시스템 보고서에서 가계 부채 증가를 지적했다. 젊은이들의 주택을 구매하는 경우가 늘어나면서 이자 지급 부담도 커졌다. 물가가 뛰며 빚을 내게 된 경우도 있다. 특히 부채 문제로 극단적 선택을 하는 이들도 늘고 있다. 지난해 일본에서 다중 채무로 인한 자살자는 2012년 이후 가장 많은 792명을 기록했다. 2012년은 일본 금융 당국이 불법 사채업과의 전쟁을 선포하고 대대적 단속을 벌여 대부업체 수천개가 문을 닫아 서민 신용이 끊긴 시기다.
올해 9월까지 일본의 소비자 대출은 매달 8%이상 늘었다. 이는 2008년 통계를 수집하기 시작한 이래 가장 높은 수치다.
일본 4대 소비자 대출기관 중 하나인 SMBC는 코로나 이후의 보복 소비가 대출을 늘렸다고 밝혔다. 틱톡 등 소셜미디어 광고를 타고 20대 Z세대의 대출 수요도 늘고 있다. 일본은 성인 연령을 2022년 기존의 20세에서 18세로 낮춰 잠재적인 소비자 대출군도 두터워졌다.
머니투데이 김희정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