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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체절명’ 삼성전자, 주도권 되찾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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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세대 HBM4에 사활



삼성전자가 글로벌 복합위기 속 돌파구를 찾기 위해 2025년 사업 전략 회의를 열었다. 트럼프 2기 정부 출범부터 고환율까지 외부 변수가 늘어나 삼성 경영진은 돌파구 마련에 분주하다. (매경DB)

2024년 고대역폭메모리(HBM) 시장에서 SK하이닉스에 뼈아픈 ‘판정패’를 당한 삼성전자가 절치부심 중이다. 2025년 HBM 시장에서 유의미한 성과를 내지 못한다면 삼성의 ‘기술 평판’에는 상당한 악재가 될 것이라는 우려가 팽배하다. 전영현 삼성전자 대표이사 부회장(DS부문장)이 메모리사업부장을 겸직하며 조직 전체에 긴장감을 높인다. 다만, 5세대 이상 HBM부턴 파운드리·패키징 역량이 중요한데, 삼성 개별 역량만으로 풀어내기 만만찮다는 점은 난제로 지목된다.


반도체 업계에 따르면, 최근 삼성전자는 글로벌 전략 회의를 열고 복합위기 속 돌파구를 찾기 위한 방안을 모색했다. DS부문에선 반도체 사업 부진에 대해 주요 사업부와 국내·외 거점 담당 임원이 전체적으로 반성하는 분위기 속 HBM 근원 경쟁력 회복 방안이 집중 논의된 것으로 알려진다.


우선 삼성전자는 HBM 양산 초기 수율 확보에 사활을 건 분위기다. HBM은 적층 난도에 따라 1세대(HBM)-2세대(HBM2)-3세대(HBM2E)-4세대(HBM3)-5세대(HBM3E) 순으로 개발돼왔다. 삼성전자 HBM3E(5세대)는 발열과 전력소비 등에서 엔비디아 품질 검증을 속 시원하게 통과하지 못하고 있다. 최근 IT 제조업 분야는 불연속적 기술 발전으로 기존 기술과 제품 수명 주기가 갈수록 짧아지는 추세다. 이런 상황에서 양산 초기 수율 목표를 달성 못하면 짧은 수명 주기로 기업 손익 변동성이 대폭 확대된다. HBM 역시 지속적으로 신규 칩이 시장에 출시되면서 기존 칩 감가상각 속도가 더 빨라진다.


연말 인사에서 삼성전자가 리더십을 재정비하고 개발·양산 프로세스에 변화를 도모한 점은 이런 배경에서다. 연말 정기인사에서 전영현 부회장은 삼성전자 대표이사를 맡는 동시에 메모리사업부장과 SAIT(옛 삼성종합기술원) 원장을 겸임한다. 전 부회장은 강력한 규칙과 규범으로 조직을 장악하고 밀어붙이는 ‘하드파워’ 리더십 인물로 분류된다. 소통 기반 ‘소프트파워’ 리더십 체제로는 수율과 공정 혁신에 한계가 따른다는 판단을 삼성 수뇌부가 내렸다고 산업계는 해석한다.


삼성전자 DS부문 전 임원은 “전 부회장은 직원들을 몰아붙여 성과를 내는 하드파워 리더십에 가까운 인물”이라고 돌아봤다. 반도체 업계 관계자는 “반도체에 집적하는 트랜지스터 수가 1~3년마다 2배 이상 증가한다는 ‘무어의 법칙’은 공정 엔지니어 수명과 맞바꿔 만들어진 것”이라며 “공정과 수율은 엔지니어 스트레스와 정비례해 개선된다는 게 오랜 불문율”이라고 설명한다.


삼성 기술 평판 회복 여부를 판가름할 분기점으로는 6세대 HBM4 양산 속도전을 꼽는 시선이 많다. 주요 외신에 따르면, 엔비디아는 차세대 AI 가속기 ‘루빈’ 출시 시기를 오는 2026년에서 2025년 3분기로 6개월 앞당기는 방안을 추진한다. 루빈에는 6세대 HBM4 8개가 탑재되므로,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는 HBM4 양산을 최대한 앞당길 전망이다. 루빈에 대한 HBM4 납품 여부·규모에 따라 HBM 시장 판도가 바뀔 수 있다. 삼성전자 입장에선 HBM4 양산 속도전에서 승기를 잡느냐가 절체절명 과제로 평가된다.


삼성, ‘1c’ D램 양산 속도전


파운드리 역량 개선은 난제


HBM 근원 경쟁력 확보를 위해 삼성전자는 ‘1c’ D램 양산에 속도를 낸다. 삼성전자는 SK하이닉스에 한 세대 앞서 HBM4부터 ‘1c 공정’ 기술을 활용해 ‘역전승’을 노린다.


삼성전자가 1c 공정에 사활을 건 데는 이유가 있다. HBM은 여러 D램을 수직으로 쌓아 만든다. 즉, 개별 D램 성능과 안정적 수율이 HBM 핵심 경쟁력이다. 10나노급 D램 공정 기술은 1x(1세대)-1y(2세대)-1z(3세대)-1a(4세대)-1b(5세대) 순으로 개발되며 1c는 6세대를 말한다. 1c 공정으로 갈수록 선폭이 좁다. 선폭이 좁을수록 웨이퍼(반도체 원판) 한 장에서 나오는 D램 생산량이 늘어나 손익 경쟁력을 좌우한다. 1c에 가까울수록 공정 난도가 기하급수적으로 뛴다. 삼성전자는 1b 공정부터 사실상 SK하이닉스에 밀리더니 1c(6세대)의 경우 SK하이닉스에 세계 최초 타이틀마저 내줬다. 삼성전자는 1a·1b 공정으로 제조된 5세대 HBM3E에서 SK하이닉스에 엔비디아 공급 주도권을 뺏긴 만큼 이보다 난도가 높은 6세대 HBM4·1c 경쟁에서 승부를 볼 수밖에 없다.


반도체 업계에 따르면, 삼성전자 1c D램 양산은 평택에서 이뤄진다. 삼성전자는 최근 평택 제4캠퍼스(P4)에 1c D램 양산라인 구축을 위한 장비 발주를 시작한 것으로 알려진다. 2025년 1분기 중 양산용 설비 도입이 이뤄질 전망이다. 이에 따라, 산업계에서는 전 부회장이 평택 캠퍼스를 중심으로 선행기술과 양산 조직 간 상호 연결성을 높이는 방향으로 엔지니어 재배치에 나설 것으로 보고 있다. 핵심 생산기지를 중심으로 공정 설계 등 주요 엔지니어를 집중 배치해 연구개발(R&D) 단계부터 수율과 생산성을 동시에 고려해 양산 검증의 강도를 높일 것이라는 관측이다.


다만, 파운드리 역량 개선을 난제로 꼽는 시각이 적지 않다. HBM 특성상 세대가 거듭될수록 파운드리와 긴밀한 협업이 필수다.


특히 6세대 HBM4는 5세대와 비교해 공정 난도가 비교 불가다. HBM 패키지 최하단에는 ‘베이스 다이(Base Die)’가 배치된다. 베이스 다이는 GPU와 연결돼 HBM을 통제하는 역할을 한다. ‘버퍼 다이’ 혹은 ‘로직 다이’라고도 한다. HBM은 베이스 다이 위에 D램 단품 칩 ‘코어 다이(Core Die)’를 쌓아 올린 뒤 이를 실리콘관통전극(TSV) 기술로 수직 연결해 만든다.


이전 세대보다 월등한 고속·고용량 성능을 구현하려면 베이스 다이가 기존 HBM처럼 단순히 D램 칩과 GPU를 연결하는 역할을 넘어 연산 등 시스템반도체 기능도 수행해야 한다. 이런 베이스 다이는 기존 D램 공정으로는 제작이 어렵다. HBM 세대가 거듭될수록 파운드리·패키징 영향력이 커진단 의미다.


SK하이닉스는 5세대 HBM3E까지는 자체 D램 공정으로 베이스 다이를 만들었지만, 6세대 HBM4부터 대만 TSMC 초미세 선단 공정을 활용한다. 당초 삼성전자는 3나노 파운드리 공정을 활용해 HBM 제작부터 패키징까지 ‘턴키 수주(일괄 제공·Turn Key)’를 늘릴 계획이었지만, 산업계와 시장에선 회의적인 시각이 팽배하다.


최근 삼성전자가 TSMC와 협력 가능성을 내비쳤지만, 이 카드는 사실상 무위로 돌아갔다는 시각이 우세하다. 김재준 삼성전자 메모리사업부 부사장은 “파운드리 파트너 선정은 고객사 요구를 우선으로 내외부에 관계없이 유연하게 대응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6세대 HBM4 개발 과정에서 자사 제품과 기술만 고집하지 않겠다는 이례적 입장을 내놓은 것이다.


하지만 모리스 창 TSMC 창업자가 삼성과 협력 가능성에 사실상 선을 긋는 발언을 내놔 삼성 안팎에선 당혹감이 읽힌다. 창 창업자는 2024년 12월 9일 자서전 출간 기념 대만 언론 기자간담회에서 이건희 삼성전자 선대회장과 일화를 소개하며 “이건희 선대회장이 메모리 사업을 하고 싶어 했고 협력하자고 했지만, TSMC가 삼성과 협력하는 것은 좋지 않을 것으로 판단했고 지금도 그렇게 생각한다”고 밝혔다.


이승우 유진투자증권 애널리스트는 “삼성전자에 필요한 것은 지금까지 문제로 지적됐던 요인에 대한 철저한 진단과 이를 개선하기 위한 파격적인 변화와 혁신”이라며 “질적 변화가 없다면 반전의 계기도 쉽지 않을 수 있다”고 지적했다.


[배준희 기자 bae.junhee@mk.co.kr]


[본 기사는 매경이코노미 제2290호 (2024.12.25~2024.12.31일자) 기사입니다]


배준희 매경이코노미 기자(bjh0413@m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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