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개월 만에 리터당 1700원선 돌파
국내 환율 불안에 美 ‘대러 제재 겹쳐
국제유가 급등세… 경유도 1500원 넘어
국내 기름값 최소 2주간 더 오를 가능성
물류·난방·연료비 등 올라 물가 직격탄
소비자들 초저가 상품 몰려 ‘짠물소비’
물가 상방 압력에 상당한 영향을 미치는 휘발유 가격이 계속 오르고 있다. 국제 정세 위기 등의 돌발 변수 외에 통상 유가 상승 압박이 낮은 북반구 겨울철 상승이 계속되는 것인데, 이는 지난해 ‘12·3 비상계엄 사태’와 이어진 탄핵 정국 등에 따른 국내 환율 불안과 미국의 러시아산 석유 제재까지 겹악재에 의한 것이라 뚜렷한 대책이 없는 게 더 문제로 지적된다.
14일 한국석유공사 유가정보시스템 오피넷에 따르면 이날 기준 전국 주유소 휘발유 평균 판매가는 ℓ당 1703.4원을 기록했다. 전국 휘발유 평균 판매가는 전날 1700원선을 돌파했다. 평균 휘발유값이 1700원을 넘긴 건 지난해 8월10일 이후 다섯 달 만이다.
지역별로는 서울이 1772.2원으로 가장 높았다. 이는 지난해 12월14일 1705.5원에서 한 달 만에 4% 가까이 상승한 수치다. 경유 평균 판매가격은 ℓ당 1552.7원으로, 지난해 12월19일 1500원대를 넘어선 뒤 연일 상승세를 보이고 있다.
이는 비상계엄 사태 이후 지속 중인 환율 상승폭이 반영된 것이다. 비교적 최근까지 안정세였던 국제유가는 원화로 환산한 가격이 지속적으로 상승해 국내 주유소 기름값을 끌어올렸다.
고환율 기조에 최근 국제유가도 다시 오름세로 돌아선 상황도 주시해야 한다. 미국 조 바이든 행정부는 10일(현지시간) 러시아 석유 회사와 선박 보험회사를 비롯해 그동안 제재를 피해 러시아산 원유를 수송해온 것으로 알려진 이른바 ‘그림자 함대’ 선박 183척 등에 대한 제재를 발표했다. 2022년 우크라이나를 침공한 러시아는 서방의 제재에 대응해 중국·인도 등에 할인된 가격으로 원유를 수출해왔지만, 최근 미국 정부가 러시아 주요 석유 업체와 유조선 등에 대한 대규모 제재를 발표하면서 국제유가가 급등하는 등 원유시장이 출렁이고 있다.
13일 기준 서부텍사스산 원유(WTI) 선물 종가는 배럴당 78.82달러, 브렌트유 선물 종가는 배럴당 81.01달러를 기록했다. WTI 종가는 지난해 8월12일 이후 5개월 만에 가장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브렌트유도 지난해 8월26일 이후 4개월여 만에 가장 높은 수준이다.
정국·환율 불안이라는 국내 변수까지 떠안은 우리 기름값도 상승세를 당분간 이어갈 전망이다. 국제유가 변동이 통상 2∼3주가량 차이를 두고 국내 주유소 가격에 반영되는 걸 감안하면 당분간 주유소 기름값 상승이 불가피하다는 것이다.
대한석유협회 관계자는 “국제유가가 오르는 데다 환율 상승으로 달러당 원화 가치가 떨어져 국내 제품 가격의 상승세가 이어지고 있다”며 “향후 최소 2주간 기름값이 오를 것으로 보인다”고 했다.
기름값이 오르면 물류비와 난방비, 연료비 등이 올라 소비자 물가를 전반적으로 직격한다는 게 더 심각한 문제로 지적된다.
서민들은 이른바 ‘짠물 소비’로 고물가 시대에 대비하는 모습이다. 이날 롯데홈쇼핑에 따르면 유통기한 임박 상품과 전시·이월상품 등을 초저가에 판매하는 온라인 전문관 ‘창고털이’ 상품이 인기를 얻고 있다.
롯데홈쇼핑에 따르면 2022년부터 작년까지 3년간 창고털이 상품 주문액이 연평균 45% 증가했다. 지난해 주문 건수는 전년 대비 40% 늘었다. 특히 품질에 문제가 없는 유통기한 임박 상품에 고객 주문이 몰리고 있다고 롯데홈쇼핑은 소개했다.
김범수 기자 sway@segy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