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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항공 캐시카우였는데”…애경 기댈 곳 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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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지경제
10시간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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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항공 참사에 계열사 실적도 불안



제주항공 무안국제공항 참사로 애경그룹이 창사 이래 최대 위기를 맞았다. 당장 제주항공이 실적 부진에 내몰릴 가능성이 커진 가운데 애경케미칼, AK플라자 등 계열사들이 경영난을 겪는 데다, 애경산업도 가습기 살균제 사건 악재에서 헤어나지 못하는 중이다. 애경그룹 이미지가 악화되면서 소비자 불매운동까지 벌어질 조짐이라 그야말로 ‘사면초가’에 처했다.



채형석 애경그룹 총괄부회장(사진 가운데) 등 애경그룹 경영진이 지난해 12월 29일 전남 무안군 무안국제공항에서 유가족들에게 사과하며 고개를 숙이고 있다. (연합뉴스)


제주항공 덩치 키워갔지만


이미지 악화로 캐시카우 쉽지 않을 듯


애경그룹은 장영신 회장의 남편인 故 채몽인 창업주가 1954년 애경유지공업을 설립해 세탁비누를 생산하며 사업을 시작했다.


채 창업주가 1970년 작고한 후 장 회장은 1972년 8월 대표이사 자리에 올랐다. 1985년 영국 유니레버사와 합작사인 애경산업을 설립했고, 1993년 애경백화점 서울 구로점을 오픈해 유통업으로 사업 영역을 넓혔다.


애경그룹은 지주사 AK홀딩스 아래 제주항공, 애경케미칼, 애경산업, AK플라자, AM플러스자산개발 등 5개 회사를 자회사로 뒀다. 장 회장과 장남 채형석 총괄부회장 등 오너 일가가 AK홀딩스 지분 46.23%를 보유한 가운데, AK홀딩스가 제주항공 지분 50.86%, 애경케미칼 62.85%, 애경산업 45.42%, AK플라자 76.68%, AM플러스자산개발 지분 57.14%를 갖고 지배하는 구조다.


애경그룹 대표 계열사로는 단연 제주항공이 손꼽힌다. 애경그룹은 2005년 제주특별자치도와 합작으로 제주항공을 설립했다. 이후 애경그룹은 AK면세점을 롯데그룹에 매각한 대금을 제주항공에 쏟아붓고, 유상증자에 참여하는 등 수천억원대 투자를 단행했다.


덕분에 제주항공은 짧은 시간에 급속도로 덩치를 키워갔다. 2015년 11월에는 국내 저비용항공사(LCC) 최초로 유가증권 시장에도 상장했다.


코로나19 여파로 2020년부터 2022년까지 3년간 대규모 적자를 내며 위기를 겪었지만 주저앉지 않았다. 코로나 엔데믹 이후 여행 수요가 살아난 덕분이다.


자연스레 실적도 날개를 달았다. 2023년 제주항공 매출은 1조7240억원, 영업이익은 1698억원으로 사상 최대 영업이익 기록을 세웠다. 지난해 3분기 누적 영업이익도 1051억원에 달했다.


단기간 내 급성장한 제주항공은 경영난을 겪어온 대형 항공사 아시아나항공의 위상을 넘보기도 했다. 국토교통부 항공 통계에 따르면 지난해 11월 기준 제주항공 운항 편수는 2233편으로 국적항공사와 LCC를 통틀어 대한항공(3325편)에 이어 2위를 달린다. 승객 수도 40만4000명으로 대한항공(50만8000명)에 이어 두 번째다. 어느새 국내 LCC 대표 주자이자 애경그룹의 ‘캐시카우(현금창출원)’으로 자리매김했다는 얘기다.


하지만 이번 무안국제공항 참사로 직격탄을 맞으면서 공든 탑이 무너질 수 있다는 전망이 나온다. 제주항공에 따르면 참사 발생일인 지난해 12월 30일 하루에만 7만건 가까운 항공권 취소표가 나왔다. 제주항공이 고객에게 판매한 항공권의 선수금만 2606억원에 달한다. 국내 LCC 중 가장 큰 규모다.


선수금은 기업이 제품, 서비스 지급을 약속하고 고객에게 미리 받은 돈을 뜻한다. 항공사 선수금은 고객이 머지않은 시기에 탑승할 목적으로 예매한 항공기 티켓값이다.


이번 참사 이후 항공권 환불 요구가 빗발치면서 막대한 현금이 유출될 처지에 내몰렸다. 제주항공은 오는 3월 29일 이전에 출발하는 국내, 국제선 전 노선에 대한 취소 수수료를 면제해주기로 했다. ‘조건 없는 환불’을 약속해 향후 현금 유출로 인한 부담은 더욱 커질 것으로 보인다.


제주항공을 이용하는 패키지 상품 취소도 잇따르고 있다. 하나투어, 인터파크투어 등 주요 여행사들은 제주항공을 이용하는 상품에 대해 취소 수수료를 면제하기로 했다. 제주항공 탑승을 꺼리는 트라우마를 고려해 항공편 변경도 시행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이번 참사로 제주항공 안전 관리가 도마에 오른 만큼 당분간 수요 회복이 녹록지 않을 것이라는 관측이 나온다.


지난해 3분기 기준 제주항공의 여객기 평균 가동 시간은 월 418시간으로 대한항공(355시간), 아시아나항공(335시간)을 크게 웃돈다. 같은 LCC인 티웨이항공(386시간), 진에어(371시간), 에어부산(340시간) 등과 비교해도 차이가 크다.


항공사 월평균 가동 시간은 총 유상 비행 시간을 항공기 운용 대수로 나누는 방식으로 산출한다. 가용한 비행 시간을 최대한 늘려 높은 수익을 올린 셈이다. 무리한 운항 탓에 기체 노후화가 빨라졌다는 분석이 나오는 이유다.


수익성 확보에만 치중하다 보니 안전 관리는 소홀해질 수밖에 없다. 제주항공은 2021년 국토교통부가 주관하는 종합 안전도 조사에서 최하위(C++) 점수를 받았다. 2021년 당시 보조 날개가 손상된 기체를 수리하지 않고 그대로 운항한 사실이 드러나 논란이 됐다.


이듬해인 2022년에는 일본 오사카 간사이국제공항에서 이륙 직후 기체 이상으로 급히 회항하는 일이 있었다. 당시에도 ‘버드 스트라이크(조류 충돌)’와 함께 기체 결함 가능성이 거론됐지만 부실한 안전 관리 관행은 바뀌지 않았다.


지난해에도 항공기 정비를 사유로 제시간에 출발, 도착하지 못한 항공편이 속출했다. 국회 국토교통위원회 소속 더불어민주당 이연희 의원실이 국토교통부로부터 제출받은 자료에 따르면 제주항공은 지난해 상반기에 운항한 5만2883편 가운데 536편(국내선 344편, 국제선 192편)에서 정비를 이유로 지연이 빚어졌다.


이는 지난해 상반기에 운항한 국내 항공사 10곳 중 가장 높은 수치다. 전체 운항 편수가 더 많았던 대한항공(422편)을 뛰어넘은 것은 물론, 경쟁 LCC인 티웨이항공(315편), 진에어(243편), 에어부산(227편) 등을 크게 웃돌았다. 정비 지연율은 1.01%(국내선 1.26%, 국제선 0.75%)로, 전체 평균 0.64%(국내선 0.61%, 국제선 0.68%)보다 0.37%포인트 높았다.


특히 과거 제주항공 내부 문제를 지적한 글들이 온라인상에서 재조명돼 도마에 오르기도 했다. 본인을 제주항공 재직자라고 소개한 A씨는 지난해 직장인 커뮤니티 블라인드에 ‘제주항공 타지 마라’라는 제목의 글을 올렸다. 그는 “요즘 툭하면 엔진 결함이다. 언제 떨어질지 모른다. 정비, 운항, 재무 모두 개판이 돼 다들 다른 항공사로 탈출하는 분위기”라고 꼬집었다.


항공 정비사들이 휴식 시간을 제대로 보장받지 못하는 등 열악한 근무 환경에 처했다는 주장도 있었다. 제주항공 정비사 B씨는 “정비사들은 야간에 13~14시간을 일하며 밥 먹는 시간 20분 남짓을 제외하면 쉬는 시간 자체가 없다”면서 “다른 항공사 대비 1.5배 많은 업무량에 휴식 없이 피로에 절어 있다. 언제 큰 사고가 터져도 이상하지 않은 상황”이라고 경고했다. 이어 “항공정비업계에서는 ‘제주항공에서 2년 버티면 어디서도 버틸 수 있다’는 말이 나돈다”고도 덧붙였다.


항공업계 관계자는 “제주항공은 애경그룹의 전폭적인 지원으로 국내 LCC 1위에 올라섰지만 이번 참사 악재로 ‘안전하지 못한 항공사’ 이미지가 굳어지면 머지않아 1위 자리를 내줄 우려가 크다”고 귀띔했다.


애경 계열사도 실적 부진 시달려


애경산업, 가습기 살균제 소송 중


제주항공 악재를 애경그룹 다른 계열사들이 메워줘야 하지만 계열사들도 분위기가 좋지 않은 것은 매한가지다.


애경케미칼이 대표적이다. 애경케미칼은 2021년 애경그룹 화학 계열 3사(애경유화, AK켐텍, 애경화학)가 통합법인으로 새 출발한 후 가소제, 무수프탈산을 비롯해 코팅용 수지 등 합성수지, 계면활성제, 바이오디젤 등 화학제품을 생산해왔다. 하지만 최근 석유화학 업황 부진에 허덕이는 모습이다. 애경케미칼의 2023년 영업이익은 451억원에 그쳐 전년(951억원) 대비 52% 감소했다. 같은 기간 매출도 2조1764억원에서 1조7937억원으로 18%가량 줄었다. 지난해 3분기 누적 영업이익은 177억원으로 전년 동기 대비 반 토막이 났다.


백화점, 쇼핑몰을 운영하는 유통업체 AK플라자는 수년째 적자에 시달리는 중이다.


코로나 이후 수익성이 악화되면서 2023년 261억원의 영업손실을 냈다. 2022년 대비 적자폭이 40% 이상 늘었다. 명품 없는 지역의 근린형 쇼핑몰 콘셉트로 백화점 1층에 있던 명품 매장을


내보내고 식음료, 리빙 매장으로 꾸렸지만 뚜렷한 효과를 내지 못했다. 영업손실이 커지자 애경그룹 지주사 AK홀딩스는 금융기관에서 1000억원을 차입해 AK플라자에 대여하기도 했다.


애경산업은 가습기 살균제 사건 관련 재판으로 시끌시끌하다.


애경산업은 SK케미칼이 제조한 유해 화학물질이 함유된 가습기 살균제를 판매해 98명에게 폐 질환 등을 유발하고, 이 중 12명을 사망하게 한 혐의로 2019년 기소됐다. 독성이 있음에도 인체에 무해하다고 거짓, 과장 광고한 혐의도 있었다.


2021년 1심에서는 해당 성분의 유해성이 입증됐다고 보기 어렵다며 무죄를 선고했다. 하지만 지난해 1월 2심은 이를 뒤집고 유죄를 인정했다. 살균제 사용과 폐 질환 등의 구체적인 인과 관계가 인정된다는 취지였다. 2심 재판부는 “사실상 장기간에 걸쳐 전 국민을 상대로 가습기 살균제의 만성 흡입독성 시험이 행해진 사건”이라고 일갈했다.


대법원은 지난해 12월 27일 인체에 유해한 원료로 만든 가습기 살균제를 유통, 판매해 인명 피해를 입힌 혐의로 안용찬 전 애경산업 대표에게 유죄를 선고한 원심을 파기환송했다. 법리적 문제를 다시 심리하라며 사건을 서울고법으로 돌려보낸 만큼 논란은 이어질 전망이다.


몇 가지 사건이 겹치면서 소비자들은 애경그룹 불매운동에 나설 채비다. 온라인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는 “제주항공 참사에 가습기 살균제 사건까지 생각난다”며 애경그룹이 보유한 브랜드 목록을 올리는 글이 부쩍 늘었다. 애경산업이 유통하는 2080 치약과 색조 브랜드 ‘에이지투웨니스’ 등이 불매 대상으로 거론된다. “소비자 안전을 무시하는 회사 같다” “구매 전 한 번만 확인하고 주의를 기울이자” 등 애경그룹에 대한 불안한 시각을 담은 내용이 삽시간에 퍼지는 양상이다.


애경그룹이 창사 이래 최대 위기에 내몰리면서 경영진 고심도 깊어지는 분위기다.


애경그룹 경영진은 제주항공 참사가 발생한 이후 어설픈 대처로 빈축을 샀다. 장영신 회장은 “유가족분들께 진심으로 사죄드린다”며 “신속하게 사고를 수습하고 필요한 조치가 이뤄질 수 있도록 제주항공뿐 아니라 그룹 차원에서 총력을 다해 모든 지원을 아끼지 않겠다”고 약속했다.


하지만 사과 시점이 문제였다. 사태가 발생한 지 무려 11시간이 지난 지난해 12월 29일 오후 8시 10분쯤 이런 사과문을 냈다. 181명 탑승자 중 179명이 사망했다는 사실이 발표된 후인데, 그룹 총수로서의 사죄 표명이 너무 늦었다는 지적이 쏟아졌다. 장 회장은 사고 현장을 찾지도 않았다.


애경그룹은 이전 경영진 문제로도 여러 차례 곤욕을 치른 사례가 있다. 모친 장 회장에 이어 그룹 경영을 진두지휘하는 채형석 총괄부회장은 2005년과 2007년 회사 공금 17억여원을 빼돌려 부당하게 쓴 혐의로 대법원에서 유죄 확정 판결을 받았다. 장 회장의 삼남인 채승석 전 애경개발 대표는 2017~2019년 서울 강남 한 성형외과에서 향정신성 수면마취제인 프로포폴을 100여차례 불법 투약한 혐의로 재판에 넘겨져 유죄가 확정됐다.


“애경그룹이 핵심 계열사 제주항공을 기반으로 급성장했지만 제주항공마저 위기에 내몰리면서 당분간 경영난에 시달릴 것으로 보인다. 사고 수습과 보험 처리에 막대한 비용이 드는 데다 유가족도 애경그룹이 직접 나서야 한다고 강조하는 만큼 미온적 대처로는 분위기 반전이 쉽지 않아 보인다. 소비자 신뢰를 회복하기 위한 보다 파격적인 조치가 필요한 때다.” 재계 관계자 귀띔이다.


[김경민 기자 kim.kyungmin@mk.co.kr]


[본 기사는 매경이코노미 제2293호 (2025.01.15~2025.01.21일자) 기사입니다]


김경민 매경이코노미 기자(kmkim@m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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