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열린 트럼프 시대 <3> 韓기업 생존전략 ‘부심’
- 삼성 반도체공장 54조 투자키로
- 현대차 하이브리드車 생산규모↑
- GM 등 美기업과 파트너십 체결
- 현지사정 밝은 인사 요직에 발탁
- 보조금 철회 없게 물밑작업 활발
강력한 보호무역주의 정책을 예고한 미국 도널드 트럼프 2기 행정부 출범에 맞춰 한국 기업의 생존 전략 짜기도 분주하다. 한국 기업들은 보편관세 등 무역장벽을 우회하기 위해 현지 생산을 확대하고, 미국 현지 기업과의 협력을 확대한다. 또 트럼프 시대 핵심 역할을 할 주요 인사들과 접촉면을 넓히며 미국 정가를 겨냥한 대관 활동을 강화한다.
오는 20일 트럼프 2기 출범을 앞두고 국내 주요 기업들이 미국 현지 대규모 투자 등 생존전략 짜기에 골몰하고 있다. 사진은 2019년 6월 30일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방한 당시 ‘한국 경제인과의 간담회’에 참석해 발언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美 현지 투자로 돌파구 마련
오는 20일 트럼프 2기 출범을 앞두고 국내 주요 기업들은 미국 현지 대규모 투자를 통해 돌파구를 마련하고 있다. 한국의 수출 1위 품목이자 대미 수출 3위 품목인 반도체는 현재 미국에 가장 큰 직접 투자를 단행하는 업계로 꼽힌다. 삼성전자는 미국 현지 반도체 생산 거점 건설에 370억 달러(약 54조 원) 이상을, SK하이닉스는 38억7000만 달러(약 5조6000억 원)를 투자할 예정이다.
삼성전자는 내년 가동 개시를 목표로 미국 텍사스주 테일러에 파운드리(반도체 위탁생산) 공장을 건설한다. SK하이닉스는 미국 인디애나주 웨스트라피엣에 반도체 패키징 생산기지를 지어 2028년 양산에 들어갈 계획이다. 미국 정부가 두 회사에 지급하는 투자 보조금의 근거인 반도체법(칩스법)을 두고 트럼프 당선인이 폐기 가능성을 거론한 점은 변수다. 일각에서는 일방적으로 법을 폐기하는 것은 어려울 것이라는 관측도 나온다.
배터리 업계는 세계적인 전기차 캐즘(Chasm·일시적 수요 정체)에 따른 미국 내 수요 둔화를 고려해 투자 속도를 조절하면서도 북미에 배터리 생산 거점을 확대하겠다는 기조를 유지한다. LG에너지솔루션 삼성SDI SK온 등 한국 배터리 3사는 미국에 대규모 투자를 단행하며 전기차 배터리 공장을 활발히 가동하고 신설을 추진 중이다. 각 기업은 GM 포드 스텔란티스 등 현지 완성차 업체와 합작법인(JV)을 설립하거나 단독으로 공장을 지어 현지 생산 거점을 늘려간다.
트럼프 당선인은 배터리 업계에 시설 투자 보조금을 지급하는 근거인 인플레이션 감축법(IRA) 폐기를 공언했다. 하지만 업계는 미국 지역경제를 살찌우고 일자리를 창출하는 현지 투자에 대한 지원을 거두는 극단적인 정책 변화는 일어나지 않을 것을 기대한다.
현대차그룹은 하이브리드차(HEV) 생산 능력과 현지 생산 규모를 늘릴 계획이다. 현대차그룹은 미국 조지아주에 있는 전기차 공장인 ‘현대차그룹 메타플랜트 아메리카’(HMGMA)에 하이브리드차 생산시설을 추가로 구축, 연간 생산 규모를 현재 30만 대에서 50만 대로 끌어올릴 방침이다. 올해 하반기부터 이 같은 혼류 생산이 가능해지면 현대차그룹의 미국 내 생산 비중은 70%까지 증가한다. 미국 현지 진출과 함께 미국 기업과 협업을 통해 사업 리스크를 줄이는 방안도 추진한다. 현대차그룹은 지난해 9월 미국 대표 자동차기업인 제너럴모터스(GM)와 포괄적 협력 업무협약을 맺었다. 이를 통해 신차 및 엔진 공동 개발·생산, 전기·수소 등 미래 에너지 기술 개발, 배터리 원재료·철강 등 공급망 관리 등 분야에서 협력하기로 했다. 또 인공지능(AI) 칩 선두 주자인 엔비디아와 모빌리티 혁신을 위한 전략적 파트너십을 체결했다. 현대차그룹은 현지 일자리 창출을 중시하는 트럼프 2기 대응을 위해 현지 추가 투자를 확대하는 방안 역시 검토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현지 대외협력 강화
국내 주요 기업들은 트럼프 2기 행정부와 접촉면을 넓히려는 물밑 작업도 활발히 펼친다. 삼성전자의 글로벌 대관 조직인 글로벌퍼블릭어페어스(GPA)는 미국 현지 정부 및 관계자들을 만나 협의를 지속해 오고 있다. 특히 현재 가장 큰 과제인 반도체 보조금 등과 관련해 현지 관계자들과 접촉하며 보조금 철회가 없도록 조율을 진행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LG그룹도 글로벌 대응 총괄 조직인 글로벌전략개발원과 워싱턴사무소를 중심으로 미국 현지 대외협력 강화에 힘쓰고 있다. SK그룹 역시 북미 대관 컨트롤타워인 ‘SK 아메리카스’를 바탕으로 트럼프 2기 행정부 인사들 공략에 나선다.
기업들은 미국 네트워크가 풍부한 인사를 요직에 등용하는 방식으로도 정책 불확실성에 대응한다. 삼성전자는 미국에 고객사가 많은 파운드리 사업을 이끌 DS부문 파운드리사업부장으로 DS부문 미주 총괄을 지내며 현지 네트워크를 쌓은 한진만 사장을 낙점했다. LG화학은 외교부 북미국장을 지낸 고윤주 전 제주특별자치도 국제관계대사를 최고지속가능전략책임자(CSSO) 전무로 발탁했다. 현대차그룹 역시 대미 대응을 중심으로 대외협력 조직을 강화하면서 지난해 초 해외 대관 조직인 ‘GPO’(Global Policy Office)를 사업부급으로 격상했다. 현대차그룹은 트럼프 전 대통령 당선 직후 미국 정부 기관과 연방 상·하원 의원실, 주요 싱크탱크 등에 현대차의 대미 투자를 강조한 홍보용 책자를 배포했다. 또 최근에는 성 김 전 주한 미국대사를 그룹 대외협력 사장으로 영입해 대관 능력을 강화했다.
박태우 기자 yain@kookje.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