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강·알루미늄 25% 관세 폭탄 내달 12일 시행
정부, 트럼프 발표 일일이 대응 아닌 '패키지 딜'
"수장 없어 어쩔 수 없다지만, 정상외교 노력해야"
최상목 대통령 권한대행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13일 국회에서 열린 경제 분야 대정부질문에 출석해 의원의 질의를 듣는 도중 안경을 고쳐 쓰고 있다. 고영권 기자
미국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의 '철강·알루미늄 25% 관세 폭탄' 시한이 째깍째깍 다가오고 있다. 우리 산업에 막대한 피해를 입힐 수 있는 자동차와 반도체 관세도 예고된 상황. 트럼프 대통령 측과 통화조차 못 하는 외교 실종 상태에 놓인 우리 정부는 결국 미국 측 요구가 모두 나온 뒤에야 대응한다는 협상 전략을 세웠다. 트럼프 대통령의 폭탄 선언에 건건이 대응할 경우 우리의 '협상 카드'만 소진될 뿐이고, 현재로서는 대응할 뾰족한 방법도 없기 때문이다.
대외경제정책연구원이 13일 발표한 '트럼프 2기 행정조치의 주요 내용과 시사점'에 따르면,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달 20일 취임과 동시에 ‘미국 우선 무역정책(America First Trade Policy)’ 대통령 각서를 발표하며, 불균형한 무역 등 문제 해결을 위한 정책 권고안 마련을 지시했다. 이후 곧장 멕시코·캐나다산 수입품에 25%, 중국산 수입품에 10% 추가 관세를 부과하는 행정명령을 발표했고, 10일에는 철강·알루미늄에 대한 25% 관세를 부과하는 '관세 전쟁'을 선포했다. 철강·알루미늄 관세는 내달 12일 발효되는데 대미 철강 수출액 4위(29억 달러)인 우리 산업에도 타격이 불가피하다는 게 중론이다.
대통령 권한대행 체제에서 내놓을 수 있는 전략은 제한적이다. 나름 세운 전략이 '패키지 딜' 방식이다. 트럼프 대통령의 요구를 일일이 대응하기보다 한 테이블에 모아 종합적으로 딜을 하겠다는 것이다. 미국이 예고한 자동차·반도체 등 우리 산업에 큰 타격을 주는 관세 정책이 구체화할 때까지 기다린 뒤 대응하겠다는 전략이다. 선출직이 아닌 최상목 대통령 권한대행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국정을 총괄하는 상황에서 어쩔 수 없는 대응책인 셈이다.
정부 고위 관계자는 "철강 관세에 협상부터 나서더라도 미국이 플러스 알파를 요구할 수도 있다"며 "미리 우리 협상카드를 보여주기보단 미국의 관세 정책의 연속성을 보고 큰 틀에서 윤곽이 드러나면 협상에 나서는 게 더 유리하다는 판단"이라고 강조했다. 또 다른 고위 관계자는 "미국의 관세 정책뿐 아니라 대북 정책, 조선업 협력 등을 보고 포괄적으로 대응할 방안을 고심하고 있다"고 말했다.
도널드 트럼프(왼쪽) 미국 대통령이 지난 11일(현지시간) 백악관에 도착한 압둘라 2세 요르단 국왕을 영접하고 있다. 워싱턴=AP 뉴시스 도널드 트럼프(왼쪽) 미국 대통령이 지난 11일(현지시간) 백악관에 도착한 압둘라 2세 요르단 국왕을 영접하고 있다. 워싱턴=AP 뉴시스
물론 최 대행도 손 놓고 있는 건 아니다. 최 대행은 트럼프 대통령과의 통화를 시도하고 있으며 "조만간 통화가 이뤄질 것"이라는 게 정부의 설명이다. 외교부는 트럼프 대통령 비서실에 한국 측 입장을 전달해 놓은 상태다. 정부 고위 관계자는 "다양한 시나리오를 열어 놓고 트럼프 대통령과의 통화에 대비하고 있다"며 "그의 특성을 충분히 고려해 한국도 충분히 협의할 준비가 돼 있다는 점을 알릴 계획"이라고 말했다.
전문가들도 우리 정부의 '패키지 딜' 협상 정책에 어느 정도 공감한다. 대통령 부재 정국인 데다 미국 정부가 한국을 향한 조준 타격을 하지 않은 상황에서 섣불리 나설 이유가 없고 현실적으로 내밀 카드가 없다는 것이다. 그러나 통화조차 못 하는 정상외교 불능 상황이 장기화하면 협상 타이밍은 물론 더 큰 불이익을 감수해야 할 수도 있다는 경고도 나온다. 허윤 서강대 국제대학원 교수는 "정상외교는 뒤이을 개별 협상에서 유리한 환경을 제공하는 게 목적"이라며 "먼저 나설 필요가 있느냐는 시각도 있지만, 그렇다고 나서지 않아 일방적인 불이익을 당할 필요도 없다"고 말했다. 강인수 숙명여대 경제학과 교수는 "최 대행과 트럼프 대통령 간 통화가 이뤄져도 트럼프 쪽에서 진지하게 파트너로 보지 않을 가능성이 적잖다"며 "그럼에도 가용할 수 있는 채널을 총동원해 미국 측과 협상을 위한 노력을 계속해야 한다"고 말했다.
세종= 이성원 기자 (support@hankookilb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