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월 물가, 연준 목표치 벗어나
지난달 미국 소비자물가 상승률이 7개월 만에 3%대로 복귀했다. 트럼프 2기 행정부가 들어서자마자 물가 상승률이 미 연방준비제도(연준)의 목표치(2%)에서 크게 벗어나 버린 것이다. 게다가 본격화할 트럼프의 관세·반이민 정책은 미국 내 물가를 더 끌어올릴 수 있는 재료다. 시장에서는 당분간 미 연준의 금리 인하 움직임이 멎을 수밖에 없을 것으로 본다.
그래픽=이진영
“금리 인하 사이클 끝났다” 말까지
12일 소비자물가가 발표되기 직전 트럼프 대통령은 자신의 소셜미디어에 “금리를 낮춰야 한다”며 연준을 압박했다. 하지만 직후 발표된 1월 소비자물가 상승률은 3%로, 전문가 예상치(2.9%)를 웃돌았다. 조류 인플루엔자 발병과 살처분 여파로 전년보다 53% 가격이 급등한 계란을 포함, 식료품 가격 상승이 뚜렷했다.
이런 물가 지표가 나온 후 제롬 파월 연준 의장은 하원에 출석해 금리 인하를 압박하는 트럼프 대통령의 발언이 연준 금리 결정에 영향을 미치지 않을 것이라고 했다. 그는 “인플레이션이 연준 목표보다 다소 높은 상황에 머물러 있다”며 “지금은 제약적인 (통화) 정책을 유지해야 한다”며 금리 인하 뜻이 없음을 분명히 했다.
오스턴 굴즈비 시카고 연은 총재는 1월 소비자물가에 대해 “정신이 번쩍 난다(sobering)”고 평가했다. 그는 뉴욕타임스에 “이런 지표가 몇 달 쌓이면, (인플레이션을 잡는) 우리 임무를 완수하지 못했다는 것을 뜻할 것”이라고 했다. 트럼프도 “바이든(전 대통령)이 물가를 올린 것”이라는 게시물로 전 정부를 비난하며 한발 물러섰다.
그래픽=이진영
시장은 연준의 금리 인하 가능성이 낮아졌다는 데 베팅했다. 미 국채 10년물 금리가 단숨에 0.1%포인트 오르는 등 금리는 일제히 상승했다. 기준 금리를 전망하는 시카고상품거래소의 페드워치툴에서 3월 금리 동결 가능성은 98%까지 높아졌다. 상반기 내내 금리 동결 가능성도 66%로 상승했다. 한 달 전만 해도 이 확률은 44% 정도였다.
글로벌 투자은행(IB)도 마찬가지다. 뱅크오브아메리카(BOA)는 1월 소비자물가에 대해 “연준이 더 이상 금리를 인하해서는 안 된다는 사실을 분명히 말해 준다”며 “금리 인하 사이클이 끝났다는 견해에 대한 확신이 높아졌다”는 의견을 내놓았다. 한국은행 뉴욕사무소는 최근 보고서에서 글로벌 IB 10곳 중 5곳이 미 연준의 올해 금리 인하 횟수를 0~1회로 전망했다고 전했다.
중국에 10% 추가 관세, 외국산 철강과 알루미늄에 25%의 관세, 다른 국가들이 미국 수출품에 부과하는 관세를 동일하게 부과하는 ‘상호 관세’까지 부과되면 미국 내 수입 물가는 올라가고, 금리 인하를 위한 연준의 입지는 더 쪼그라들 수밖에 없다.
연준 금리 동결, 한은에도 부담
미국이 금리 인하 사이클에서 이탈하면 달러 강세가 유지될 가능성이 높다. 다른 나라보다 상대적으로 금리 수준이 높은 미국이 글로벌 자금을 빨아들이고, 달러 수요가 늘어나면서 달러 가치가 상승하기 때문이다. 관세 분쟁으로 인한 국제 정세 불안정성도 안전 자산인 달러 가치를 높인다.
김진욱 씨티은행 이코노미스트는 13일 보고서에서 “환율이 향후 3개월 동안 1470원 수준을 유지할 것”이라고 했다. 미 연준의 통화 긴축 선호, 미국의 무역 제재·관세 가능성, 중국 위안화 약세 가능성 등이 당분간 환율을 현재 수준에 묶을 것이란 전망이다.
오는 25일 기준 금리를 결정해야 하는 한국은행의 속내도 복잡해졌다. 경기만 보면 금리를 내리는 게 마땅한데, 달러 강세가 금리 인하에 부담으로 작용하기 때문이다. 이창용 한은 총재는 이달 초 블룸버그 인터뷰에서 “2월 기준 금리 인하가 불가피한 것은 아니고, 외환시장 상황에 따라 달라질 수 있다”고 했다.
하지만 장기화하고 있는 내수 부진 때문에 금리 인하를 마냥 미루기 어렵다는 의견이 많다. 한국개발연구원(KDI)이 작년 11월 2%로 봤던 올해 한국 성장률 전망치를 최근 1.6%로 낮추는 등 분석 기관들의 올해 성장률 전망 하향 추세가 거세지고 있다. 정국 불안이 장기화하거나 통상 갈등이 더욱 심각해지는 경우 성장률 전망이 더 낮아질 수 있다고 KDI는 경고했다.
김정훈 기자 runto@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