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순훈 前 정통부 장관
저렴하고 안정적 전기공급
SMR만큼 좋은 카드 없어
배순훈 전 정보통신부 장관.
“인공지능(AI)은 전기를 먹고 산다. 실리콘밸리의 IT 기업들이 소형모듈원전(SMR)과 같은 원자력 발전 기술에 투자하는 이유다.”
18일 배순훈 한국과학기술원(KAIST) 발전재단 이사장은 AI가 촉발할 에너지 전성시대에 맞춰 한국이 차세대 에너지원으로 주목받는 SMR 기술개발에 더욱 속도를 내야 한다고 지적했다.
배 이사장은 “첨단기술 AI 인재들이 활약할 수 있는 토대를 구축하기 위한 최우선 조건은 저렴하고 안정된 전기공급에 있다”며 “AI로 인해 폭발적으로 증가하는 전기 수요를 경제적으로 저렴하게 공급하기 위한 유일한 대안은 원자력이고, 그중에서도 SMR은 미래 에너지 문제를 해결할 열쇠”라고 평가했다.
이어 “앞으로 세계는 무역전쟁이 아니라 에너지전쟁을 이어나가게 될 것”이라며 “증명된 기술로 전력을 얼마나 안전하고, 저렴하게 중단 없이 공급하느냐가 곧 국가경쟁력이 되는 시대가 온다”고 진단했다.
배 이사장이 SMR을 높게 평가하는 것은 경제성 측면에서다. 그는 “SMR은 추가 연료를 보급하지 않고 최장 30년까지도 사용이 가능하다”며 “원전 폐열이 적고, 인구밀집 지역에 들어갈 수 있어 과한 송배전 시설도 요구하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지구의 에너지 문제를 해결하는데 SMR만큼 좋은 카드는 없다”고 강조했다.
배 이사장은 SMR은 원전 제조 기술을 보유한 한국에도 기회가 될 것으로 봤다. 그는 “대형원전의 경우에도 원천기술 개발은 웨스팅하우스가 하지만 제조는 한국 기업들이 도맡고 있다”며 “증기기관 개발은 영국의 제임스 와트가 해냈지만 결국 그 기술을 통해 돈을 벌어간 것은 미국 사람들이었다는 점을 생각해 봐야 한다”고 조언했다.
배 이사장은 산업과 학계, 정책현장을 오가며 대한민국 산업 발전을 위해 투신해 온 인물이다. 미국 매사추세츠공대(MIT)에서 박사 학위를 받은 그는 KAIST 교수로 재직하다 서른아홉 살에 대우전자 사장이 됐다. 당시 ‘튼튼하고 기본 기능에 충실한 제품을 만들겠다’는 메시지를 담은 ‘탱크주의’ 광고에 직접 출연해 전 국민에게 얼굴을 알렸다. 김대중 정부에서는 정보통신부(현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장관을 역임했다.
배 이사장은 미래 산업 기반 조성을 위해 과거 인터넷망 구축과 같은 과감한 정책적 시도가 있어야 한다고 조언했다. 그는 정통부 장관 재직 시절 비대칭디지털가입자회선(ADSL) 방식의 초고속인터넷망을 세계 최초로 상용화시키며 한국 IT 산업 발전에 초석을 놓은 인물이기도 하다.
배 이사장은 “1998년 초고속 인터넷망을 구축하겠다는 한국의 발표를 듣고 일본에서는 ‘그 비싼 걸 깔아서 어떻게 하나. 한국 경제력으로 가당키나 한가’라는 비웃음이 나오기도 했다”며 “하지만 그때 방향을 잘 잡은 덕분에 우리는 세계가 인정하는 IT 강대국이 됐다”고 말했다.
유준호 기자(yjunho@m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