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종원 대표의 인기를 등에 업고 지난해 11월 6일 상장 첫날 장중 한때 6만 4500원까지 오른 더본코리아 주식은 3개월도 안돼 공모가 아래로 떨어져 한국 공모주 시장의 오늘을 상징적으로 말해주고 있다./서예원 기자
공모가는 3만 4000원이었습니다. 당초 더본코리아가 제시한 상장 희망가 ‘2만 3000원~2만 8000원’을 훌쩍 뛰어넘었습니다. 그런데도 772 대 1의 경쟁률을 보였어요. 귀에 익은 브랜드들과 백종원 대표의 인기도 한몫을 했을 겁니다. 지난해 11월 6일, 기대를 한껏 받으며 상장이 됐고 첫날 장중 한때 (기대를 저버리지 않고) 6만 4500원까지 올랐습니다.
하지만 주가는 석달도 안돼 공모가 아래로 떨어졌습니다. 고점 대비 반토막이 났습니다. 다른 공모주처럼 상장 직후 뛰어오른 뒤 서서히 무거워지는 모양새입니다. 개인투자자들은 아마 상장 직후 많이 오르면 서둘러 팔고 나갈 생각이였을거예요. 실제 네이버페이의 ‘내자산 서비스’를 보면 개인 투자자 2,221명의 평균 매수가는 5만 5139원 쯤 됩니다. 상장 당일 가격이 급등하자 개인들이 뛰어들었습니다. 그럼 누가 팔았을까요?
주식이 상장될 때 기관은 ‘의무 보유확약’을 합니다. 배정받은 주식을 이 기간 동안 팔지 않겠다는 약속이죠. 청약 과정에서 국내외 기관이 배정받은 더본코리아 주식 수는 총 188만 7734주. 그런데 이중 절반 수준인 93만 6986주가 의무 보유확약을 하지 않았습니다. 특히 외국계 기관투자자들은 배정받은 23만 주 중 단 한 주도 보유확약을 하지 않았습니다. 그나마 6개월 이상 팔지 않겠다고 약속한 기관투자사 물량은 단 14.97%, 28만 주 뿐이었습니다. 다시말해 기관은 애초부터 오래 보유할 생각이 없었어요. 그러니 기관도 (개인처럼) 상장한 뒤 주가가 오르면 서둘러 팔 생각이었던 것이죠.
백종원 (주)더본코리아 대표이사가 2024년 11월 6일 오전 서울 영등포구 한국거래소에서 열린 ㈜더본코리아 유가증권시장 신규상장기념식에 참석해 상장기념패를 전달받고 있다. /서예원 기자
그럼 이 머리싸움에서 누가 이겼을까요? 국내외 기관투자자들은 상장 후 2거래일 동안 미확약 물량의 85%에 해당하는 79만6640주를 팔아치웠습니다. 당연히 누군가 샀겠죠. 개인이 이들 물량을 받았습니다. 공모가 이하로 주가가 떨어진 지금, 손실은 대부분 5만원 대에 주식을 매입한 개인들에게 돌아갔을 겁니다.
지난해 우리 기관투자자들은 10곳 중 6곳이 희망 공모가 밴드를 넘어선 공모가를 써냈습니다. 예상 주가를 높게 잡는 것이죠(높게 써내야 공모주를 더 많이 배정받습니다). 덕분에 실제 공모가가 희망 밴드보다 비싸게 공모가가 책정된 기업이 지난해 66%나 됩니다.
그런데 정작 해당 주식을 오래 보유하겠다는 의무 보유 확약은 잘 하지 않습니다. 지난해 기관의 의무 보유확약 비율은 18.1%까지 떨어졌습니다. 그나마 그중 절반 가량이 ‘3개월 의무 보유확약’이였습니다. 기관투자자들은 바람만 잡고 정작 자신들은 상장 초기에 주식을 팔아 치우는 것입니다. 그러니 공모주 시장이 자꾸 ‘상장 직후 누가 먼저 팔고 떠나느냐’ 싸움판으로 변질되고 있습니다.
백종원 (주)더본코리아 대표이사가 11월 6일 오전 서울 영등포구 한국거래소에서 열린 (주)더본코리아 유가증권시장 신규상장기념식에 참석해 북을 치고 있다. 더본코리아 직원들은 우선 배정된 자사주 60만 주 중에서 15만 주를 포기했다./서예원 기자
참, 청약경쟁률이 772대 1이나 됐는데, 더본코리아 직원들은 우선 배정된 자사주 60만 주 중에서 15만 주를 포기했습니다. 왜 투자자들은 사고 싶어 안달이 난 주식을 정작 직원들은 포기했을까. 회사의 미래를 믿지 못했을 수도 있고, 직장인들이 2000~3000만 원씩 하는 주식 매입 대금을 갑자기 구하기도 쉽지 않았을 거예요.
하지만 증시 전문가들은 1년간 ‘보호예수’ 조항이 직원들이 자사주를 포기한 큰 이유일 것이라고 짐작합니다. 직원 상당수도 1년 이상 보유하는 게 부담이 됐던 건 아닐까. 그런 줄도 모르고 그 주식 청약에 67만 명이 몰렸네요. 더본코리아 상장은 우리 공모주 시장의 오늘을 말해줍니다.
발로 뛰는 더팩트는 24시간 여러분의 제보를 기다립니다.
▶카카오톡: '더팩트제보' 검색
▶이메일: jebo@tf.co.kr
▶뉴스 홈페이지: http://talk.tf.co.kr/bbs/report/writ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