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강압적인 외교정책에 저항하기 위한 미국산 및 미국기업 불매운동이 캐나다를 필두로 중남미·유럽 등 세계 각지에서 퍼지고 있다. 일각에서는 불매운동의 실효성에 대한 의문과 더불어 지역 경제나 소매업이 입을 타격을 우려하는 목소리도 나온다.
8일(현지시간) BBC 등 외신을 종합하면 캐나다에서는 트럼프 행정부의 관세 정책에 대한 대응으로 미국산 제품 불매운동이 격화하고 있다. 소비자의 불매는 물론 주정부와 업체들도 미국산 제품 판매를 중단하거나 미국 기업과 계약을 취소하며 운동에 동참하고 있다.
캐나다에서 가장 인구가 많은 온타리오주의 더그 포드 주지사는 지난 4일 관내 모든 매장에서 미국산 주류를 철거하라고 명령했다. 온타리오주 외에도 퀘벡주와 매니토바주, 브리티시컬럼비아주 등이 상점과 음식점 등에 미국산 주류 판매 중단을 지시했다. 4개주 인구를 합치면 약 3000만명으로 캐나다 인구의 75%에 해당한다. 포드 주지사는 또 트럼프 대통령 측근인 일론 머스크 테슬라 최고경영자(CEO)가 운영 중인 스페이스X와 체결한 1억캐나다달러(약 1009억원) 규모의 계약을 철회하겠다고 밝혔다. 아울러 온타리오에서 미국 뉴욕·미시간·미네소타 150만가구에 보내는 전기에 25% 수출세를 부과하겠다고 경고했다.
캐나다 전국 대형 마트들은 진열대에 캐나다산 상품을 채우고, 캐나다의 상징인 빨간 단풍 그림이나 '캐나다산을 구매하라'는 문구로 국산 제품 구매를 독려하고 있다. 카페들은 메뉴판에서 '아메리카노'를 '캐나디아노'로 바꾸며 재치 있게 저항했다. 미국 여행을 취소하는 캐나다인도 늘면서 미국 여행 예약이 전년 대비 40% 감소했다고 현지 여행사 '플라이트 센터 캐나다'는 전했다. 온라인에서는 아마존·넷플릭스·인스타그램·왓츠앱·X 등 미국 기반 플랫폼 사용 중단 운동도 진행되고 있다.
덴마크·스웨덴·프랑스 등 유럽도 '미국산 불매'…머스크의 테슬라 판매량 '급감'
미국산 불매운동은 캐나다와 함께 25% 관세 부과 대상이 된 멕시코는 물론, 다른 중남미 국가와 유럽까지 퍼지고 있다. 유럽 국가들은 트럼프 행정부의 관세 정책뿐 아니라 우크라이나에 대한 지원 중단 결정에 반발하며 소셜미디어(SNS)에서 불매운동을 독려하고 있다.
덴마크와 스웨덴에는 '미국산 불매'라는 페이스북 페이지에 각각 6만5000명 가까운 회원이 가입했다. 프랑스에도 지난달 28일 개설된 '미국산 불매, 프랑스산을 사세요!'라는 페이스북 페이지에 1만8000명 가까운 회원이 모였다. 이 페이지들은 미국산 불매 목록을 공유하며 대체 제품 구매를 제안한다. 프랑스에서는 코카콜라 대신 '브레이즈 콜라', 맥도날드 대신 '버거퀵', 스타벅스 대신 '콜롬버스 카페' 등이 대안으로 제시됐다.
프랑스 페이지 개설자인 33세 농부 에두아르 루세는 프랑스 인터라디오와 인터뷰에서 "가능한 한 많은 미국 기업 제품을 불매하는 것이 목표"라며 "머스크처럼 트럼프 행정부를 지지하는 소유주를 둔 기업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고 밝혔다. 프랑스자동차협회(PFA)에 따르면 머스크가 운영하는 테슬라 자동차의 프랑스 내 2월 판매량은 전년 대비 26% 감소한 것으로 알려졌다. 같은 기간 독일에선 75% 덴마크에선 48% 스웨덴에선 42% 감소했다.
불매운동 우려 목소리…"미국 기업 타격은 불분명, 지역 소매업 타격은 분명"
일각에서는 불매운동에 대한 어려움과 부작용을 우려하는 목소리도 나온다. 불매 운동이 미국 기업에 미치는 경제적 영향은 불확실하지만 미국산 제품을 이미 들여온 소매업체가 입을 타격은 분명하다는 지적이다. 캐나다 마트에서는 불매운동으로 인해 쌓인 미국산 재고를 판매하기 위해 미국산 제품을 '캐나다산'으로 속여 판매하는 사례가 급증하고 있다고 뉴욕 포스트는 전했다.
또 불매 대상인 미국 기업이 유럽이나 중남미 공장에서 제품을 생산하는 경우 지역 경제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칠 가능성도 있다. 현지 매체 라디오프랑스인터내셔널(RFI)는 펩시나 코카콜라, 제과업체 마스에 M&M 등 미국 식음료 기업은 모두 프랑스 전역에 공장을 두고 있으며 맥도날드 등 패스트푸드 업체들도 프랑스 등 유럽 각지에서 농산물을 구매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대체품을 찾는 데 따르는 어려움도 있다. 스웨덴에서 불매운동을 진행 중인 고트버그 헨릭손은 AFP에 "미국산 제품 불매운동을 하는 곳이 미국 소유의 페이스북이라는 점은 아이러니"라며 "대체할 소셜미디어를 찾는 게 거의 불가능하다"고 말했다.
머니투데이 이영민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