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산에너빌리티, 밥캣 주식담보대출
연간 이자비용만 470억원 달해
배당 받아도 빚 갚는데 소진
“차라리 부채 줄이는게 훨씬 유리”
두산그룹이 두산에너빌리티의 자회사 두산밥캣을 떼어내려는 배경엔 두산에너빌리티가 보유한 두산밥캣 주식담보대출이 있는 것으로 분석됐다. 두산밥캣에서 받는 배당금이 대출 원리금을 갚는데 소진되고, 오히려 부채 때문에 신규 자금 조달이 어려워지면서 두산에너빌리티 투자 여력이 제한되는 등 양사의 동행이 시너지보다는 역시너지가 더 크다는 것이다.
30일 산업계와 금융감독원 전자공시시스템에 따르면 두산에너빌리티가 보유한 두산밥캣 주식담보대출 규모는 약 7200억 원에 이른다. 두산에너빌리티의 대출금에 담보가 되는 두산밥캣 주식은 총 2360만 주다. 두산에너빌리티가 보유한 두산밥캣 주식(4617만주)의 51%다. 두산에너빌리티가 두산밥캣 주식담보대출로 인해 지출하는 이자비용은 연간 470억 원에 달한다.
두산에너빌리티가 인적분할로 두산밥캣의 지분을 보유한 신설법인을 만들어 차입금을 이전하고 싶어하는 이유는 부채 때문에 투자 여력 확보에 어려움을 겪고 있기 때문이다. 두산그룹은 2021년 두산인프라코어 매각에 앞서 두산밥캣을 분리한 뒤 두산에너빌리티 산하로 편입시켰다. 이 과정에서 두산인프라코어가 보유한 약 1조원 규모의 부채를 이전받았다. 대부분이 두산인프라코어가 보유한 두산밥캣 주식을 담보로 빌린 돈이었다.
두산에너빌리티는 두산밥캣 자회사 편입 이후 꾸준히 대출금을 상환했으나 규모가 워낙 막대해 수렁에 빠진 상태다. 두산에너빌리티가 ‘캐시카우’인 두산밥캣에서 발생하는 배당금을 받지 못하는데도 인적분할안을 고수하는 이유다. 2022년 약 921억 원, 지난해엔 753억 원을 배당금으로 확보해도 빚을 갚는데 급급해 실제 배당수익의 효과를 누리지 못했다는 것이다. 두산 관계자는 “두산에너빌리티가 2년 동안 두산밥캣에서 배당금을 받았지만 부채가 워낙 막대해 배당금이 사실상 빚을 갚는데 쓰였다고 보면 된다”고 말했다.
두산에너빌리티는 차입금 규모를 줄임으로써 신규 투자 여력을 확보해 향후 호황이 예상되는 원전 시장을 공략하는 것이 배당보다 훨씬 이익을 극대화하는 방안이라고 판단하고 있다. 국내외에서 신규 원전 프로젝트가 잇따르는 상황에서 원자로와 증기발생기, 터빈 등 원전 주기기 관련 기술과 생산능력을 확보해야 미래 사업 기회를 놓치지 않을 수 있다는 설명이다. 차입금 감소로 7000억 원의 투자 추가 여력이 생기는데다 비영업용 자산 처분으로 확보할 5000억 원의 현금까지 합하면 총 1조 2000억 규모의 투자가 가능하다는 게 두산의 입장이다.
다만 두산에너빌리티의 청사진 실현엔 주식청구권이라는 난관이 남아있다. 두산밥캣과 두산로보틱스 합병안이 철회된데 따라 두산밥캣의 주식매수청구권은 사라졌지만 두산에너빌리티와 두산로보틱스의 주식매수청구권은 유지되기 때문이다. 두산에너빌리티는 합병에 반대하는 주주들의 주식매수청구권 행사 가격을 주당 2만850원으로 제시했다. 행사 한도는 6000억 원을 설정해뒀다. 두산에너빌리티 인적분할안에 반대하는 주주들의 매수청구액이 한도를 넘기면 두산의 사업 재편안은 무산될 위험이 높다. 특히 두산에너빌리티의 2대주주(지분 6.94% 보유)인 국민연금 한 곳만 반대해도 주식매수청구 한도를 초과하게 된다. 아울러 두산에너빌리티의 주가가 매수 청구 가격보다 낮게 유지될 경우에도 주주들의 주식매수청구권 행사가 잇따를 것으로 보인다. 두산에너빌리티의 주가는 이날 종가 기준 1만8100원으로 주식매수청구권 행사 가격보다 13.1% 낮다.
재계 관계자는 “캐시카우인 두산밥캣을 분리하는 방안에 거부감을 가진 두산에너빌리티 주주들이 많다”며 “주식매수청구권 행사에 나서는 주주가 많을 땐 사업 재편 계획이 무산될 가능성이 있어보인다”고 말했다.
금융당국 움직임도 변수다. 두산은 분할신설법인과 두산로보틱스간 합병비율을 0.12대 1로 책정했으나 금융감독원의 정정요구에 부딪힌 바 있다. 금감원은 두산에너빌리티가 인적분할을 통해 설립하는 신설법인의 수익가치를 책정하면서 별도의 현금흐름을 추정하지 않은 것을 문제삼았다. 지난해 두산밥캣이 두산에너빌리티에 지급한 배당금은 753억원에 달하는데 두산그룹이 이를 미래 수익에 반영하지 않았다는 지적이다. 재계에선 두산그룹이 이를 반영해 새로운 정정신고서를 낼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