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대하던 OLED마저…위기의 K디스플레이 [스페셜리포트]
위기 요인 1. 정부 지원 힘입은 중국 막대한 투자
중국은 디스플레이를 기간 산업으로 지정하고 적극 육성하고 있다. 사진은 LG디스플레이 광저우 공장을 방문한 시진핑 중국 주석의 모습. (인민망)
LCD를 일찌감치 접수한 중국 정부와 디스플레이 업계는 ‘목표’를 OLED로 돌리고 막대한 투자를 이어나가고 있다. 당초 예상보다 빠른 속도다. 현장 관계자와 전문가 대다수는 당분간 중국이 경쟁력을 갖춘 LCD에 더 집중할 것이라 내다봤다. 그러나 세계적으로 OLED 수요가 급등하자 중국은 방향을 바꿨다. OLED로의 전환을 서두르며 사업 구조를 재편 중이다.
선두 주자는 중국 디스플레이 1위 업체 BOE다. BOE는 올해 3월 중국 청두시에 87억달러(약 11조5884억원) 규모 8.6세대 IT용 OLED 생산공장 건설을 시작했다. 8.6세대 유리 원장 기준 약 월 3만2000장을 생산할 수 있는 공장이다. 2026년 완공이 목표다.
BOE에 이어 또 다른 디스플레이업체 비전옥스가 8.6세대 설비투자에 나선다. 중국 허페이시에 550억위안(약 10조3152억원)을 들여 공장을 지을 예정이다. 생산 규모는 BOE와 같이 월 3만2000장이다.
디스플레이 시장에서 ‘세대(Generation)’ 구분은 패널 생산에 쓰이는 유리기판 원장(마더글라스·MotherGlass) 크기를 기반으로 한다. 세대가 높을수록 유리 원장 크기가 크다. 유리 원장이 커지면 하나의 원장에서 만들 수 있는 패널 수가 늘어난다. 따라서 적은 비용으로 다량의 패널 생산이 가능하다. 현재 가장 최신 세대가 8.6세대다. 투자가 확정된 중국 업체의 8.6세대 생산 규모는 월 6만4000장 수준이다. 두 회사 외에 티얀마, CSOT 등 다른 중국 업체도 투자를 검토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이에 비해 한국은 중국에 비해 투자가 뒤처진다. 삼성디스플레이만 8.6세대 규모의 IT용 OLED 생산시설 투자를 확정 짓고 진행 중일 뿐, 재무 여력이 없는 LG디스플레이는 8.6세대 설비투자 계획이 불투명한 상태다. 2026년이 되면, 중국의 8.6세대 시설 설비 규모가 한국을 4배가량 앞서게 된다.
중국 기업이 대형 투자를 거리낌 없이 진행하는 배경에는 중국 정부의 지원이 자리한다. 공산당 체제 국가인 중국은 정부가 기업을 대놓고 지원하는 사례가 빈번하다. 특히 디스플레이 산업은 중국이 국가 기간 산업으로 지정, 적극 육성하고 있다. 시장 질서 제약으로 정부의 직접 지원이 힘든 한국, 일본 기업과 차이가 크다. BOE의 경우 최대주주가 베이징시가 소유한 기금이다. BOE는 지난해 거둔 순이익 25억위안(약 4688억원)보다 더 많은 38억위안(약 7126억원)을 지원금으로 받았다. BOE그룹에 중국 정부가 지원한 금액은 누적 기준 231억위안에 달한다. 비전옥스는 허페이시 정부 지원을 받았다. 양측은 허페이궈시안테크놀러지라는 프로젝트 회사를 세우고, 투자를 단행했다. 합작사 지분은 허페이시 정부 등 국가 소유 투자회사들이 80%, 비전옥스가 20% 지분을 갖는다.
시장조사업체 DSCC는 대규모 설비투자에 힘입어 중국이 2023년부터 2028년까지 OLED 생산능력 부문에서 연평균 8%의 성장률을 기록할 것이라 전망했다. 한국의 연평균 성장률(2%)보다 4배 빠른 성장세를 보이며 한국을 추월할 것으로 예측했다.
위기 요인 2. 애국 소비에 위협받는 점유율
중국 내 불어닥친 ‘애국 소비’ 열풍도 한국 OLED 점유율 하락에 영향을 미쳤다. OLED는 TV와 대형 IT 기기에 들어가는 중대형, 스마트폰 등 모바일 기기에 들어가는 중소형으로 나뉜다. 중대형 부문은 아직 한국 업체 경쟁력이 건재하지만, 중소형 시장에서는 중국 업체에 점점 따라잡히는 형국이다.
한국디스플레이산업협회에 따르면 지난해 중대형 OLED 시장에서 한국의 시장점유율은 96.1%로 압도적이었지만 중소형 OLED 시장에서는 한국 71.6%, 중국 27.6%로 나타났다.
원인은 중국 기업의 ‘애국 소비’다. 시진핑 주석 집권 이후 중국은 ‘중국제조 2025’라는 계획을 내세워 자국산 부품 비중을 늘릴 것을 꾸준히 강조해왔다. 처음에는 문제가 되지 않았다. 중국 디스플레이 기술력이 한참 떨어진 탓이다. LCD에 집중하던 중국 디스플레이 업계는 OLED 기술력이 한국보다 상당히 떨어졌다. 대체재가 없는 관계로 중국 스마트폰업체들은 울며 겨자 먹기로 한국산 디스플레이를 사용했다.
그러나 중국 업체의 기술력과 수율이 높아지자, 상황이 급변했다. 중국 스마트폰업체는 자국산 디스플레이를 하나둘씩 찾기 시작했다. 실제로 오포, 비보, 샤오미, 화웨이 등 중국 스마트폰 제조사의 한국 OLED 패널 비중은 2021년 78%에서 지난해 16%로 대폭 감소했다.
자신감을 얻은 중국 디스플레이업체는 자국산 스마트폰에 공급한 경험을 바탕으로 해외 시장 개척에 돌입했다. 지금은 ‘내수용’이라 불리던 과거에서 완전히 벗어났다는 평가다. BOE는 애플 아이폰 패널 3대 공급사 지위에 올라섰다. 과거 기술적 결함 문제를 겪으며 애플 공급망에서 빠졌던 BOE다. 최근 들어 기술력과 수율이 정상 궤도로 올라서며 삼성디스플레이와 LG디스플레이에 이어 패널을 공급 중이다. BOE는 애플 아이폰16 시리즈에 이어 보급형 아이폰인 ‘SE’ 모델에 패널을 공급하는 데 성공했다. 애플은 2025년부터 아이폰에 사용하는 패널을 OLED로 바꿀 예정이다. 특정 공급사 비중 증가를 경계하는 기업 특성상, 1·2위인 삼성, LG보다 BOE에 물량을 더 배정할 가능성이 높다.
위기 요인 3. 끊임없는 기술 탈취 시도
한국과 중국의 OLED 기술 격차가 점점 줄어드는 배경으로 끊임없는 기술 탈취 시도를 빼놓을 수 없다. 최근 삼성, LG디스플레이 기술 유출자들이 줄줄이 유죄를 선고받고 기소 처분에 처해졌다.
지난 8월 13일 LG디스플레이 직원 출신 2명이 산업기술보호법과 부정경쟁방지 및 영업비밀보호에 관한 법률 위반 혐의로 구속 기소, 1명이 불구속 기소됐다. 이들은 2020~2021년 중국 디스플레이업체로 이직하면서 LG디스플레이 광저우 공장의 올레드 양산 공정 등 핵심 기술을 빼돌린 혐의를 받는다.
OLED 기술 유출 시도는 하루 이틀 일이 아니다. 올해 7월 삼성디스플레이의 OLED 제조 관련 기술을 중국에 유출한 혐의를 받는 전 삼성 연구원에게는 징역 6년이 선고됐다. 이 연구원은 삼성디스플레이에서 10년 이상 근무한 OLED 디스플레이 분야 전문가다. 퇴직 후 국내에 디스플레이업체를 설립해 운영하면서 관련 기술을 본인이 중국에 설립한 업체와 중국 디스플레이업체에 판매·제공하려 한 것으로 조사됐다. 이 과정에서 삼성 재직 당시 후배 연구원 등을 끌어들여 영업비밀을 자신의 국내 업체로 빼돌려 삼성 기술을 모방한 것으로 드러났다.
국내 협력사 직원 등을 통한 기술 탈취 시도도 상당수다. 삼성디스플레이는 2019년 협력사 톱텍을 상대로 민·형사 소송을 제기했다. 2018년 4월 삼성의 스마트폰 시리즈에 적용되는 ‘3D 라미네이션’ 관련 설비사양서, 패널 도면 등 산업기술과 영업비밀을 위장 회사에 유출한 뒤 중국 업체 2곳에 넘겼다는 이유에서다. 톱텍은 이 같은 혐의로 지난해 7월 우리 대법원으로부터 톱텍 전 대표를 포함한 관계자들이 유죄 선고를 받았다.
[김경민·정다운·반진욱 기자]
[본 기사는 매경이코노미 제2277호 (2024.09.25~2024.10.01일자) 기사입니다]
김경민 매경이코노미 기자(kmkim@mk.co.kr), 정다운 매경이코노미 기자(jeongdw@mk.co.kr), 반진욱 매경이코노미 기자(halfnuk@m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