향후 수출 전망 갈수록 악화
기업 유동성 위기 겹치면서
공격적 금리인하 영향 준듯
이창용 “성장 불확실성 커져”
내년 1월 금리 추가인하 언급
글로벌 무역 갈등 격화되면
내년 성장률 1.7%까지 추락
한국은행이 시장의 예상을 깨고 2개월 연속 기준금리를 인하한 것은 한국 경제가 처한 상황이 엄중하다는 판단에서다.
한은은 지난 달 “향후 3개월 동안 금리를 동결하는 게 바람직하다”는 의견을 냈지만, 신뢰 훼손이라는 부담에도 불구하고 이번에 금리를 내렸다. 경제상황 변화에 선제적으로 대응해 경제성장률을 적극 방어하겠다는 의지가 이번 금융통화위원회에 반영됐다.
이창용 한은 총재는 28일 기자간담회에서 “성장 경로의 불확실성이 높아진 만큼, 경제상황 변화를 보아가며 기준금리를 추가적으로 조정할 필요가 있다고 판단하고 있다”고 밝혔다. 내년 1월로 예정된 금통위에서 다시 한번 금리를 낮출 수 있다는 의미다. 한은은 글로벌 금융위기가 한창이던 2008년 10월부터 2009년 2월까지 6차례 금리를 인하한 이후 연속적으로 금리를 내린 적은 없었다.
이 총재는 미국과 중국 경제상황과 한국 수출기업 위기를 통화정책의 중요한 고려 요소로 꼽았다. 이 총재는 “미국 신정부 경제정책 방향에 따른 인플레이션 불확실성이 증대됐다”며 “6개월 전 예상했던 속도로 미국 금리가 떨어지지 않을 수 있다는 점을 염두에 두고 있다”고 했다.
시장에서는 내년 1월 출범하는 트럼프 정부가 관세 강화, 불법 이민자 추방, 감세 등 정책을 본격화하면 인플레이션이 촉발될 가능성이 크고, 지난 9월 시작된 미 연방준비제도(Fed·연준)의 통화정책 완화 기조가 예상보다 빨리 종료될 수 있다는 전망이 제기됐다. 애덤 포즌 피터슨국제경제연구소(PIIE) 소장은 “연준의 기준금리 인하는 내년 3월이 마지막일 것”이라며 “내년 6~7월께부터 금리를 다시 올릴 것으로 예상한다”고 전망했다.
연준의 금리시계가 빨리 돌아갈 경우 한은으로서는 완화적 통화정책을 펼칠 시간이 많지 않다. 이같은 부담감이 이번 전격적인 금리 인하로 이어졌다는 분석도 있다. 조용구 신영증권 연구원은 “미국은 물론 유럽도 빠르게 금리를 내리는 점이 한은에 추가 금리인하 명분을 줬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창용 한국은행 총재가 28일 서울 중구 한국은행에서 열린 통화정책방향 기자간담회에서 발언하고 있다. 2024.11.28 [사진 = 사진공동취재단]
이 총재는 이번 금리인하가 수출 부진 영향을 상쇄하기 위한 조치라는 점을 강조했다. 그는 “지난 8월 내년 재화수출이 2.9% 증가할 것으로 예상했는데, 이번에 1.5%로 낮췄다”며 “수출에서 내수로 전파되는 온기가 많이 낮아질 것에 대비해 금리를 낮추면서 내수에 영향을 주는 것을 고려했다”고 설명했다.
일부 수출기업의 유동성 위기 상황이 통화정책 판단에 영향을 줬다는 평가도 나왔다. 이 총재는 “(롯데) 그룹이 건실한 만큼 시장에 주는 충격이 적을 것이라는 판단 하에 금융당국이 대응을 하는 것으로 안다”면서도 “중국 경제가 어렵고 자국산 물건을 많이 사려는 상황인 만큼 (우리 기업들이) 구조적인 개혁 노력을 더 많이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한국은행이 내년과 후년 성장률 전망치를 각각 1.9%와 1.8%로 하향 조정한 것은 2%로 추산되는 잠재성장률을 밑도는 경제상황이 장기화할 수 있다는 것이다. 잠재성장률은 인위적인 경기부양 없이 달성할 수 있는 최대 경제성장률을 의미한다. 이 총재는 “내년 성장률을 잠재성장률보다 낮은 수준으로 하향 조정했는데, 1.9% 경제성장률 전망치에도 불확실성이 많아 내년 2월에 (다시 한번) 변경할 가능성이 크다”고 했다. 한은 경제전망 보고서는 글로벌 무역 갈등이 격화할 경우 내년 성장률이 기존 전망보다 0.2%포인트 낮은 1.7%를 기록할 수 있다고 밝혔다.
한편 한은은 올해 경상수지 흑자 규모가 900억 달러에 달할 것으로 전망했다. 고사양 반도체를 중심으로 수출액 증가 등을 반영해 지난 8월 전망 730억 달러보다 170억 달러 높였다. 올해 취업자 수 증가 규모는 17만명으로, 당초 예상 20만 명보다 줄어들 것으로 봤다. 제조업과 건설업 부진으로 노동 수요가 줄어들 것을 고려한 결과다.
올해 소비자물가 상승률 전망치는 기존 2.5%에서 2.3%로, 내년 전망치는 2.1%에서 1.9%로 낮췄다.
오수현 기자(so2218@mk.co.kr), 곽은산 기자(kwak.eunsan@m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