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은, 2연속 금리 인하·성장률 전망치 하향 조정
이창용 “추가 인하 가능성 있다” 이창용 한국은행 총재가 28일 서울 중구 한국은행에서 열린 통화정책방향 기자간담회에서 질문을 받고 있다. 사진공동취재단
트럼프 2기 고관세 실현 땐
경제 성장 하방 리스크 커져
고환율 부담에도 선제 조치
반도체 경기는 구조적 문제
글로벌 갈등 땐 최악 성장률
시장 체감엔 6개월 시간 차
가계부채·부동산 자극 우려
한국은행 금융통화위원회가 가계부채와 환율 상승 가능성을 감수하며 기준금리 인하를 결정한 건 내년 1월 미국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 출범을 앞두고 부쩍 어두워진 경기 전망에 선제 대응을 한 것으로 볼 수 있다. 트럼프 행정부가 예고한 ‘고관세’ 정책이 현실화할 경우 수출, 내수 등 전방위로 경제의 하방 리스크가 커질 수 있다는 점을 우려해 방어에 나선 것이다. 전문가들은 금리 인하만으로 경기 침체를 막기는 어렵다며 적극적인 재정 정책 등 보완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한은이 28일 기준금리를 두 달 연속 내리고 국내총생산(GDP) 성장률 전망치를 하향 조정한 가장 큰 배경은 미국의 정치 변화다. 트럼프 당선은 물론 의회까지 공화당이 장악하면서 통상 환경 변화가 예상되기 때문이다. 대외무역 의존도가 높은 한국 경제에 직결되는 문제다.
수출 증가세의 둔화는 이미 뚜렷하다. 한은은 올해 수출 증가율을 지난 8월 전망치보다 0.6%포인트 낮춘 6.3%로 예상했다. 내년도 당초보다 1.4%포인트 내려 1.5%에 그칠 것으로 관측했다. 이창용 한은 총재는 “주력 업종의 경쟁 심화, 보호무역주의로 당초 예상보다 수출 증가세가 둔화될 것으로 전망되는 점을 반영한 결과”라고 설명했다.
문제는 반도체 경기와 글로벌 지정학적 상황 등에 따라 불확실성이 더 커질 수 있다는 점이다. 특히 수출의 경우 구조적 요인이 크기 때문에 단기간에 우려가 해소되기 어렵다. 반도체 수출 가격은 고대역폭메모리(HBM)를 중심으로 올랐지만 물량이 늘지 않고 있고, 중국 반도체 기업들의 저가 판매가 증가하면서 저사양 반도체 수출도 가로막고 있는 실정이다. 한은은 트럼프 행정부의 ‘10% 보편관세’가 현실화하면 내년 성장률이 1.7%까지 떨어질 수 있다고 내다봤다.
내수도 녹록지 않다. 한은은 올 민간소비 증가율을 당초 1.4%보다 낮춰 1.2%로, 내년도 기존(2.2%)보다 낮춰 2.0%로 전망했다. 민간소비가 회복되겠지만 예상보다 속도가 더딜 것이란 의미다. 건설투자는 내년 전망치로 -1.3%를 제시, 8월 전망치보다 0.6%포인트 하향 조정해 부진이 이어질 것으로 보인다.
이날 금통위 결정 과정에선 만장일치가 아닌 4명 인하, 2명 동결 의견이 나왔다. 트럼프 당선 이후 원·달러 환율은 이미 1400원 선을 오르내리고 있다. 기준금리가 추가로 낮아지면서 달러와 비교해 원화 가치가 더 떨어져 1400원대 환율이 굳어질 가능성도 있다. 박형중 우리은행 이코노미스트는 “기준금리 인하로 높은 수준의 원·달러 환율이 지속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관건은 환율 부담을 지면서까지 단행한 금리 인하로 경기 하방 압력을 얼마나 막을 수 있을지다. 성장률 하락의 주요인으로 지목되는 수출 등 통상 이슈는 금리로 통제하기 어려운 대외 문제라는 점에서 더 그렇다. 또 금리 인하가 시장에서 효과를 발휘하는 데 6개월 이상 시차가 존재한다는 점에서 다소 주춤해진 가계부채만 자극하는 것 아니냐는 우려도 나온다. 이 총재는 “수출 증가율이 떨어지는 건 구조개혁을 통해 대응해야 하고, 그 과정에서 금리가 성장률을 받쳐주는 역할을 할 수 있길 기대한다”면서 “기준금리를 0.25%포인트 낮추면 성장률을 0.07%포인트 올리는 효과가 있을 것”이라고 추정했다.
하준경 한양대 교수는 “금리 인하로 원화 약세가 되면 수출이 줄어드는 것을 상쇄할 수는 있을 테지만 내수에 얼마나 효과가 있을지는 불확실하다”면서 “정부가 정책적 대응을 하지 않으면 금리 인하로 소기의 효과를 거두긴 쉽지 않다”고 말했다.
임지선 기자 vision@kyunghya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