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8일 한국은행이 지난달에 이어 2회 연속 기준금리 ‘깜짝 인하’를 결정했다. 연속 금리 인하로 ‘돈 풀기’에 나선 것은 15년9개월 만이다. 1%대 저성장 문턱에 진입한 한국 경제에 트럼프의 ‘고관세 공포’까지 엄습하고 있어서다.
이날 한은 금융통화위원회는 올해 마지막 통화정책방향 회의에서 기준금리를 연 3%로 0.25%포인트 인하했다. 지난달 3년2개월 만에 금리 인하로 경로를 튼 데 이어 연속으로 금리를 인하한 것은 글로벌 금융위기(2008년 10월~2009년 2월까지 6회 연속) 이후 처음이다. 한국과 미국(연 4.5~4.75%) 간 금리 격차는 다시 1.75%포인트로 벌어졌다.
이달 통화정책의 난도는 높았다. 한국은행은 1400원대 고환율(원화 약세) 압박에 금융안정(동결)을 결정할지, 아니면 경제 동력인 수출 둔화와 얼어붙는 내수에 ‘경기부양(인하)’을 할지 갈림길에 섰다. 금통위원 6명 중 4명은 금리 인하 의견을, 나머지는 ‘동결’을 택했다.
전문가들은 한국 경제에 ‘빨간불’이 켜졌다는 뚜렷한 지표가 한은이 두 달 연속 돈을 풀기로 결정한 단초가 됐을 것으로 본다. 한은은 이날 경제전망에서 올해 성장률 전망치를 기존(8월 예상치) 2.4%에서 2.2%로 낮췄다. 특히 내년엔 2.1%에서 1.9%로 내렸다. 1.9%는 한은이 추정하는 잠재성장률(2%)에도 미치지 못하는 수치로 한국의 저성장 진입을 예고한다. 나아가 2026년 성장률 전망치를 1.8%로 제시했다. 경쟁 심화에 따른 수출 증가세 둔화를 구조적 요인으로 전제하고 수년간 1%대 성장 고착화 우려를 던진 것이다.
전문가 “성장 더 꺾이기 전에, 공격적 부양책 필요”
1980년 이후 성장률이 2% 미만을 기록한 해는 2차 오일쇼크가 터진 80년(-1.6%), 외환위기인 98년(-5.1%), 글로벌 금융위기 때인 2009년(0.8%), 코로나 팬데믹 기간인 2020년(-0.7%)과 2023년(1.4%) 다섯 번뿐이었다. 이창용 한은 총재는 “성장 경로의 불확실성이 높아진 만큼 기준금리를 추가로 조정할 필요가 있었다”고 밝혔다.
김영옥 기자
몸집을 키우는 ‘트럼프 포비아(공포증)’도 국내 경제를 압박한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 당선이 확정되면서 국내 수출 기업은 고관세 폭탄 우려가 커지고 있다. 그동안 미약한 내수 회복세를 메워 온 수출 둔화 폭은 더 커질 수 있다.
‘물가 안정’ 측면에선 금리 인하 여건은 마련됐다. 9월(1.9%)부터 1%대로 내렸고, 10월엔 1.3%로 2021년 1월(0.9%) 이후 가장 낮다. 한은에 따르면 올해와 내년 소비자물가 상승률(전망치)은 각각 2.3%, 1.9%로 지난 8월 예상치(2.5%, 2.1%)를 하회할 전망이다.
김영옥 기자
반면에 금리 인하 결정으로 ‘1400원대 고환율(원화 약세)’ 부담은 커졌다. ‘트럼프 트레이드’에 미국 달러가 질주할 때 기준금리를 인하하면 상대적으로 원화가치는 더 떨어질 수 있어서다. 화폐가치가 하락하면 수입물가를 끌어올리고, 외국인의 자금 이탈을 부추길 수 있다.
일부 전문가는 고환율 우려보다 ‘1%대 저성장’ 탈출이 더 시급한 과제라며 적극적인 경기부양책을 펼쳐야 한다고 주장한다. 조영무 LG경영연구원 연구위원은 “물가가 하락하고, 성장률이 떨어진 상황에선 금리 인하는 불가피한 선택이었다”며 “경제 성장세가 더 둔화하기 전에 정부는 보다 공격적인 부양 정책을 펼쳐야 한다”고 말했다. 김영익 서강대 경제대학원 교수는 “한국의 경제 상황과 물가를 고려해 추가로 금리를 더 낮춰야 한다”고 말했다.
염지현 기자 yjh@joonga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