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리스틴 라가르드 유럽중앙은행(ECB) 총재는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당선인의 관세 위협에 유럽연합(EU)이 보복 관세로 무역전쟁을 벌이기보단 미국산 제품 구입을 늘리는 등 협상을 통해 헤쳐 나가야 한다고 제안했다.
28일(현지시간) 파이낸셜타임스(FT)에 따르면 라가르드 총리는 트럼프 당선 후 첫 인터뷰를 통해 EU는 트럼프 당선인의 관세 위협에 "보복이 아니라 협상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관세와 보복 관세로 이어지는 "대규모 무역전쟁은 누구에게도 이익이 되지 않는다"면서 "글로벌 성장을 갉아먹기만 할 뿐"이라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트럼프 당선인이 관세 등을 통해 미국을 다시 위대하게 만들겠다는 공약에 대해 "세계적으로 수요가 감소한다면 미국이 어떻게 위대해질 수 있겠는가"라고 반문했다.
트럼프 당선인은 모든 수입품에 10~20%의 보편관세를 부과하겠다고 공언한 상태다. 최근엔 취임 첫날 멕시코와 캐나다에서 들어오는 모든 수입품에 25% 관세를 물리고 중국에도 펜타닐 문제로 10% 관세를 부과하겠다고 예고하는 등 다양한 목적으로 동맹과 관계없이 관세 무기를 적극 활용하겠단 의지를 거듭 드러냈다. 유럽 지도자들은 트럼프 당선인의 관세 폭탄이 현실화할 경우 대미 무역 흑자를 갉아먹고 유럽 내 생산기지가 미국으로 옮겨갈 수 있다고 우려한다.
라가르드 총재는 미국과 협상할 때 "수표책 전략"을 활용해야 한다고 봤다. 미국에 액화천연가스(LPG)나 무기 구입을 더 늘리겠다고 제안하는 등 경제력을 활용해 국익을 지키란 것이다. 그는 "트럼프 당선인이 보편관세 범위를 제시했다는 건 토론에 열려있단 뜻"이라면서 "우리에겐 테이블에 앉아 토론할 기회가 있다"고 강조했다.
현재 EU 행정부 격인 EU집행위원회는 관세에 대한 대응 방안을 검토 중이다. FT는 EU 관계자들을 인용해 고려 중인 옵션 중엔 농산물, 천연가스, 무기 등 미국산 제품 구매를 늘리는 방안이 포함됐다고 전했다. 아울러 EU는 미국 기업들이 EU 세금이 쓰이는 공동 군수 조달 사업에 참여할 수 있게 허용하고 대중 무역 및 지정학적 정책에서 미국과 보다 긴밀히 협력하려 한다는 전언이다.
유럽의 경우 미중 무역전쟁 결과로 값싼 중국산 제품이 유럽 시장으로 흘러들어와 유럽 제품의 경쟁력을 해칠 가능성을 우려한다. 이렇게 되면 유럽과 중국의 긴장이 고조되고 안 그래도 부진한 유럽 경제를 위협할 수 있다는 게 많은 전문가의 지적이다. 라가르드 총재 역시 유럽 정책 입안자들이 중국산 제품의 "경로 변경 시나리오"를 주시해야 한다고 언급했다.
아울러 라가르드 총재는 미국 관세가 유로존 인플레이션에 미치는 영향을 평가하기엔 "너무 이르다"면서도 경제 활동 위축과 환율 변동에 따라 "단기적으로 물가가 상승하는 경향을 보일 수 있다"고 말했다. 실제 영향은 "관세 대상과 적용 기간 등에 따라 달라질 수 있다"고 봤다. 그는 "트럼프 당선인의 위협은 유럽 경제에 필요한 재설정의 기회가 될 수 있다"면서 "위기를 기회로 바꾸는 건 유럽인의 책임"이라고 덧붙였다.
머니투데이 윤세미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