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가계 자산, 부동산에 묶여
내수 소비와 생산적 투자 줄어
증시로 자금 유입 감소 흐름도
경기도 과천시의 한 아파트단지 모습./ 오종찬 기자
경기 과천시에 사는 김모(59)씨의 재산은 지금 살고 있는 시가 15억원짜리 30평대 아파트 한 채가 거의 전부다. 그나마 집을 살 때 빌린 은행 대출금을 갚기 위해 매달 300만원씩 원금과 이자를 갚고 있다. 김씨 가족이 가진 금융 자산은 채 1억원이 되지 않는다. 김씨는 “대출금 상환이 벅차지만, 집값이 더 오를 수 있다는 기대 때문에 집을 팔거나 주택연금에 가입할 생각은 없다”고 말했다.
김씨처럼 자산이 부동산에 몰려 있는 것은 한국 가계의 일반적인 특징이다. 29일 OECD(경제협력개발기구)와 한국은행에 따르면, 2022년 기준 우리나라 가계의 비금융 자산 비율은 63.2%로 집계됐다. 미국(33.8%)이나 일본(37.2%)의 두 배에 가깝다. 영국(46.8%), 캐나다(46.3%), 프랑스(61.7%)보다 높다.
문제는 부동산에 쏠린 자산 구조가 한국 경제의 성장 잠재력을 잠식하고 있다는 점이다. 자산이 부동산에 묶이면서 내수 소비와 생산적인 투자가 줄고, 국내 증시로 자금이 흘러들지 않기 때문이다. 기업들은 필요한 투자를 하기 어려워지고, 이는 경제성장을 저해하는 악순환을 만든다. 주원 현대경제연구원 실장은 “기업으로의 자금 흐름이 장기간 막히면 산업 전반의 활력이 떨어질 수밖에 없다”고 했다.
이는 이미 30여 년 전 일본에서 나타난 모습과 판박이다. 1980년대 일본은 저금리, 수출 촉진 정책, 기술 혁신 등으로 최대 경제 호황기를 맞았다. 갈 곳 없는 돈이 쏠린 곳은 부동산이었다. 일본 부동산 가격은 1987년 한 해 동안에만 약 70% 폭등했다. 1990년, 일본 가계의 비금융 자산 비율은 63.7% 수준이었다.
더 큰 문제는 이런 거품이 꺼지면서부터 발생했다. 일본 주택 가격이 뚝뚝 떨어지기 시작해 가계가 직격탄을 맞게 된 것이다. 일본의 ‘잃어버린 30년’ 배경엔 이런 부동산 버블이 있었다는 분석이 많다. 생산적 분야나 국내 기업에 자금이 유입될 수 있도록 증시로 돈의 흐름을 돌리지 않으면, 한국도 일본처럼 장기 침체에 빠질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자금 흐름 면에서 한국이 장기 불황 초입의 일본보다 심각한 부분도 있다. 부동산 쏠림 현상에 더해, 한국 자금이 해외로 빠져나가는 것이다. 국내 투자자들이 부진한 국내 증시가 아닌 미국 주식에 투자하기 때문이다. 미국 S&P500, 다우평균 등은 연일 최고치를 경신하며 투자자들을 끌어모으는 반면, 코스피는 연초(2669.81)보다 7% 넘게 빠져 겨우 2500선에서 움직이고 있다. 서학개미(해외 주식에 투자하는 국내 투자자)들의 미국 주식 보관액은 이번 달 초 사상 처음으로 1000억달러(약 140조원)를 넘었다.
한예나 기자 nayena@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