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국 인텔이 팻 겔싱어 CEO(최고경영자)와 결별했다. 인텔을 창사 이래 최대 위기로 몰아넣은 파운드리(반도체 위탁생산) 사업 재진출을 진두지휘한 겔싱어 CEO의 퇴진으로 인텔이 새로운 분기점을 맞을 것이란 전망이 나온다. 하지만 바닥으로 떨어진 인텔 주가의 반등을 기대하기엔 시기상조라는 분석이다.
2일(현지 시각) 주요 외신에 따르면 인텔은 지난 1일부로 겔싱어 CEO가 사임했다고 밝혔다. 신임 CEO를 찾는 동안 데이비드 진스너 CFO(최고재무책임자)와 미셸 존스턴 홀트하우스 클라이언트컴퓨팅그룹(CCG) 사장이 임시 공동 CEO로 인텔을 이끈다.
인텔 주가는 겔싱어 CEO의 사임 소식에 6%까지 급등했다가 0.5% 하락 마감했다. 겔싱어 CEO가 일한 3년 9개월 동안 인텔 주가는 61% 떨어졌다. 올해 하락률만 52%에 달한다. 30여년을 인텔에서 일한 '인텔맨'의 구원 등판은 처절한 실패로 끝났다.
겔싱어 CEO가 떠나면서 인텔의 'IDC(종합 반도체 기업 2.0' 전략은 대대적인 수정이 불가피해졌다. 시장의 이목은 '돈 먹는 하마'로 전락한 파운드리 사업의 향방으로 쏠린다. 파운드리에서 발생한 막대한 적자는 인텔의 위기를 불러온 가장 큰 요인으로 꼽힌다. 파운드리 영업손실은 2022년 52억달러(약 7조원), 2023년 70억달러(10조원), 올해 1~3분기 111억달러(16조원)에 달했다. 더이상 적자를 감당할 수 없는 수준이다.
인텔은 9월 파운드리 사업부 분사 계획을 밝혔다. 파운드리 자회사를 신설해 외부 투자금을 유치하고, 파운드리 고객사의 기술 유출 우려를 불식한다는 내용이다. 당시 겔싱어 CEO는 파운드리 사업부 매각에는 선을 그었다. 겔싱어 CEO가 떠났지만 매각 불가 상황은 이어질 전망이다. 미국 정부가 인텔에 79억달러(11조원)에 달하는 보조금 지급을 확정하면서 파운드리 사업부를 분사할 경우에도 인텔이 50.1% 이상 지분을 유지해야 한다는 제약을 걸었기 때문이다.
자금난에 봉착한 인텔 입장에서는 미국 정부의 보조금을 포기하기도 어렵다. 최대주주 지위를 유지하면서 최대한 많은 투자금을 유치하는 게 최선이다. 하지만 흑자는커녕 매출 성장에도 실패한 파운드리 사업부가 인텔이 기대하는 가치로 평가받긴 어려운 상황이다.
인텔은 올해 3월 자회사로 분리한 프로그래머블 반도체(FPGA) 기업 알테라 매각도 추진 중이다. 기업공개(IPO)를 위해 분사를 단행했는데, 빠른 현금 확보를 위해 매각으로 선회했다. 인텔이 2015년 알테라를 인수하면서 지불한 금액은 167억달러(23조원)에 달한다. 인텔은 알테라 기업가치를 170억달러로 평가하고 매각 대상을 찾고 있다. 이처럼 막대한 자금을 동원할 인수 주체가 나타날지 미지수다. 매각이 지연될수록 기업가치는 떨어질 수밖에 없다.
인텔 위기가 불거진 이후 국내 투자자는 매도보단 매수를 택했다. 예탁결제원에 따르면 8월 이후 매도결제 5억3201만달러, 매수결제 4억8387만달러로 순매수 4819만달러(678억원)를 기록했다. 인텔 주가가 역사상 최저 수준으로 떨어진 만큼 반등을 기대한 이들이 더 많았다.
인베스팅닷컴에 따르면 인텔에 대한 애널리스트(34명) 12개월 평균 목표주가는 24.68달러다. 이날 종가보다 3% 높은 수준이다. 당분간 반등 국면에 진입할 가능성이 극히 낮다는 시각이다.
문준호 삼성증권 연구원은 "파운드리를 포기하거나 최소한 제품의 기술 격차를 좁히기 위해 외부 파운드리를 더 적극적으로 활용할 수도 있다"며 "최종 결정권자의 부재로 당분간 중요한 의사결정들이 연기될 수 있을 것"이라고 밝혔다. 그러면서 "특히 당장 시급한 인공지능(AI)에 대한 뚜렷한 제품 전략이 부재해 CEO가 공석이라는 점은 걱정거리"라며 "오히려 비메모리 경쟁사들과 제품 격차가 더 벌어질 가능성도 존재한다. 새로운 CEO 임명과 사업 전략 변화 확인 전까지 보수적 시각이 필요하다"고 했다.
머니투데이 서진욱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