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피니티, 첫 시도 10년 만에 롯데렌탈 인수…1.6조 규모
자본시장연구원 '사모펀드 20년 성과와 전망' 세미나 열어
함용일 금융감독원 부원장은 지난 12일 서울 여의도 금감원 본원 회의실에서 국내 12개 사모펀드사 대표들을 불러 모아 간담회를 열었다. /뉴시스
금융당국이 국내 사모펀드(PEF) 운용업계 대표자를 한 자리에 불러 모았다. 금융자본의 산업 지배 관점에서 새로운 금산분리가 필요하다고 보고 사모펀드의 역할과 책임에 대해 논의하기 위함이다. 다만 일각에서는 당국이 이번 간담회를 연 취지를 두고 의아하다는 뒷말도 나와 배경에 관심이 쏠린다. 사모펀드사의 자본시장 영향력이 확대되는 시점에서 당국이 밝힌 간담회 목적과 달리, 무언의 압박을 통한 일종의 '군기 잡기'가 아니었냐는 시각에서다.
◆ 금융당국, PEF 대표 소집…"새로운 유형 금산분리 논의 필요"
14일 투자은행(IB) 업계에 따르면 지난 12일 금융감독원(금감원)은 서울 여의도 금감원 본원 회의실에서 12개 기관전용 사모펀드 운용사 최고경영자(CEO)들과 간담회를 열었다. 당국에서는 이복현 금감원장을 대신해 함용일 부원장이 자리했으며 H&Q, 한앤컴퍼니, MBK파트너스, 스틱인베스트먼트, IMM PE, SKS PE, VIG파트너스, UCK파트너스, 스카이레이크, 스톤브릿지캐피탈, JKL파트너스, KCGI 등 12개 사모펀드사 대표자들이 참석했다.
함 부원장은 인삿말을 통해 "사모펀드 등 금융자본의 영향력이 확대됨에 따라 새로운 유형의 금산 분리에 대해 정책적 화두를 가지고 함께 고민하고 의견을 나누고자 마련했다"고 말했다. 이후 간담회는 비공개로 열렸다. 다만 금감원과 업계 등에 따르면 이날 함 부원장은 국내 사모펀드업계의 비약적인 성장에 대한 노고를 치하하면서도, 자율과 창의에 기반하는 사모펀드사도 시장원리에 따라 윤용돼야 한다는 등 등 화두를 던진 것으로 알려졌다.
일각에서는 이날 간담회를 두고 장기전 양상을 띠는 고려아연 경영권 분쟁 등 사모펀드사의 일련의 활동 등에 대해 간접적으로 주의를 준 것이 아니냐는 이야기도 나온다. 특히 이복현 원장이 지난달 28일 영풍과 함께 고려아연 공개매수에 나선 MBK파트너스에 "화두를 던져주는 사안"이라며 "금융자본이 기업을 인수하면 주요 사업 부문을 분리 매각하는 등 중장기적으로 주주 가치를 훼손할 것"이라고 언급한 만큼, 후속 조치 성격이 짙었다는 시각도 나오는 이유다.
익명을 요구한 한 사모펀드사 관계자는 "(간담회에서는)고려아연을 포함해 KCGI의 DB하이텍, 현대엘리베이터 경영권 분쟁 등 사모펀드사가 관여하고 있는 분쟁들이 더러 언급된 것으로 안다. 새로운 금산분리를 논의하자고 하셨는데 특별히 지침이 나오거나 그렇진 않았다. 국가 감독 기관으로서 함께 논의해야 하는 것은 맞지만 무언의 압박을 줬다는 느낌을 배제하긴 어렵다. 주주 보호에 힘을 쓰자는 취지는 모두 동의한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어피니티는 지난 6일 롯데지주와 롯데렌탈 경영권 지분 매각을 위한 구속력 있는 양해각서를 체결하고 롯데렌탈 인수에 성공했다. 지난 2014년 롯데그룹과 당시 KT렌탈 인수전에서 고배를 마신 후 10년 만이다. /롯데렌탈
◆ '렌터카 사랑' 어피니티, SK렌터카 이어 롯데렌탈도 품에
사모펀드 운용사 어피티니에쿼티파트너스(어피니티)가 첫 인수를 시도한 지 10년 만에 롯데렌탈을 품었다. 지난 8월 SK렌터카 인수에 이어 업계 1위 롯데렌탈마저 안으며 명실상부 국내 렌터카사업을 주도하게 됐다.
롯데지주는 최근 어피니티와 롯데렌탈 경영권 지분 매각을 위한 구속력 있는 양해각서를 체결했다고 밝혔다. 매각 대상은 호텔롯데와 부산롯데호텔이 보유한 롯데렌탈 지분 56.2%이며 매각 금액은 1조6000억원으로 책정됐다.
롯데그룹 측은 "롯데렌탈은 업계 1위로 우수한 수익성을 기록하고 있으나 렌탈업의 성격이 그룹의 성장 전략과 맞지 않아 매각이 결정됐다"고 매각 배경을 설명했다.
무엇보다 금융투자업계에서는 어피니티의 뚝심이 작용한 결과로 보고 있다. 렌터카 사업에 관심을 두던 어피니티는 지난 2014년 시장 매물로 나온 롯데렌탈(당시 KT렌탈)을 인수하려 시도했으나 롯데그룹의 자본력을 넘지 못했다.
고배를 마신 어피니티는 포트폴리오를 재정비해 렌터카업체가 인수를 다시 노렸다. 이에 올해 8월 SK그룹이 매물로 내놓은 SK렌터카를 인수했고, 이후 4개월 만에 롯데렌탈마저 품게 된 결과다.
어피니티는 기존 렌터카업체가 하지 않던 사업을 하겠다고 공언해 왔다. 차를 빌려준 이용료를 받고 반납한 차량을 중고차 시장에 파는 기존 사업모델을 넘어, 소비자의 차량 운행 데이터를 수집해 관리하는 데이터 사업이나 소비자에 빌려준 자동차를 수리해 주는 애프터서비스 등이 꼽힌다.
자본시장연구원은 지난 11일 서울 여의도 금투센터에서 '사모펀드 20년 성과와 전망' 세미나를 열었다. /더팩트 DB
◆ 사모펀드 제도 도입 20년…"투자 회수 본격 시작될 것"
국내에 사모펀드 제도가 도입된 지 20년이 지난 가운데, 향후 엑시트(투자금 회수)가 본격적으로 시작될 것이라는 전망이 나왔다.
지난 11일 회계법인 삼일PwC는 자본시장연구원이 개최한 '사모펀드 20년 성과와 전망' 세미나에서 사모펀드 운용사들의 투자 회수 규모를 내다보면서 이같이 분석했다.
오선주 삼일PwC 경영연구원 이사는 "내년 PEF 운용사들의 투자 회수 규모가 20조원을 넘어설 것"이라며 "사모펀드 포트폴리오의 절반 이상 기업이 보유기간 4년이 넘었기 때문에 회수 압력이 늘고 있다. 기업공개(IPO) 시장 부진으로 M&A를 통한 수익 실현 요구도 커지고 있다"고 말했다.
삼일PwC에 따르면 국내 사모펀드 규모는 매년 늘어나고 있다. 국내 사모펀드 수는 2020년 847곳에서 이듬해 1050곳으로 늘었고 2022년 1098곳, 2023년 1126곳으로 꾸준히 증가세다. 펀드 약정 규모도 2021년 처음으로 100조원(115조6000억원)을 돌파한 후 지난해 136조4000억원까지 치솟았다. 제도 도입 취지에 맞는 성장을 이룬 셈이다.
다만 규모가 커진 만큼 과제도 늘었다는 평가다. 자본시장연구원은 사모펀드사가 지속적인 성장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연기금, 금융사 등에 한정된 출자자를 다변화하고, 주주나 투자자의 인식 개선을 위한 대외 소통 등을 더욱 늘려야 한다고 내다봤다.
박용린 자본시장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국내 사모펀드 출자자는 연기금, 일반법인, 금융회사 등 일부에 과도하게 의존하기 때문에 자금 모집의 안정성과 연속성이 떨어진다"며 "국내 민간 모펀드의 여건 성숙과 함께 초고액자산가나 패밀리오피스 등 신규 자금원도 개척해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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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한림(2kuns@tf.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