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조업 회사채 발행 수요 급증
국고채 3년물·회사채 금리차
한 달 새 8bp 상승, 하반기 최고치
미국 도널드 트럼프 2기 행정부 출범과 롯데그룹발 유동성 리스크 등 대내외 악재 속에 기업 자금 조달 길이 막히고 있다. 복합 위기에 선제적으로 대비하려는 제조업체들의 회사채 발행 수요가 급증하고 있지만 이를 사 갈 금융사의 투자 여력은 제한적인 상황이다.
18일 금융투자협회에 따르면 국고채 3년물과 AA-등급 회사채 3년물 간 금리 스프레드(금리차)는 이날 기준 0.667% 포인트로 지난달 29일 대비 8bp(1bp=0.01%포인트) 상승했다. 이는 올 하반기 들어 가장 높은 수준이다. 두 채권 간 스프레드는 2022년 발생한 ‘레고랜드 사태’ 당시 급격히 올라갔다가 하향 안정화하는 흐름을 보였지만 올 하반기 들어 스프레드의 방향이 바뀌었다.
일반적으로 국고채 금리가 내리면 회사채 금리도 같이 떨어지는 경향을 보인다. 그러나 이달 들어 국고채 3년물 금리는 하락세를 보였으나 회사채 금리는 오히려 상승했다. 회사채를 사줄 대형 금융사 등 기관투자자는 이달 중순을 기점으로 올해 투자를 마무리하고 ‘북클로징’(장부 마감)에 들어갔지만 기업들의 자금 수요는 늘어난 결과다. 이 때문에 투자자들의 자금 집행이 다시 이뤄지는 내년 1월에 회사채를 발행하려고 대기 중인 수요가 급증한 것으로 알려졌다.
특히 제조업체의 회사채 발행 수요가 큰 상황이다. 금융권에 따르면 트럼프 행정부 출범의 직접적인 영향권에 들어간 이차전지와 업황 부진에 시달리는 석유화학 기업들의 회사채 발행 문의가 많은 것으로 알려졌다. 여기에 업황과 별개로 내년 유동성이 조기에 마를 수 있다는 판단에 미리 자금을 구하려는 기업들의 움직임이 더해진 상황이다. 롯데그룹 유동성 위기설도 자금 시장 불안에 기름을 부었다. 정부 당국에서는 회사채 금리 상승의 주요 원인으로 롯데케미칼 기한이익상실(EOD) 사유 발생 등 유동성 이슈를 지목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금융권 관계자는 “채권시장 경색이 발생한 건 아니지만 경색 조짐이 보인다”고 말했다.
연초 채권 시장이 열리더라도 수급 불안이 단기간에 해소되기 어렵다는 전망이 나온다. 자금 수요를 달래줄 금융사의 채권 투자 여력이 제한적인 탓이다. 자금 공급의 큰 비중을 차지하는 금융지주의 경우 환율이 올라가는 상황에서 자기자본비율(BIS)을 지키는 데 어려움을 겪고 있다. 원·달러 환율이 오르면 금융지주 BIS는 낮아지고, 신용등급이 낮은 회사채 등 위험자산에 투자할 여력이 줄어든다. 채권시장 큰 손인 국민연금도 국내 채권 비중을 줄이는 상황이다.
이효섭 자본시장연구원 금융산업실장은 “롯데그룹 채권 EOD 이슈, 탄핵 정국과 맞물린 기업 이익 악화, 지방 프로젝트파이낸싱(PF) 부실화에 따른 건설업 부도 위험 증가가 자금 경색 주 원인”이라며 “이에 더해 연말 대형 금융사의 북클로징에 따른 수급 악화가 복합적으로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임송수 기자(songsta@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