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경제 또 하나의 변수
중국의 장기 국채 금리가 줄줄이 2% 선이 무너지며 역대 최저치로 밀려났다. 정부의 경기부양책에도 물가가 지속해서 하락하고, 내수 경기 위축으로 ‘디플레이션’ 공포가 커지면서다.
월스트리트저널(WSJ)에 따르면 중국 10년물 국채 금리는 이달 2일(현지시간) 2% 선을 뚫더니 수직 하락해(채권값은 상승), 지난 16일 연 1.74%를 기록했다. 역대 가장 낮은 금리다. 30년 만기 국채 금리도 이달 17일 연 1.961%로 사상 최저치를 찍었다. 하락 속도도 가파르다. WSJ에 따르면 10년물 국채 금리는 지난달 초(연 2.14%)대비 한 달 반 사이 18.7% 고꾸라졌다. 미국을 비롯해 일본 등 글로벌 장기 국채 금리가 반등하는 흐름과 상반된 모습이다.
박경민 기자
일반적으로 장기 국채 금리의 추락은 중장기 경기 둔화 가능성을 상징한다. 중국 경기 회복에 대한 회의적 전망이 확산하면서 중국 시장 내 투자자들이 안전자산인 채권에 몰리자, 채권값이 급등(채권금리 하락)한 영향이 크다. 전문가들도 장기 물가 하락에 따른 경기침체인 ‘디플레이션’에 직면했다는 평가다.
소비자 물가가 장기간 0%대를 벗어나지 못하면서 디플레이션 우려도 짙어졌다. 중국의 지난달 소비자물가지수(CPI)는 전년 동기 대비 0.2% 오른 데 그쳤다. 1%대 이하 물가 상승률은 20개월째 이어진다.
중국 내수 경기를 가늠하는 소매판매 지표도 부진하다. 중국 국가통계국에 따르면 지난달 중국 소매판매는 4조3763억 위안(약 863조원)으로 1년 전보다 3% 증가했다. 10월 증가율(전년 동기 대비 4.8%)보다 낮고, 블룸버그 예상치(5%)를 크게 밑돌았다.
중국 소비자들이 지갑을 닫은 것은 물론 중국 기업도 신규 투자를 줄이고 있다. iM증권에 따르면 지난달 기업의 요구불예금이 포함된 본원통화(M1)가 전년 동월 대비 3.7% 하락했다. 지난 4월부터 8개월째 하락세다. 박상현 iM증권 이코노미스트는 “중국 기업들이 당분간 투자 의사가 없거나 요구불예금에 예치할 돈이 없다 보니 요구불예금 증가율이 눈에 띄게 감소한 것”이라며 “중국 경제가 심각하게 어렵거나 이미 디플레이션 국면에 진입했을 수 있다”고 말했다.
중국 경제 활동의 30%를 차지하는 부동산이 ‘침체의 늪’에 빠져있다는 점도 경제 전망을 어둡게 보는 이유다. 연초 이후 11월까지 부동산 개발 투자는 전년 동기 대비 10.4% 감소했다. 중국 내 70개 주요 도시의 11월 신규 주택 가격도 전월 대비 0.2% 하락했다.
트럼프 재집권 시대도 변수다. 글로벌 투자은행(IB)들은 중국에 60% 고율 관세가 시행될 경우 중국 경제성장률은 2%대로 추락할 수 있다고 전망한다. 최근 중국 경제가 직면한 상황이 저물가와 성장잠재력 둔화로 ‘잃어버린 30년’을 겪은 일본과 비슷하다는 경고도 나온다.
문제는 중국 경제에 드리워진 디플레이션이 한국에도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점이다. 우선 중국 국채 금리 하락세가 이어지면 위안화 하락 압박 요인으로 작용한다. 위안화와 동조화 경향이 강한 원화가치가 동반 하락할 수 있다. 또 중국의 내수 부진과 저가 수출 공세는 한국 수출에도 영향을 준다.
하준경 한양대 경제학과 교수는 “현재 중국은 부동산이 침체하고, 소비가 크게 위축돼 디플레이션 압력이 강하다”며 “정국이 혼란한 한국이 자칫 중국 리스크에 전이되지 않도록, 경기를 부양하는 방식의 정부 재정정책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염지현 기자 yjh@joonga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