닛산의 조직 비대화 구조조정 지연돼
"내년 1월 인사개편, 개혁 의지 드러날 것"
양사 뚜렷한 조직문화 차이도 '걸림돌'
카를로스 곤 전 르노-닛산 얼라이언스 회장이 2023년 7월 18일 온라인으로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사진=AFP)[이데일리 정다슬 기자] “이 합병은 개인적으로 성공하지 못할 것이라고 생각한다”
카를로스 곤 전(前) 닛산·르노 얼라이언스 회장은 23일 일본에 있는 특파원들을 대상으로 한 온라인 기자회견에서 혼다와 닛산 자동차의 합병에 대해 이같이 밝혔다. 2019년 12월 31일 회사법 위반(특별배임)으로 기소당한 후 일본 당국의 눈을 피해 상자에 숨어서 레바논으로 탈출한 지 약 5년만이다.
그는 “양사는 같은 분야에서 강점과 약점을 가지고 있어 비즈니스상 보완관계가 명확하지 않다”면서 “산업의 관점이 아닌 정치적인 관점에서 이뤄진 합병이라고 본다”고 분석했다. 앞서 곤 전 회장은 20일(현지시간) 블룸버그 TV와의 인터뷰에서 이번 합병 배후에는 일본 정부의 압력이 있을 것이라고 봤다.
그는 이어 “실적을 신경쓰지 않고 기업의 지배를 유지하는 것을 중시하면 닛산은 더욱 약화할 것 ”이라고 덧붙였다. 곤 전 회장은 자신의 축출이 실질적인 부패 행위가 아닌 일본 정부와 닛산 내 일본 임원들의 정치모략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반면 닛산 측은 곤 전 회장이 20여년간 닛산·르노 얼라이언스를 지배해오면서 회사를 사유화했을 뿐만 아니라 원가 절감에만 치중해 닛산의 경쟁력을 깎아 먹었다고 주장하고 있다.
문제는 곤 전 회장의 축출 후 닛산의 실적은 더욱 추락했다는 것이다. 주력시장인 미국과 중국에서의 판매부진이 심각해지면서 닛산의 올해 4~9월기(2025회계연도 상반기) 연결 순이익은 192억엔으로 전년동기 대비 94% 급감했다.
닛산과 악연이 있는 곤 전 회장의 발언이 아니더라도 일본 내에서조차 일본 완성차 업체 2, 3위인 혼다와 닛산의 합병은 쉽지 않을 것이라고 분석하고 있다.
니혼게이자이신문은 닛산이 전 직원의 7%에 상당하는 9000명 인력 삭감과 생산능력 20%(약 100만대) 축소를 제외하고는 구조조정안이 나오지 않았다는 점을 지적했다. 이처럼 구조조정이 늦어지는 배경에는 도요타나 혼다보다 많은 임원으로 의사결정이 지연되고 있기 때문으로 보인다. 한때 프랑스 르노자동차의 지분이 43%까지 늘어났던 만큼 간부의 국적도 다양해 이해관계가 치밀하게 엮여 있는 구조조정안을 진행하는 데에도 언어의 장벽이 발생하고 있다는 얘기다.
이런 상황에서 닛케이는 내년 1월 있을 인사에서 닛산이 제대로 된 개혁의지를 보여주지 않을 경우, 혼다 내부에서 합병에 반대하는 목소리가 나올 것으로 봤다.
양사가 문화 차이가 뚜렷하다는 점을 합병의 장애물로 지목하는 목소리도 있다. 닛산은 상명하복의 기업문화인 반면 혼다는 현장의 목소리를 중시하고 있다. 특히 혼다의 경우 창업주인 혼다 소이치로 때부터 자체적인 기술력 강화를 중시하는 경우가 많았다. 양사의 합병이 시너지를 가지기 위해서는 고립주의에서 벗어나 적극적인 협력을 모색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일각에서는 폭스콘이 닛산의 체질을 개혁하기에는 더욱 적합하다는 목소리도 있다. 후카오 산시로 이토츄종합연구원 이그제큐티브 펠로우는 “닛산에게는 외부의 힘이 필요하지만, 혼다로서는 구제가 어렵다고 보고 있다”며 “전기차(EV)나 소프트웨어 중심 자동차(SDV)로 싸우기 위한 힘을 축적하기에는 시간이 없다”고 말했다. 그는 “경영난에 빠진 샤프를 구제했듯 스피드 경영이 가능한 것은 폭스콘”이라고 말했다.
앞서 닛케이·블룸버그 통신 등은 폭스콘의 닛산 경영권 참여 시도가 혼다와 닛산의 합병 움직임을 가속화했다고 보도한 바 있다. 다만 이날 혼다와 닛산의 합병 결정을 발표하는 자리에서 우치다 마코토 닛산 사장은 폭스콘이 닛산의 지분을 매수하기 위해 타진했다는 보도는 “사실 무근”이라며 “폭스콘의 매수시도가 온다면 이사회 측에서 진지하게 대응하겠다”고 밝혔다.
정다슬(yamye@edaily.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