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S도 MX도 이젠 ‘각자도생’으로
올 1월 말 공개되는 삼성전자 플래그십 스마트폰 ‘갤럭시 S25’에선 삼성 DS(반도체사업부) 부문 존재감이 상당 부분 퇴색될 전망이다. 스마트폰 사업을 총괄하는 삼성전자 MX사업부는 갤럭시 S25 모바일 D램 1차 공급사로 미국 마이크론을 낙점한 것으로 알려진다. 이전까지 마이크론은 삼성 플래그십 스마트폰 2차 공급사로 모바일 D램을 공급해오다 처음 1차 공급사 지위를 꿰찬 것으로 파악된다. 삼성전자 DS 부문은 스마트폰 ‘두뇌’ 애플리케이션 프로세서(AP) 공급자 지위를 경쟁사 퀄컴에 내준 데 이어 D램마저 마이크론에 밀려 자존심을 단단히 구겼다. 삼성 플래그십 스마트폰 핵심 부품(모바일 D램·AP) 공급을 경쟁사가 사실상 독식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삼성전자 MX사업부가 갤럭시 S25에 경쟁사 모바일 D램과 애플리케이션 프로세서(AP)를 탑재할 전망이다. (매경DB)
MX, AP 이어 D램도 ‘식구’ 외면
마이크론 1차 공급사 낙점
IT업계와 외신에 따르면, 1월 말 공개·2월 초 출시될 삼성 갤럭시 S25 모바일 D램 저전력 더블데이터레이트(LPDDR5) 1차 공급사로 마이크론이 선정된 것으로 알려진다.
통상 스마트폰 제조사는 원활한 부품 조달을 위해 복수 공급사를 두고 공급망 밸류체인을 구축한다. 1차 공급사에서 대부분 물량을 공급받되 일부 물량은 2차 공급사에서 공급받는 이원화된 구조다. 2차 공급사는 북미 등 전략 시장을 제외한 나머지 시장 공급을 맡거나, 돌발변수 등으로 1차 공급사에서 ‘쇼티지(부품 공급 차질)’가 빚어질 때 구원 등판하는 역할을 주로 맡는다. 지금까지 마이크론은 갤럭시 S시리즈 모바일 D램 2차 공급자 지위에 머물렀다. 이번에 처음 1차 공급사로 낙점된 것이다.
삼성전자 MX사업부가 마이크론을 모바일 D램 1차 공급사로 선정한 것으로 알려지자 IT업계와 삼성 안팎에서는 여러 해석이 나온다.
우선, 성능과 가격 등 핵심 평가 요소에서 마이크론이 삼성 DS 부문을 앞섰을 것이라는 시각이 우세하다. LPDDR은 스마트폰, 태블릿 PC 등 주로 모바일 기기에 사용되는 메모리로 전력 소비 감소에 특화한 칩이다. 반도체업계에선 마이크론이 저전력 반도체 설계·제조에서 비교우위가 확고하다는 평가다. 반도체업계에선 엔비디아 최신 AI 슈퍼칩 ‘GB200’에 마이크론이 제작한 저전력 특화 D램이 쓰였다는 점을 예사롭지 않게 본다. GB200에는 AI 연산 기능을 담당하는 GPU 바로 옆에 HBM이 총 16개, CPU 옆에는 LPDDR5X가 16개 붙는다. 마이크론이 세계 최초로 개발한 저전력 특화 D램 ‘LPDDR5X’는 애플 아이폰15 시리즈 등 모바일 기기에 사용되다가 AI 가속기까지 침투했다.
둘째, 삼성 DS 부문이 전영현 부회장(DS 부문장) 체제 아래 고대역폭메모리(HBM)에 특화한 선단 공정 ‘1c’ 노드에 자원을 집중 배치한 결과로 보는 시각도 존재한다. 10나노급 D램 공정 기술은 1x(1세대)-1y(2세대)-1z(3세대)-1a(4세대)-1b(5세대) 순으로 개발되며 1c는 6세대를 말한다. 1c 공정으로 갈수록 선폭이 좁다. 선폭이 좁을수록 웨이퍼(반도체 원판) 한 장에서 나오는 D램 생산량이 늘어나 손익 경쟁력을 좌우한다. 1c에 가까울수록 공정 난도가 기하급수적으로 뛴다.
삼성전자는 1b 공정부터 사실상 SK하이닉스에 밀리더니 1c(6세대)의 경우 SK하이닉스에 세계 최초 타이틀마저 내줬다. 삼성은 지난해부터 1b 공정을 중심으로 HBM과 LPDDR5 안정적 양산에 주력했으나 수율과 발열 문제를 말끔히 해결하지 못한 것으로 알려진다. 반도체업계 관계자는 “현재 사실상 삼성의 최선단 노드인 1b에선 엔비디아 GPU 특화 D램 GDDR7 기반으로 케파를 할당하고 있어 갤럭시 S25에 들어갈 LPDDR5는 우선순위에서 밀린 것으로 안다”고 전했다. 이런 상황에서 전영현 부회장 주도로 삼성 DS 부문은 평택 제4캠퍼스(P4)를 중심으로 1c 공정에 사활을 걸었다. 결국 1b보다 1c 노드에 전사 자원을 집중 배치하다 보니 선단 공정에서 ‘엇박자’가 초래됐단 지적이다.
갤 S25 ‘두뇌’도 전량 경쟁사 제품
MX·LSI 수익성 ‘빨간불’
MX사업부는 갤럭시 S25 모바일 애플리케이션 프로세서(AP)도 경쟁사 제품을 탑재할 전망이다. 삼성 AP 엑시노스는 CPU(중앙처리장치), GPU(그래픽처리장치), 모뎀 등 시스템 블록을 하나의 칩으로 구현한 시스템온칩(SoC)이다. 시스템LSI가 시스템온칩 설계를, 파운드리가 공정을 맡는다. 삼성전자는 최근 10년간 신형 갤럭시 시리즈에 엑시노스와 스냅드래곤 제품을 혼용 탑재하는 ‘듀얼칩’ 전략을 폈다. 이번엔 퀄컴의 차세대 AP ‘스냅드래곤8 엘리트’를 전량 적용할 것이라는 시각이 다수다.
갤럭시 S25에 스냅드래곤 전량 탑재는 삼성 MX사업부에도 적잖은 부담이다. 듀얼칩 전략이 무력화할 경우 퀄컴을 상대로 한 가격 협상력에서 열위에 처해 이익률 확보가 여간 어려운 게 아니다. 삼성이 갤럭시 신작을 내놓을 때마다 AP 성능을 두고 크고 작은 논란에 휘말렸음에도 스냅드래곤과 엑시노스를 병행했던 이유다.
그럼에도 삼성 MX사업부가 엑시노스를 배제한 이유는 크게 두 가지로 분석된다.
첫째, 수율(양품 비율) 문제다. 시스템LSI사업부는 갤럭시 S25 시리즈 탑재를 목표로 엑시노스 2500 개발을 준비했다. 당초 엑시노스 2500은 삼성전자의 3㎚(나노미터·1㎚는 10억분의 1m) 파운드리 공정에서 양산 예정이었다. 그러나 AI 기능 고도화로 AP 공정 난도가 뛰면서 양산 수율 확보에 난항을 겪는 것으로 알려진다. 수율 부진의 명확한 원인도 가려내지 못한 눈치다. 삼성전자 내부에서도 시스템LSI사업부(설계·개발)와 파운드리사업부(공정) 간 이견이 큰 분위기로 파악된다. 현재로선 엑시노스 2500은 상대적으로 물량이 적은 폴더블 모델에나 탑재될 전망이다. 삼성전자는 올해 스마트폰 생산량을 2억2940만대로 잡고 있는데, 폴더블 모델은 최대 700만대 수준으로 예상된다.
스마트폰 시장이 온디바이스(내장형) AI 기기로 고도화한 것도 엑시노스 ‘패싱’의 또 다른 이유로 지목된다. 삼성 스마트폰은 중저가 시장에서는 중국에, 프리미엄 시장에선 애플에 밀리는 사면초가 형국이다. 삼성은 고성능 AI 기능을 대거 접목한 갤럭시 S25로 분위기 반전을 노린다. AI 스마트폰은 칩 발열과 전력 효율성 확보에서 성패가 갈린다. 엑시노스의 안정성과 성능이 AI 기능에 대해 높아진 시장 눈높이를 충족하느냐가 관건인데, 의구심을 말끔히 씻어내기까진 적잖은 시일이 소요될 전망이다. IT업계 관계자는 “이 부문 지배력 확대가 갈급한 삼성 MX사업부 입장에선 ‘좌고우면’할 처지가 아닐 것”이라고 말했다.
엑시노스 ‘패싱’으로 당장 관련 사업부는 수익성에 경고등이 켜졌다. AP는 스마트폰 핵심 부품으로 MX사업부 손익 구조를 좌우한다. 퀄컴은 공정 가격 인상 등을 이유로 신제품 출시 때마다 전작 대비 가격을 최대 30%까지 인상한다. 스냅드래곤8 엘리트도 예외는 아니다. 출시 가격은 240달러로 전작 모델(190달러) 대비 25% 올랐다. 삼성전자 AP 매입 비용은 2021년 6조2116억원에서 2022년 9조3138억원, 2023년 11조7320억원으로 매년 늘고 있다. 이 여파로 삼성 모바일(MX·NW)사업 부문은 매출은 상승세지만, 영업이익이 추락하는 구조적인 문제에 노출됐다. 중장기적으로 삼성 스마트폰에서 퀄컴 의존도가 높아질 경우 갤럭시 시리즈 출고가는 대폭 인상이 불가피하다. 이 경우 판매량 등 실적에도 큰 부담이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시스템LSI사업부를 향한 곱지 않은 내부 시선도 늘고 있다. 삼성 안팎에선 ‘캡티브 마켓(계열사 간 내부 거래 시장) 수요도 못 따라간다면 사업부를 존치할 이유가 무엇이냐’는 볼멘소리가 적지 않게 들린다. 최근 일부 실을 없애는 등 조직 슬림화에 나선 배경이다.
‘집안 갈등’ 따가운 시선도
사업부 간 성과 경쟁 몰두
DS 부문 ‘패싱’은 기술 경쟁력 저하가 근본 원인이지만, 이를 두고 삼성 수뇌부 간 성과 경쟁의 부산물이라는 안 좋은 시선도 존재한다. 핵심 사업부 간 ‘사일로 현상(Silo Effect)’ 심화로 부분 최적화와 부분 이기주의 등이 초래된다는 지적이다. 각 사업부 목표 달성을 위해 수뇌부가 최선의 선택(DS: 1c 집중·MX: 마이크론 선택)을 내리지만, 삼성전자 전체 관점에선 비효율과 시너지 훼손이 빚어진다는 것이다.
가령, 수년째 MX사업부를 지휘한 노태문 사장의 경우 공과에 관한 시선이 갈리면서 삼성 안팎에선 입지가 예전만 못하단 평가를 받는다. AI 스마트폰 전환이 가속화하면서 삼성 MX사업부에선 D램과 AP 등 원가 부담이 눈덩이처럼 커질 것이라는 우려가 팽배하다. 수익성 악화 추세 아래, 노 사장이 손익 통제력 확보를 위해 갤럭시 S시리즈 핵심 부품 공급망에 변화를 줄 수밖에 없을 것이라는 분석이다. IT업계 관계자는 “MX사업부 입장에서 칩 공급사 대상 협상력을 키우려면 DS 부문이 든든한 우군이 돼줘야 하는데, 최근에는 오히려 발목을 잡는 듯한 형국이 펼쳐진다”며 “노 사장이 DS 부문을 향해 노골적으로 불만을 표출했다는 건 공공연한 비밀”이라고 귀띔했다.
DS 부문을 진두지휘하는 전영현 부회장도 속이 편치 않다. 범용 D램 시장에선 창신메모리 등 중국 기업 공세로 손익분기점(Bep)이 사실상 무너진 가운데, 고부가가치 반도체 시장에서도 수익성 방어가 녹록지 않다. 반도체업계 관계자는 “1b, 1c 같은 최선단 공정에선 삼성 DS 부문 기술 경쟁력이 경쟁사 대비 확고부동한 우위를 확보하지 못한 상황”이라며 “삼성 안팎에서는 DS 부문이 악화한 수익성을 일정 수준 상쇄하려 MX사업부를 상대로 배짱 장사를 하려 든다는 불만의 목소리도 나오는 것으로 안다”고 설명했다.
DS 부문, 초격차 평판 리빌딩
1c로 ‘퀀텀점프’ 사활
결국 DS 부문이 서둘러 초격차 기술 평판을 확보하는 게 갈급한 과제다. MX사업부 역시 손익 통제력 확보를 위해서는 DS 부문이 안정적 수율과 원가 경쟁력을 확보하고 든든한 우군으로 자리매김하는 게 유리하다.
올 상반기 삼성 DS 부문은 근원 경쟁력 확보를 위해 ‘1c’ D램 양산에 사활을 건다. 삼성전자는 SK하이닉스에 한 세대 앞서 HBM4부터 1c 공정을 활용해 ‘역전승’을 노린다는 계산이다. 삼성전자 1c D램 양산은 평택에서 이뤄진다. 최근 평택 제4캠퍼스(P4)에 1c D램 양산라인 구축을 위한 장비 발주를 시작한 것으로 알려진다. 2025년 1분기 중 양산용 설비 도입이 이뤄진다. 산업계에서는 전영현 부회장이 평택 캠퍼스를 중심으로 선행 기술과 양산 조직 간 상호 연결성을 높이는 방향으로 엔지니어 재배치에 나설 것으로 내다본다. 핵심 생산기지를 중심으로 공정 설계 등 주요 엔지니어를 집중 배치해 연구개발(R&D) 단계부터 수율과 생산성을 동시에 고려해 양산 검증의 강도를 높일 것이라는 관측이다.
다만, 의구심도 적지 않다. 1c D램 세계 최초 타이틀을 가져간 SK하이닉스는 16Gb DDR5 D램 개발은 1c 공정을 기반으로 했지만, HBM4에는 1c 공정을 적용하지 않기로 했다. 수율과 안정성을 장담할 수 없다는 판단에서다. 이에 비춰, 산업계에선 1b에서 1c로 ‘퀀텀점프’를 노리는 삼성전자를 두고 회의적인 시선도 존재한다.
[배준희 기자 bae.junhee@mk.co.kr, 최창원 기자 choi.changwon@mk.co.kr]
[본 기사는 매경이코노미 제2293호 (2025.01.15~2025.01.21일자) 기사입니다]
배준희 매경이코노미 기자(bjh0413@mk.co.kr), 최창원 매경이코노미 기자(choi.changwon@m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