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율·수급 안정…힘 받는 코스피
이유 있는 바닥·반등론 ‘스멀스멀’
지난해 우리 증시가 최악의 성적표를 받은 가운데 ‘진짜 바닥’을 쳤다는 인식 속 반등론도 솔솔 피어오른다. 지난해 트럼프 리스크, 계엄·탄핵 사태 등 다중 악재로 코스피는 9.6%, 코스닥은 21.7% 하락했다. 2025년에는 우리 시장에서 저가 매수 기회를 물색할 때라는 전문가 진단이 적지 않다. 매경이코노미 설문에 응한 주요 증권사 리서치센터장 11명 대부분은 한국 증시가 극단적 저평가 국면이라고 입을 모았다. 이진우 메리츠증권 리서치센터장은 “현재 증시는 기업 이익이 그대로인 가운데 밸류에이션이 극단적으로 내려온 상황”이라며 “올 상반기에는 불확실성 해소 과정에서 우리 증시도 빠른 회복을 보일 것으로 기대한다”고 밝혔다.
무엇보다 ▲원화 가치 하락 ▲주력 산업 경쟁력 훼손 우려 ▲부동산 PF 부실 ▲비상계엄·탄핵 등 나올 만한 악재는 모두 나왔다는 게 시장의 대체적인 시각이다. 지난해 코스피·코스닥 모두 하락했지만, 1997년 외환위기 이후 코스피가 2년 연속 하락한 경우는 한 차례도 없었다는 점도 바닥론에 힘을 싣는다. 시장에서는 국내 정치 불확실성 해소에 따른 환율 안정화 시점을 단기 변곡점으로 보고 있다. 국민연금 수급 유입 가능성과 기업가치 제고 계획 정착도 기대감을 높이는 요인으로 지목된다.
지난 1월 8일 오후 서울 중구 하나은행 본점 딜링룸 현황판에 코스피지수 등이 표시되고 있다. 이날 코스피는 4거래일 연속 올라 2520대에서 강세 마감했다. 전장 대비 28.95포인트(1.16%) 오른 2521.05로 장을 마쳤다. (연합뉴스)
바닥·반등론 1 환율 안정화
오를 만큼 올랐다…대응책도 마련
우리 증시 바닥·반등론에 힘을 싣는 첫 번째 요인은 환율 안정화 가능성이다.
지난해 연말부터 원·달러 환율은 천정부지로 치솟았다. 한국은행 경제통계시스템(ECOS)에 따르면, 2024년 4분기 원·달러 환율(일일 종가 기준) 평균은 1398.75원으로 집계됐다. 금융위기 당시 2009년 1분기(1418.3원) 이후 15년 9개월 만에 가장 높다. 그보다 더 높았을 때는 외환위기 당시 1998년 1분기(1596.88원) 정도다.
최근 시장에선 환율 고점이 형성 중이라는 인식이 확산 중이다. 외환당국이 올 초부터 환율 안정화 의지를 적극 피력한 데다 지난 1월 7일부터 국민연금 환(換)헤지(위험 분산) 물량도 나오고 있어서다. 환헤지는 환율 변화에 따른 투자 손익 변동을 줄이려 현시점 환율로 고정시키는 위험 분산 전략이다.
서울 외환 시장에 따르면, 한때 1480원을 돌파했던 원·달러 환율은 최근 1440원대로 내려왔다. 절대 수준은 여전히 높지만 환율 고점이 형성돼가는 과정으로 시장은 바라본다. 환율 단기 변동성 완화는 국민연금 환헤지에 따른 달러 매도 물량이 시장에 나온 결과로 풀이된다.
국민연금 환헤지 전략은 크게 두 가지다. 첫째, 전술적 환헤지다. 이는 국민연금 기금운용본부에서 자체 운용하는 환헤지 한도로 해외 투자자산 5% 범위에서 이뤄진다. 둘째, 전략적 환헤지다. 이는 외환당국과 조율을 거쳐 이뤄진다. 전체 해외 투자자산 최대 10%(500억달러·약 73조원)까지 전략적 환헤지에 나설 수 있다. 국민연금은 원·달러 환율이 특정 기간 동안 일정 수준을 넘어가면 전략적 환헤지에 들어갈 수 있다. 전략적 환헤지는 2001년 이후 현재까지 환율 장기 평균에서 극단적으로 이탈한 상황이 5거래일 이상 지속될 경우 가능한 것으로 알려진다. 시장에서는 국민연금이 전략적 환헤지에 나서는 조건을 ‘1451원을 웃도는 원·달러 환율이 5거래일 이상 유지될 경우’로 본다.
전술적 환헤지 5%에 전략적 환헤지 10%를 더하면 국민연금 해외 투자자산 4855억달러(지난해 9월 말 기준)의 15%인 727억달러가량 환헤지가 가능하다는 계산이다. 현재 운용 중인 일부 물량을 제외하면 590억달러 안팎에서 추가 환헤지가 가능할 것으로 시장은 예상한다. 국민연금 환헤지는 시중은행과 체결할 수 있지만 한국은행과 통화 스와프(교환)로도 가능하다. 이렇게 하면 국민연금이 시장 달러로 해외 투자를 하지 않으므로 환율 변동성을 완화할 수 있다.
트럼프 2기 행정부 핵심 공약 중 하나인 보편관세를 두고 측근들 사이에서 이견이 표출되는 것도 우리 외환 시장에는 위안거리다. 헤지펀드 거물 출신 스콧 베센트 재무부 장관 지명자는 모든 상품에 보편관세를 부과하는 방침에 완전히 동의하지 않는다는 입장이다. 무역·관세 정책을 담당하는 하워드 러트닉 상무부 장관 지명자도 최근 CNBC 인터뷰에서 관세가 협상력을 키우기 위한 카드인지 아니면, 모든 수입품에 20% 관세를 실제 부과할 것으로 보느냐는 질문에 “당연히 협상 카드다”라며 “선거에 출마할 때는 사람들이 이해할 수 있도록 개략적으로 말한다”고 밝혔다.
우리 시장이 유의미한 변곡점을 맞이하기 위한 환율 수준은 1400원 이하로 추정된다. 산업계에서는 2025년 사업계획에 반영한 기준 환율을 대체적으로 1400원 이하로 본다. 한 사모펀드 매니저는 “환율 급등으로 지난해 4분기 실적에 일회성 영업비용이나 영업외비용을 반영했던 곳이 많았다. 이는 실제 현금 유출입이 없는 회계적 비용인데, 환율이 안정화할 경우 비용이 환입되면서 이익이 가파른 회복 곡선을 그릴 수 있다”고 기대했다.
바닥·반등론 2 국민연금 구원 등판
국내 주식 순매수 늘릴 듯
지난해 증시 부진으로 국민연금이 국내 주식 순매수 규모를 늘릴 가능성이 높다는 점도 기대 요인이다.
국민연금 기금운용본부 공시에 따르면, 기금자산은 지난해 10월 기준 1171조원으로 집계됐다. 같은 기간 기금운용 잠정 수익률은 11.3%를 기록했다. 해외 주식이 효자 노릇을 했다. 금융부문 자산별 수익률은 ▲국내 주식 –0.87% ▲해외 주식 26.52% ▲국내 채권 3.96% ▲해외 채권 10.32% ▲대체 투자 8.9%를 보였다. 지난해 코스피가 9% 넘게 하락한 것에 비춰 빼어난 수익률을 거뒀단 평가다.
다만, 코스피 부진으로 국민연금의 국내 주식 보유 비중이 목표치를 크게 밑돌아 올해 순매수 규모를 늘릴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지난해 10월 기준 국민연금의 국내 주식 보유 비중은 12.3%로, 전략적 자산배분(SAA) 허용범위 하단(12.4%)을 밑돈다. 국내 증시가 연말 낙폭을 키웠다는 점에서 목표치와 보유 비중 간 격차는 더 커졌을 수 있다.
국민연금 기금운용위원회는 2025~ 2029년 사이 국내 주식 비중을 매년 0.5%포인트씩 줄이기로 했지만 적어도 2027년까지는 국내 주식 순매수 규모를 매년 늘릴 것으로 전문가들은 보고 있다. 시장 일각에선 기금운용위 자산배분 계획에 비춰 ‘국민연금이 국내 주식 비중을 줄이므로 코스피 낙폭이 더 커질 것’이라는 인식이 퍼져 있지만, 이는 사실과 거리가 있다는 진단이다. 적어도 2027년까지는 연금 지출보다 보험료 수입이 많아 운용수익이 없더라도 국민연금 적립금은 불어난다. 달리 말해, 국민연금이 국내 주식 비중을 줄이더라도 분모에 해당하는 기금 규모가 그 이상 커지므로 국내 주식 순매수는 매년 수조원 늘어난다는 분석이다.
바닥·반등론 3 밸류업 동력 지속
원화 자산 매력도 제고
기업가치 제고를 뜻하는 ‘밸류업’ 정책도 희망의 불씨를 지피는 요인이다. 환율 안정을 위해서는 원화 자산 매력도를 높여 외국인 투자자를 불러 모으는 게 최우선 과제다. 주력 산업 구조 재편은 장기 과제로 단기간 성과를 내기 힘들다. 이 때문에 기업 지배구조 개선과 주주환원 확대 기조는 정권 속성에 따라 각론에선 차이가 있더라도 큰 틀에선 불씨를 살려갈 가능성이 높다.
지난 1월 8일 금융위원회는 2025년 경제1분야 주요 현안 해법회의에서 최상목 대통령 권한대행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에게 업무 보고를 진행했다. 지난해 중점 추진한 밸류업 정책을 이어가는 게 핵심 과제다. 금융위는 “밸류업 세제 지원 추진과 함께 합병·분할 시 정당한 주주 이익 보호 노력 의무, 의무공개매수제도 도입 등 밸류업을 지속 추진해 우리 자본 시장을 국민 자산 형성과 기업 성장의 장으로 선진화·고도화해나갈 계획”이라고 밝혔다.
정부가 지난해 추진한 밸류업 세제 혜택은 주주환원 촉진세제를 뜻한다. 주주환원 우수 기업에 법인세 혜택을 주고 이들 기업에 투자한 투자자에게 배당소득 분리과세 혜택을 주는 게 골자다. 다만, 이는 야당인 더불어민주당 반대로 국회 문턱을 넘지 못했다. 이를 올해 다시 추진하겠다는 게 정부 계획이다. 정부는 시장 역동성 제고를 위해 상장폐지 요건과 절차 정비에도 속도를 낸다. 지난해 금융당국을 중심으로 좀비기업 퇴출 논의가 활성화됐는데, 기업공개(IPO) 제도 개선과 함께 상장 시장을 질적으로 개선하겠단 방침이다. IPO 땐 공모가 합리성을 제고하고 상장폐지 요건과 절차를 효율적으로 개선한다. 기업 자금 조달과 투자 여건 개선을 위한 다양한 증권 발행·유통 혁신안도 추진된다.
1분기 분할 매수 노릴 때
조선·바이오·전력기기 눈길
전문가들은 대체로 올 2분기를 증시 반등 시점으로 꼽는다. 올 1분기 트럼프 2기 행정부 출범 뒤 보편관세 등 핵심 정책 구체화 과정에서 또 한 차례 변동성이 확대될 가능성이 있지만, 이때부턴 분할 매수를 적극 고려해야 한다는 시각이 우세하다.
전문가 시각을 정리하면, ▲트럼프 정책 구체화에 따른 시장 변동성 확대 가능성 ▲지난해 4분기 실적 발표에 따른 2025년 이익 전망치 하향 조정 마무리 과정을 올 1분기 거친 뒤 국내 정치 불확실성 해소로 환율이 안정세를 찾는 게 최선의 시나리오로 평가된다. 조수홍 NH투자증권 리서치본부장은 “현재 한국 주식 시장은 미국 주식 시장에 비해 밸류에이션 부담이 없는 상황”이라며 “트럼프 2기 관세 정책과 통상 마찰 우려가 존재하지만 이미 주가에 반영되어 있으므로 1분기 조정 시 매수하는 전략을 고려할 때”라고 진단한다. 박희찬 미래에셋증권 리서치센터장도 “2025년 하반기 이후 경기에 대한 긍정론이 커질 가능성이 높아 지난 4분기 실적을 올 1~2월에 확인한 뒤 주가 반등이 나타날 수 있다”고 봤다.
주가 조정 시 분할 매수할 만한 업종으로는 조선과 AI 반도체(HBM), 전력기기, 제약바이오 등이 꼽혔다. 조선은 이미 충분한 수주 잔고를 축적한 가운데 트럼프 행정부 출범으로 정책 수혜도 기대된다. 반도체는 고대역폭메모리(HBM)를 중심으로 차별적 성장 궤적이 그려질 전망이다. 전력기기 업종은 미국과 유럽 전력망 확충에 따른 수요 증가세가 예상된다. 제약·바이오는 관세·환율 등 무역 변수와 상관관계가 낮다는 점에서 기대를 모은다.
박희찬 리서치센터장은 “견고한 실적 성장세가 기대되는 조선, 전력기기 업종과 무역 분쟁 이슈에서 상대적으로 자유로운 IT 서비스, 엔터테인먼트, 인터넷·게임, 헬스케어, 그리고 올해 실적 회복이 기대되는 반도체를 긍정적으로 본다”고 밝혔다.
잉여 현금이 많아 주주환원 정책에 속도를 낼 수 있는 기업에 선별 투자하라는 조언도 잇따랐다. 윤석모 삼성증권 리서치센터장은 “미국 재정적자 확대 우려로 장기 금리가 급등할 경우, 위험자산 선호도가 낮아질 수 있다. 이 경우, 이익 변동성이 낮고 배당수익률이 높은 기업의 상대수익률이 주목받을 가능성이 높다”고 봤다.
[배준희 기자 bae.junhee@mk.co.kr]
[본 기사는 매경이코노미 제2293호 (2025.01.15~2025.01.21일자) 기사입니다]
배준희 매경이코노미 기자(bjh0413@m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