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원달러 환율 1456.7원에 마감
의사봉 두드리는 韓銀 총재 - 이창용 한국은행 총재가 16일 오전 서울 중구 한국은행에서 열린 금융통화위원회 회의에서 의사봉을 두드리고 있다. 이 총재는 이날 기준금리를 연 3%로 동결한다고 발표하며 "경기만 보면 금리 인하가 맞지만 환율이 너무 높아 동결했다"고 말했다. /사진공동취재단
한국은행이 16일 금융통화위원회를 열고 현재 연 3%인 기준금리를 동결하기로 결정했다. 작년 10월, 11월 두 차례 연속으로 0.25%포인트씩 금리를 내렸지만, 이번에는 묶은 것이다.
한은이 이번에 기준금리를 동결한 것은 달러당 1400원대 후반에서 움직이는 높은 환율로 인한 부담과 대내외 변수들로 인한 불확실성이 커졌기 때문이다. 이창용 한은 총재는 기자회견에서 “경기만 보면 금리를 내리는 게 당연한 상황이지만, 워낙 대외 불확실성이 크다”며 “숨을 고르고 정세를 파악하는 게 더 바람직하다고 생각했다”고 동결 이유를 설명했다. 금리를 내리면 국내에서 해외로 자금이 빠지면서 가뜩이나 높은 원화 환율이 더 올라갈 가능성이 있다.
다만, 이 총재는 경기 둔화 우려에 따라 향후 금리 인하 가능성을 열어놨다. 이 총재는 “저를 제외한 금통위원 6명 모두 3개월 이내에 현재 연 3%보다 낮은 수준으로 기준금리를 인하할 가능성을 열어놔야 한다는 생각”이라고 했다. 이날 금통위원 6명 중 신성환 위원 1명이 금리를 내려야 한다는 소수 의견을 냈다.
지난달 계엄과 탄핵 정국으로 인한 정치적 불확실성과 트럼프 대통령 취임을 앞두고 강달러 기조가 겹치면서 달러 대비 원화 환율은 1480원대까지 뛰었다. 2008~2009년 글로벌 금융 위기 당시 수준에 육박하며 1500원 선을 위협한 것이다. 이달 들어서도 원화 환율은 1450~1470원대서 움직이고 있다.
한편, 이날 달러 대비 원화 환율은 주간 거래에서 오후 3시 30분 기준 전날보다 4.5원 내린 1456.7원에 마감했다. 한은의 금리 동결 이외에도 원화 환율 하락에는 미국의 12월 근원 소비자물가가 3.2%로 시장 전망(3.3%)보다 낮게 나오면서 미국에서 인플레이션 우려가 덜어진 영향도 있었다.
그래픽=이진영
“환율, 정치적 리스크로 30원 오른 셈… 하락 기대”
이창용 한은 총재는 16일 기자간담회에서 “현재 환율을 1470원으로 볼 때, 저희 펀더멘털(기초체력)에 비해 많이 올라간 측면이 있다”고 했다. 강달러 변수가 50원쯤이면, 국내 정치적 불확실성으로 영향을 받은 것이 30원쯤이라고도 했다. 이 총재는 “정치적 불확실성으로 인한 변수가 50~60원 수준으로 올라간 적도 있다”며 “지금은 (정치적 변수로 인한) 30원에서 내려가지 않을까라고 본다”고 했다.
한편 이날 이 총재는 현재 경기 상황에 대한 우려도 수차례 강조했다. “경기를 신경 안 쓰는 것이냐 하면 좀 억울한 면도 있다”고까지 했다. 실제 경기 둔화 가능성은 더 높아졌다. 한은은 작년 11월 경제 전망을 발표하면서 작년 성장률 전망은 2.4%에서 2.2%로, 올해 성장률 전먕은 2.1에서 1.9%로 내렸다. 지난달 중순 계엄 이후에 열린 물가설명회에서는 이를 다시 낮춰 잡았다. 당시 이 총재는 “아무래도 탄핵이 경제에 부정적 영향을 미칠 것”이라며 작년 4분기(10~12월) 성장률을 전기 대비 0.5%에서 0.4%나 그보다 아래로, 작년 성장률을 2.1%쯤으로 낮춰서 봤다.
그런데 한 달도 안 돼 이를 다시 낮출 가능성을 언급했다. 이 총재는 이날 “작년 4분기 성장률이 0.2%로 기존 전망인 0.4%보다 더 내려갈 가능성이 있다”고 했다. 한은 관계자에 따르면, 작년 성장률도 지난달 언급한 2.1%보다 더 낮은 2%수준일 것으로 보인다. 이 총재는 “1월 초까지 자료를 볼 때도 신용카드 소비나 건설 경기 등이 예상보다 많이 떨어지고 있는 중”이라고 했다.
이미 나온 경제 지표들은 부정적이다. 전산업 생산은 9~11월 석 달 연속 전기 대비 줄었다. 작년 1~11월 소매판매액도 전년 동기 대비 2.1% 감소했다. 이는 카드 대란이 있었던 2003년(-3.1%) 이후 21년 만에 최대 폭이다. 그나마 수출이 버텨줬는데, 이달 들어 1~10일 수입액이 수출액을 웃돌면서 무역수지가 29억7000만달러 적자를 기록했다. 이 총재는 통화 정책 외에 재정 정책의 필요성에 대해서는 “추경 시기는 빠를수록 좋고, 15조~20조원 정도가 성장률이 떨어진 정도를 완화할 수 있다고 본다”고 했다.
강달러로 인한 부담으로 금리 결정 스텝이 꼬인 건 한국만이 아니다. 이날 로이터통신은 유럽중앙은행 고위관계자들이 “올해도 통화 정책을 완화할 가능성이 높지만 세계 무역 전쟁부터 국내 정치까지 불확실성이 전망에 부정적 영향을 미치고 있어 신중해야 한다”고 했다고 전했다. 지난달 트럼프 정부 관련 불확실성을 언급하며 금리를 동결했던 일본은행은 다음 주 금리 결정을 앞두고, 금리 인상 가능성을 언급하고 있다.
최아리 기자 usimjo@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