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문가 10인의 2025 투자 전략
나 홀로 순항하던 미국 증시에 경고등이 켜지고 있다. 미 연방준비제도(Fed·연준)가 조만간 금리를 낮출 것이란 기대가 점멸하면서 지난해 사상 최고치를 기록했던 미국 주식시장이 다시 흔들리고 있다. 중국도 변곡점을 맞고 있다. 지난해 오랜 부진을 깨고 두 자릿수 성장을 기록했던 중국 주식시장은 20일 트럼프 미국 대통령 취임을 앞두고 얼어붙었다. 국내 주식시장도 녹록지 않다. 탄핵 정국과 고(高)환율에 발목이 잡혀 있고, 변동성은 여전히 크다. 과연 앞으로 투자 지도는 어떻게 그려나가야 할까? 전문가 10인에게 그 답을 구해봤다.
‘가치투자의 대가’ 하워드 막스는 2000년 새해 벽두 ‘bubble.com(버블 닷컴)’이라는 메모를 남겼다. 기술, 인터넷 관련 주식과 관련해 일어나고 있던 비이성적인 행동에 관한 경고였다. 우려는 곧 현실이 됐다. 그해 기술주 버블이 정점을 찍고 붕괴하기 시작하며 수많은 투자자가 큰 손실을 보았다. 그런 그가 25년 만에 다시 ‘버블’이라는 메모로 2025년을 시작했다. 대형 기술주가 이끄는 미국 주식이 과도하게 비싸져서다.
“코스피 2400~2500 콘크리트 바닥 수준”
블룸버그에 따르면, 1월 10일 기준 미국 주가수익비율(PER·주가를 주당 순이익으로 나눈 값)은 25.03배다. 1999년 정보통신(IT) 버블이 터기 전을 제외하면 역사적으로 가장 높은 수준이다. 같은 기준에서 한국 9.85배, 중국은 10.31배다. 그렇다면 ‘PER’이 높으면 어떤 문제가 있을까. 막스는 “투자 수익률은 그 투자 대상에 얼마를 지불했느냐에 따라 상당 부분이 결정된다”고 했다. 좋은 주식이라도 비싸게 사지 말라는 얘기다.
그래픽=남미가 nam.miga@joongang.co.kr
새해 금융투자업계에선 ‘미(美) 고점론’과 ‘한(韓) 바닥론’이 대두하면서 ‘가격’이 우선적인 투자의 기준이 됐다. 중앙SUNDAY가 금융 전문가 10인을 대상으로 ‘2025년 국가별(한국·미국·중국 중심) 투자 매력도’를 조사한 결과, 미국은 27점(45점 만점)으로 가장 낮은 점수를 받았다. 중국은 30.2점. 한국이 33점으로 새해 가장 주목할 국가로 집계됐다. 펀더멘털(기초체력)이 견고한 미국보다, 밸류에이션(가치 대비 주가)이 낮은 한국을 주목하라는 의견이 다수였다. 염승환 LS증권 이사는 “코스피 2400~2500은 콘크리트 바닥 수준으로 국내 주식에 투자할 적기”라고 평가했다.
박세익 체슬리투자자문 대표는 지금 한국 주식을 주목해야 하는 이유로 ▶연내 원화가치 상승 ▶중국 부양 효과 ▶반도체 회복 ▶상법 개정 등을 꼽았다. 특히 상법 개정은 상당한 주가 상승이 이뤄질 기폭제로 외국인 투자자에게 한국이 매력적인 시장으로 전환되고, 코스피가 3000선을 훌쩍 넘어설 수 있다고 낙관적 전망을 폈다. 국민연금의 매수세 전환도 긍정적 요인으로 꼽힌다. 염 이사는 “지난해 말 국민연금 포트폴리오 중 국내 비중은 12.7%로, 최소 2%포인트 이상 높여야 하는 데 그 규모가 30조원”이라며 “대기 자금이 많다”고 했다.
그래픽=남미가 nam.miga@joongang.co.kr
유망 업종 및 주도주로는 조선·방산, 바이오, 반도체 등이 주로 꼽혔다. 이선엽 신한투자증권 이사는 “조선은 미국에 경쟁 기업이 없고, 미국 방산은 하이엔드급 위주라면 K방산은 자주포 등 미들급으로 가격 경쟁력이 있다”고 말했다. 또 미·중 갈등으로 중국이 견제받는 원자력·에너지 관련 종목이 성과를 낼 가능성이 크다고 봤다. 바이오주는 트럼프의 ‘약가 인하 정책’ 수혜 대상으로 꼽힌다. 목대균 KCGI자산운용 대표는 “국내 바이오기업은 경기 방어적인 주식이면서, 글로벌 빅파마와의 제휴 확대로 이익 증가가 기대된다”고 했다. 윤보원 하나증권 Club1 한남WM센터장도 “AI 분야가 글로벌 테마라면, 국내의 경우 기술수출이 기대되는 헬스케어 기업들이 주목된다”고 했다.
밸류업 대표 종목인 금융·통신업종도 기대해볼 만하다. 지난해 금융주 주가가 크게 상승했지만, 주가순자산비율(PBR)은 약 0.4~0.7배로 여전히 낮다. 김민국 VIP투자자문 대표는 “향후 2~3년내 주주환원율을 45~50%까지 올린다면, 4년 만에 10배에 이를 정도로 큰 폭의 주가 상승이 일어난 메리츠금융지주의 사례를 다른 금융주에서도 볼 수 있을 것”이라고 했다. 통신 기업도 주주 환원에 적극적이다. 김영익 서강대 경제대학원 교수는 “통신 기업들이 AI와 접목해 영역을 넓혀가고 있고 연 4~6%대의 안정적인 배당금도 매력적”이라고 했다.
조선·바이오, 트럼프 2기 수혜주 꼽혀
현재 디플레이션(경기침체 속 가격 하락)을 겪고 있는 중국에 대한 낙관적 전망도 잇따른다. 설문 대상 전문가의 40%는 올해 중국의 투자 매력도에 대해, 한국과 비슷하거나 그 이상으로 봤다. 중국 정부는 경기침체에다 ‘트럼프 리스크’에 직면해, 과거 일본처럼 무제한 돈 풀기에 나설 것으로 관측되고 있다. 홍춘욱 프리즘투자자문 대표는 “중국 주식은 가장 싸고, 통화정책에 대한 기대감이 크다”며 “중국 본토 주식 대부분이 편입돼 있는 CSI300 등을 통해 중국에 투자할 만하다”고 말했다. 인공지능(AI) 대국이라는 점도 강점이다. 이선엽 이사는 “전 세계에서 AI를 제일 잘하는 국가가 미국과 중국인데, AI가 끌어가는 미국 증시는 고평가됐지만 중국 주가는 바닥”이라고 말했다. 그는 차이나항생테크 등 중국 상장지수펀드(ETF)를 추천했다.
그래픽=남미가 nam.miga@joongang.co.kr
저평가된 한국·중국과 달리, 미국은 고평가 우려가 짙다. 국내 전문가 대다수는 미국 주식의 단기 조정에 무게를 뒀다. 김한진 삼프로TV 이코노미스트 역시 “높은 금리가 (조정의) 트리거가 될 것”이라며 “다만 미국 경제가 견조하기 때문에 장기 약세장으로 빠질 가능성은 크지 않다”고 말했다. 미국 10년 만기 국채 금리는 지난 10일 4.76%까지 치솟은 바 있다. 일각에선 금리가 5%를 찍으면 반사적으로 주식 매도세가 나올 것이라는 예상도 나온다. 오는 23~23일 예정된 일본은행(BOJ) 금리 인상 여부도 주요 변수다. 박 대표는 “BOJ가 금리를 인상하면 지난해 8월처럼 미국을 비롯한 글로벌 증시에 충격을 가져올 수 있고 이는 비관론이 부각되는 실마리가 될 수 있다”고 했다.
세계 경제의 불확실성 속에서 주식보다는 채권을 눈여겨봐야 한다는 의견도 나온다. 스티븐 창 핌코 매니징 디렉터 겸 아시아 포트폴리오 매니저는 “경기가 침체될 경우 채권이 주식보다 우수한 성과를 낼 가능성이 크고, 설령 인플레이션이 재차 상승하더라도 높은 초기 수익률이 채권에 잠재적으로 방어 역할을 제공할 수 있다”고 말했다. 그는 올해 일본을 제외한, 선진국 중앙은행은 대체로 0.5%포인트에서 최대 1.5%포인트까지 금리를 인하할 것으로 예상했다.
안전자산에 대한 관심도 커지고 있다. 김 교수는 “과도한 미국 주식 비중은 줄이고 미·중 갈등의 수혜국인 인도와 베트남 등으로 분산투자하고, 달러 가치 하락에 대비해 안전자산인 금과 미 국채 등을 매입해 리스크를 관리해야 한다”고 말했다. 홍 대표는 미국 리츠가 틈새 자산으로 유망하다고 봤다. 그는 “금리 인하 기대가 약화하고 있음에도 소득 증가에 힘입어 주택 가격의 상승세가 이어지고 있다”며 VNQ(뱅가드 리얼에스테이트ETF)와 SCHH(슈왑 US리츠ETF) 등을 추천했다.
배현정 기자 bae.hyunjung@joonga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