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주목되는 미국 주식시장]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취임 후 미국 증시의 첫 반응은 상승이었다. 미국 증시는 트럼프 대통령의 취임식 날인 20일(현지시간) 휴장했다가 21일 거래에서 상승했다.
트럼프 대통령 집권시 수혜주로 꼽혀왔던 소형주 지수인 러셀2000지수가 1.9% 가장 큰 폭으로 올랐고 우량주지수인 다우존스지수가 1.2% 상승했다. S&P500지수와 나스닥지수는 각각 0.9%와 0.6% 강세를 보였다.
이날 미국의 10년물 국채수익률은 0.037%포인트 떨어진 4.573%로 거래를 마쳤다. 이는 지난해 12월30일 이후 최저 수준이다.
최근 한달간 S&P500지수 추이/그래픽=이지혜
관세 정책이 초미의 관심월가 전문가들은 미국의 10년물 국채수익률이 하향 안정되고 증시가 랠리한데 대해 트럼프 대통령이 취임 직후 관세 정책을 즉각 시행하지 않고 신중하게 접근하는 모습을 보였기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취임식 날 여러 건의 행정명령을 처리하면서 관세 정책은 제외했다. 취임사를 마친 후 기자들의 질의·응답 때는 멕시코와 캐나다가 불법 이민자들이 미국 국경을 넘도록 방치하고 있다며 이르면 2월1일부터 이 두 나라에 대해 25%의 관세 부과를 고려하고 있다고 밝혔다.
이어 21일에는 백악관 기자회견에서 중국이 미국으로 펜타닐을 보내고 있다며 "아마도 2월1일부터" 중국에 10%의 관세를 부과하는 방안을 논의 중이라고 말했다.
이에 대해 골드만삭스의 수석 미국 담당 정치 이코노미스트인 알렉 필립스는 고객들에게 보낸 메모에서 "트럼프 대통령의 취임 당일 관세에 대한 정책 발표는 예상보다 온건했다"며 "현재로서는 관세 정책이 생각했던 것보다 우선순위가 낮은 것으로 보인다"고 밝혔다.
트럼프 대통령은 다만 관세를 부과하기로 결정할 경우 공격적으로 조치를 취할 수 있는 토대는 취임 첫날 마련했다. '미국 우선주의 무역정책'이라는 행정명령이다.
이 행정명령은 "다른 나라가 시행하는 불공정한 무역 관행"이 있는지 검토하도록 하고 있다. 미국에 불리한 무역 관행이 있다고 판단하면 해당 국가에 관세를 부과하겠다고 엄포를 놓을 수 있을 것으로 예상된다.
미국 증시는 트럼프 행정부의 정책 방향에 따라 승자와 패자로 갈리는 양상이지만 관세는 미국 증시 전체를 패자로 만들 수도 있다. 인플레이션 압력을 높여 국채수익률을 끌어올리고 금리 인하를 어렵게 만들어 경제 성장세를 위축시킬 수 있기 때문이다. 모간스탠리는 지난해 관세가 2026년에 미국의 경제성장률을 크게 떨어뜨릴 수 있다고 경고했다.
CNBC는 트럼프 행정부의 관세 정책이 바람을 심었다가 회오리바람을 거두는 원치 않는 결과를 낳을 수도 있다고 봤다.
우주항공-AI 관련주, 수혜 기대트럼프 행정부의 정책이 특정 업종에 미치는 영향도 주목된다. 21일 미국 증시에서는 우주항공 관련주가 급등했다. 트럼프 대통령이 전날 취임사에서 "우리는 화성에 성조기를 꽂을 수 있도록 우주선을 쏘아 올리며 별들을 향해 우리의 분명한 운명을 추구할 것"이라고 말한 영향이다.
이날 중소형 로켓과 우주선을 만드는 로켓 랩 USA가 30.3% 뛰어올랐고 우주항공 인프라 회사인 레드와이어가 51.4%, 우주항공 제품 및 서비스 회사인 인튜이티브 머신즈가 23.9% 폭등했다. 미국 항공우주국(NASA) 공급업체인 보잉과 록히드 마틴도 각각 2.6%와 3.3%씩 상승했다.
AI(인공지능) 관련주의 수혜도 기대된다. 트럼프 대통령이 취임 첫날 조 바이든 전 대통령이 2023년 10월에 AI 위험을 제한하기 위해 서명한 행정명령을 철회한데다 취임 이틀째인 21일에는 오픈AI와 오라클, 일본 소프트뱅크가 미국 내 AI 인프라 구축을 위해 5000억달러를 투자한다고 발표했기 때문이다.
바이든 전 대통령의 행정명령은 AI 개발자가 AI 안전 테스트 결과를 대중들에게 공개하기 전에 먼저 정부에 알리도록 하는 내용이다. 트럼프 대통령이 이 행정명령을 철회한 것은 AI 규제를 완화하려는 의지를 보여주는 것이라는 평가를 받았다.
트럼프 대통령은 또 오픈AI와 오라클, 소프트뱅크가 스타게이트라는 합작회사를 설립해 AI 인프라에 투자한다는 소식을 직접 발표하며 AI산업에 대한 관심과 지원 의사를 강하게 드러냈다.
대통령도 어쩔 수 없는 증시 고평가당분간 트럼프 행정부의 정책 방향에 따른 수혜주 찾기가 계속될 것으로 전망되는 가운데 미국 증시의 밸류에이션이 너무 높다는 우려는 계속되고 있다.
월스트리트 저널(WSJ)의 칼럼니스트인 스펜서 제이컵은 21일 트럼프 대통령이 미국 역사상 증시가 가장 비쌀 때 취임했다며 정책과 관계없이 주가 수익률은 부진할 수 있다는 의견을 밝혔다.
그는 로버트 실러 예일대 교수가 개발한 경기 순환적으로 조정된 주가수익(CAPE) 비율에 따르면 현재 미국 주식은 빌 클린턴 대통령 취임 당시보다 83%, 버락 오바마 대통령 취임 당시보다 145% 더 비싸다고 지적했다. 로널드 레이건 대통령이 취임했을 때보다는 CAPE 비율이 4배나 더 높다. 트럼프 대통령이 첫 임기를 시작했을 때와 비교해서도 밸류에이션이 3분의 1 더 비싼 상태다.
미국 대통령 취임 당시 미국 증시의 경기순환 조정 주가수익(CAPE) 비율/그래픽=윤선정
CAPE 비율은 S&P500지수를 기업들의 과거 10년간 주당순이익(EPS)으로 나눈 것이다. 장기간의 EPS를 평균해 경기 사이클에 따른 실적 변동을 완화했다는 점이 특징이다. 반면 CAPE 비율이 산업 구조의 변화를 제대로 반영하지 못해 역사적인 단순 비교가 무의미하다는 지적도 있다. 예컨대 현재 기술기업들은 과거보다 덜 자본 집약적인데다 이익률도 훨씬 크다는 의견이다.
하지만 CAPE 비율의 약점에도 불구하고 미국 증시가 현재 비싸다는 점에 대해서는 큰 이견이 없다. 현재 주식의 밸류에이션이 높다는 것은 향후 기대 수익률이 낮다는 의미다.
이와 관련해 자산운용사 GMO는 미국 대형주의 인플레이션을 반영한 수익률이 향후 7년간 연평균 마이너스 5.7%를 기록할 것이란 암울한 전망을 내놓았다. 미국 소형주도 향후 7년간 연평균 3.8%씩 하락할 것이란 예상이다.
물론 이 전망이 딱 맞아 떨어지지는 않을 것이다. 고평가된 증시가 언제, 어떤 식으로 조정될지는 아무도 알 수 없기 때문이다. 분명한 것은 언젠가는 기업들의 EPS가 주가를 적정 수준까지 따라잡아야 한다는 사실이다. 이는 역사상 한 번도 예외가 없었다.
따라서 트럼프 수혜주들의 랠리가 이어지는 중에서도 밸류에이션에 대한 경각심을 갖고 신중한 접근이 필요해 보인다.
한편, 21일에는 개장 전에 존슨&존슨, P&G, GE 버노바 등이 실적을 발표하고 오전 10시엔 지난해 12월 경기선행지수가 공개된다.
권성희 기자 (shkwon@mt.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