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럼프 정권의 두 번째 정식 출범을 알리는 취임식에 글로벌 빅테크 거물들이 총출동했다. 대부분 트럼프가(家)의 뒷자리, 행정가·정치인의 앞자리를 배정받으며 존재감을 과시했다. 대통령 선거 운동 때부터 거액을 후원하고 당선 이후로는 리스크 최소화를 위한 관계 개선에 주력하는 모습이다.
20일(현지시간)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취임식이 미국 워싱턴D.C. 국회의사당 로툰다홀에서 열렸다. 빅테크 수장들은 이 자리에 얼굴을 내밀며 눈도장 찍기에 나섰다. 기업별로 사연은 다르지만 목적은 안정 경영으로 동일하다.
구체적으로 트럼프 정부의 실세이자 자문기구 정부효율부(DOGE) 통솔자로 내정된 일론 머스크 테슬라·엑스 최고경영자(CEO), 마크 저커버그 메타 CEO, 제프 베이조스 아마존 회장, 순다르 피차이 알파벳 CEO, 팀 쿡 애플 CEO, 샘 올트만 오픈AI CEO 등이 참석했다. 약혼자나 배우자를 대동한 인사도 있었다.
월스트리트저널(WSJ)에 따르면 취임식에 발걸음한 빅테크의 시장가치는 12조 달러(약 1경1300조원)가 넘는다. 대다수가 트럼프 대통령 당선 후 1인당 100만 달러(약 14억원) 이상을 기부했다. 가장 많은 재산을 내놓은 수장은 트럼프 대선 캠프에만 2억 달러(약 2800억원) 이상 투척한 머스크 CEO다.
블룸버그 억만장자지수에 따르면 빅테크 수장들이 보유한 순자산총액은 1조3000억 달러(약 1800조원)으로 집계됐다. 전 세계에서 가장 부유한 경제인 1위로 선정된 머스크 CEO를 비롯해 2위인 베이조스 CEO와 3위인 저커버그 CEO가 모두 포함돼 있다. 머스크 CEO의 재산은 4490억 달러(약 640조원), 베이조스 CEO와 저커버그 CEO의 재산은 각각 2450억 달러(약 350조원)와 2170억 달러(약 310조원)에 달한다.
빅테크 수장들은 대부분 로툰다홀에서 트럼프 대통령 가족의 바로 뒷자리인 두 번째 줄에 나란히 앉았다. 행정부 주요 부처 장관들은 세 번째 줄에 배정됐다. 이에 빅테크 수장들이 경영 기조를 버리고 환심 사기에 돌입하며 친(親) 트럼프 행보를 보여 주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저커버그 CEO와 베이조스 회장은 과거 트럼프 대통령과 대립각을 세웠지만 트럼프 대통령이 당선인 신분이었을 때 사저인 로리다주 마러라고 리조트를 방문했다. 저커버그 CEO는 다양성·형평성·포용성 정책을 전담하는 조직을 해체하고 팩트체크 기능을 폐지했다. 베이조스 회장은 자신이 대주주인 스트리밍 플랫폼 프라임비디오를 통해 영부인 멜라니아 트럼프 여사의 삶을 조명하는 다큐멘터리 영화를 제작·방영할 예정이다. 쿡 CEO도 트럼프 대통령과 식사 자리를 가졌다.
메타는 미국 연방거래위원회(FTC)로부터 과도한 비용을 지불하고 인스타그램과 왓츠앱을 인수해 경쟁자를 제거하고 온라인 생태계를 장악했다며 반독점 소송을 당했다. 메타는 혐의를 부인하면서 소송을 기각해 달라고 법원에 요청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구글도 지난해 불법적으로 온라인 검색 시장에서 독점 지위를 유지하고 있다는 연방법원의 판결을 받았다. 구글은 자사의 검색 엔진을 기본값으로 설정하는 대신 스마트폰업체와 이동통시회사에 거액을 지급해 왔다. 미국 법무부는 크롬 강제 매각을 제안했다. 시장 지위가 흔들릴 위기에 처한 구글은 난감한 분위기다.
아마존은 핵심 서비스인 아마존웹서비스(AWS)의 매출 유지를 위해 정부와 원만한 관계를 이어가야 한다. 클라우드 서비스 주요 고객사가 정부라서다. 애플은 대체로 중국에서 제품을 제조하는데, 트럼프 정부가 중국과 무역 전쟁을 재개할 가능성이 있기에 긴장 태세다. 틱톡은 미국 서비스 중단 위기에 놓인 바 있다. 하지만 트럼프 대통령이 서비스 금지를 90일간 유예할 가능성을 시사하면서 한숨 돌렸다.
블룸버그는 “빅테크들은 트럼프 대통령의 규제 완화와 투자 촉진 약속 덕분에 기업 수익이 향상될 것이라는 희망을 품고 있으면서도 경제 정책의 도구로 쓰겠다고 공언한 관세로 인한 최악의 결과를 피하기를 바라고 있다”고 평가했다.
WSJ도 “진영의 보복을 피하고자 하는 기술 기업들이 트럼프 대통령의 취임 축하 행사에 수백만 달러를 쏟아 부었고, 트럼프 대통령의 입장에 더 잘 부합하도록 정책을 변경하기도 했다”면서도 “다만 이러한 화합 분위기가 얼마나 오래 지속되지는 아직 미지수”라고 보도했다.
매일경제 이가람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