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년 2% 성장… 올해는 더 안 좋아
-0.2%(2024년 2분기)→0.1%(3분기)→0.1%(4분기)
한국 경제성장률이 3개 분기 연속으로 0% 안팎을 기록했다. 지난해 4~12월 경제 성장이 거의 멎었다는 뜻이다. 성장률이 3개 분기 연속으로 0.1% 이하를 기록한 것은 외환 위기 직격탄을 맞은 1997년 4분기(-0.6%), 1998년 1분기(-6.7%), 2분기(-0.8%) 이후 26년 만에 처음이다. 작년 4분기는 11월 전망(0.5%)의 5분의 1에 불과하다.
그래픽=이진영
한국은행은 23일 “2024년 실질 국내총생산(GDP)이 1년 전보다 2% 증가했다”고 밝혔다. 그나마 수출이 잘됐던 작년 1분기(1.3%) 덕에 2% 턱걸이를 했다. 특단의 대책 없이 방치하면 한국 경제가 구조적 저성장 단계로 접어들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이날 한국경제인협회(한경협)는 전국 상경 계열 교수 111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한국경제 중장기 전망 및 주요 리스크’ 설문조사 결과를 발표했다. GDP 성장률과 잠재성장률 하락을 근거로 ‘한국의 경쟁력이 정점을 찍고 내리막길에 들어섰다’는 이른바 ‘피크 코리아(Peak Korea)’ 주장에 동의하느냐는 질문에 응답자 3명 중 2명꼴로 고개를 끄덕였다. ‘어느 정도 동의’(52.3%)하거나 ‘매우 동의’(14.4%)한다는 답이 ‘동의하지 않는다’(31.5%)는 답변을 압도했다. 설문 결과, 응답자 절반이 한국 경제의 잠재성장률을 2% 미만으로 봤다. 한국의 경제 체력이 이미 저성장 단계에 진입했다는 진단이다.
◇초고령사회 내수 부진
부문별로 보면 지난해 수출은 그나마 양호했지만 내수가 부진했다. 경제 성장률에 얼마나 영향을 미쳤는지 보여주는 성장기여도는 순수출(수출-수입)이 작년 3분기 -0.8%포인트에서 4분기 0.1%포인트로 올라갔으나, 내수는 0.8%포인트에서 0%포인트로 추락했다.
내수를 갉아먹은 것은 민간 소비와 건설 투자였다. 한은은 작년 11월 전망 당시 4분기에도 3분기처럼 민간 소비가 0.5% 성장할 것으로 봤는데, 실제로는 0.2% 늘어나는 데 그쳤다. 그간 고물가와 고금리 부담으로 부진했던 소비가 하반기 들어 물가가 1%대로 내려오고 금리도 낮아지면서 경기 회복세가 빨라질 것으로 봤는데 빗나간 것이다. 이정희 중앙대 교수는 “작년 한국 인구의 20%가 65세 이상인 초고령사회로 진입하면서 구조적으로 소비 동력이 떨어져 내수가 살아나기 쉽지 않다”고 했다.
비상계엄 사태와 탄핵 정국, 제주항공 여객기 참사 등 예상치 못한 변수들이 생기며 소비자들이 지갑을 닫아 민간 소비가 더 부진했다고 한은은 설명했다. 한은에 따르면 작년 12월 25~31일 카드 사용액은 전년 대비 0.9%가 줄었다. 이런 흐름은 이달 1~12일 기준으로도 전년보다 0.8% 줄며 올해 들어서도 계속 이어지고 있다. 특히 건설 투자는 작년 2분기부터 3분기 연속 마이너스 성장을 기록하고 있다.
◇한은 전망 크게 빗나가
한은의 경기 전망은 3분기에 이어 또 한번 크게 빗나갔다. 한은은 작년 11월 전망에서 연간 성장률로 봤을 때 건설 투자가 기존 전망치보다 0.5%포인트 내린 -1.3%일 것으로 봤는데, 실제로는 2.7% 줄며 예상보다 더 부진했다.
정부의 가계 대출 규제 정책으로 주택 거래가 전망보다 더 나빴고, 레고랜드 사태와 부동산 프로젝트파이낸싱(PF) 부실 등의 영향으로 부동산 시장의 부진이 이어지고 있다고 한은은 설명한다.
문제는 올해도 이런 흐름이 나아지기 어렵다는 점이다. 한은은 작년 11월만 해도 올해 한국 경제가 1.9% 성장할 것으로 봤지만, 최근 계엄·탄핵 등의 여파로 내수가 타격을 받는 걸 감안해 올해 성장률 전망을 0.2%포인트 이상 낮춰 1.6~1.7%가 될 것으로 보고 있다. 그간 성장률을 방어해준 수출마저 둔화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관세청에 따르면 이달 1∼20일 수출액은 316억달러로 1년 전 같은 기간보다 5.1%(17억1000만 달러) 줄었다. 박형중 우리은행 투자전략팀장은 “미국 트럼프 2기 정부 출범을 앞두고 작년 4분기에 국내 기업들이 밀어내기 수출에 나섰을 가능성이 있기 때문에 올해 수출이 더 안 좋아질 가능성이 있다”고 했다.
김태유 서울대 명예교수는 “지난 30년간 대통령 임기마다 한국 경제성장률이 1%포인트씩 대세 하락해 왔다”며 “새로운 성장 동력을 찾는 노력이 절실하다”고 했다.
☞피크 코리아(Peak Korea)
피크 코리아는 한국 경제가 과거 고도성장기를 거치고 나서 성장이 정점을 찍고 내리막에 들어섰다는 주장이다. 1990년대까지 두 자릿수 성장률을 보였던 한국의 경제성장률은 2000년대 들어선 5%대, 2010년대엔 3%대, 2020년대 이후엔 2%대로 떨어지면서 피크 코리아 주장이 강해지고 있다.
김정훈 기자 runto@chosun.com
최아리 기자 usimjo@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