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럼프發 통상전쟁]
관세위협 이어 반도체 지원 제동… 삼성-SK, 이미 美공장 건설 추진
재협상 결과 따라 투자 차질 우려… “美, 韓기업 대중투자 더 옥죌 것”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반도체 지원법(칩스법)에 따른 첨단 기업들의 미국 내 투자 지원을 재검토할 것으로 알려지면서 국내 반도체 업계가 바짝 긴장하고 있다. 국내 기업들은 관세 위협에 이어 그간 우려했던 보조금 수령마저 제동이 걸리면서 된서리를 맞은 분위기다. 기업들은 전임 조 바이든 행정부 임기 막바지인 지난해 말 서둘러 보조금 최종 계약을 체결했지만 실제 지원 여부가 안갯속으로 들어가게 된 것이다. 칩스법은 미국에 투자하는 반도체 기업들에 5년간 총 527억 달러의 보조금을 지급한다는 내용으로 바이든 행정부 당시인 2022년 발효됐다.
14일(현지 시간) 로이터통신은 복수의 소식통을 인용해 백악관이 칩스법에 대한 재협상을 추진하고 있으며 향후 이뤄질 예정이었던 일부 반도체 관련 지출을 지연시킬 수 있다고 전했다. 로이터는 “워싱턴은 현재 요구 사항을 평가하고 변경한 후 일부 거래를 재협상할 계획”이라며 “가능한 변경 사항의 범위와 이것이 이미 확정된 협정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는 아직 명확하지 않다”고 전했다.
실제 칩스법 수혜 대상 기업 중 한 곳인 대만 글로벌웨이퍼스 측은 로이터에 “칩스법 관련 당국이 현재 모든 자금 지원 계약과 관련해 ‘트럼프 대통령의 행정명령 및 정책과 일치하지 않는 특정 조건들에 대해 검토 중’이라고 통보해 왔다”고 밝혔다.
삼성전자가 2022년 착공해 2026년 가동을 목표로 짓고 있는 미국 텍사스주 테일러시 파운드리 공장 전경. 삼성전자 제공
이미 현지 공장에 조 단위 투자금을 들여 착공한 국내 기업들은 “결국 올 것이 왔다”는 반응이다. 앞서 트럼프 대통령은 대선 기간이었던 지난해 10월 인터뷰에서 “10센트도 낼 필요가 없었다”며 “높은 관세를 부과하면 그들이 와서 반도체 공장을 무료로 건설할 것”이라고 언급했다. 하워드 러트닉 미국 상무장관 후보자도 올해 1월 인사청문회에서 칩스법 보조금 관련 계약을 이행하겠느냐는 질문에 “단언할 수 없다. 내가 읽지 않은 무엇을 이행할 순 없다”고 선을 그었다.
기업들은 어렵게 확정 계약까지 이뤄진 보조금을 두고 또다시 신임 행정부와 협상을 재개해야 하는 상황이 됐다. 삼성전자는 지난해 12월 미 정부로부터 전체 투자금의 약 12.8%에 해당하는 47억4500만 달러(약 6조8328억 원) 보조금을 지급받기로 최종 계약했다. 삼성전자는 2022년 착공한 미국 텍사스주 테일러 파운드리(반도체 위탁생산) 공장에 370억 달러를 투자해 2026년 가동을 목표로 하고 있다.
38억7000만 달러를 투입해 인디애나주에 고대역폭메모리(HBM)를 비롯한 반도체 패키징 생산기지를 건설할 계획인 SK하이닉스도 4억5800만 달러(약 6595억 원) 보조금 수령이 불투명해졌다. 조지아주에 반도체 유리기판 공장을 가동 중인 SKC 자회사 앱솔릭스도 7500만 달러(약 1080억 원) 보조금이 계약돼 있다. 기업마다 보조금이 전체 투자금의 10∼20%대를 차지하는 만큼 재협상 결과에 따라 투자 계획에 차질을 빚을 가능성도 있다.
특히 이번 협상이 단순히 현지 투자 조건 등에 그치는 게 아니라 향후 국내 기업들의 대중(對中) 투자를 옥죄기 위한 또 다른 수단으로 활용될 우려도 제기된다. 로이터는 소식통을 인용해 “백악관이 칩스법 보조금을 받은 이후 중국을 비롯한 다른 해외 지역에 대규모 투자 계획을 발표한 기업들에 실망했다”며 인텔이 지난해 3월 보조금 확정 이후 10월 중국 청두 생산 설비에 투자한 것을 예로 들었다. 중국 시안 낸드플래시 공장, 우시 D램 공장을 운영 중인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가 또 다른 변수에 부딪힌 것이다.
반도체 업계 관계자는 “투자는 예정대로 집행 중”이라면서도 “이미 계약된 지원금 규모를 감안해 현지 투자 중인 만큼 변수가 발생하면 타격은 없을 수가 없다”고 말했다.
곽도영 기자 now@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