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일 경기 평택항에 수출용 차량들이 늘어선 모습 / 뉴시스
현대차·기아는 지난해 미국에서 자동차 177만대(도매 기준)를 팔았다. 이 중 미국에서 생산한 차는 63만대, 멕시코에서 만든 물량은 14만대였다.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이 18일(현지 시각) 밝힌 대로 4월 2일부터 자동차에 관세 25%를 부과하면 한국에서 생산해 미국으로 수출하는 연 100만대는 직격탄을 맞는다. 멕시코까지 합치면 전체 대미 수출의 65%에 육박하는 물량을 이전보다 25% 비싼 값에 팔게 되면서 가격 경쟁력이 치명상을 입을 처지다. 생산 물량의 90% 이상을 미국에 수출하는 한국GM은 회사의 존립이 기로에 서게 된다. 현대차·기아 임직원 10만명에 한국GM 등 다른 완성차 업체와 협력사 등을 더하면 모두 34만명에 이르는 국내 자동차 산업 종사자들이 패닉에 빠질 상황이다.
미국발 자동차 관세가 국내 자동차 업계에 끼치는 피해가 10조원을 웃돌 것이란 추산치도 금융권에서 나왔다. 장한익 IBK기업은행 경제연구소 연구위원은 “25% 관세가 부과되면 지난해 347억달러(약 50조원)였던 대미 자동차 수출은 약 63억달러(약 9조1000억원) 줄어들 것으로 추산됐다”며 “최근 들어 대미 자동차 수출 호조와 환율 변동 등을 감안하면 실제 피해는 10조원을 넘어설 전망”이라고 했다.
◇미국 현지 생산 비율, 한국은 최하위권
대미 자동차 수출이 급증하며 우리나라가 지난해 미국 수입차 시장에서 멕시코에 이어 2위에 오른 상황에서 자동차 관세 25% 부과는 치명적일 것이라는 관측이다. 특히 미국이 차를 주로 수입하는 주요 5국 중 멕시코와 캐나다는 이미 모든 품목에 대한 25% 관세가 예고됐고, 일본의 혼다·도요타 등은 1980년대부터 미국에서 공장을 가동하면서 현지 생산 비율이 높아진 상황에서 현대차·기아가 유럽연합(EU) 소속인 독일 자동차 회사들과 함께 표적이 될 것이란 우려가 나온다.
시장조사 업체 글로벌데이터에 따르면 현대차·기아는 미국 현지 생산 비율이 35% 수준에 그쳤다. 독일 폴크스바겐(20%)에 이어 가장 낮은 편으로 독일 메르세데스-벤츠(37%)와 비슷한 수준이었다.
현대차·기아가 국내에서 수출하는 100만대에 관세가 매겨지면 영업이익이 급감할 것이란 전망까지 나온다. 앞서 KB증권이 미국에서 한국산 자동차에 10%, 멕시코산에 25% 관세를 부과하면 현대차는 연간 1조9000억원, 기아는 2조4000억원 영업이익이 줄어들 것으로 전망한 가운데 한국산에도 25% 관세가 붙으면 현대차·기아의 영업이익 감소분만 10조원에 이를 수 있다는 관측도 나온다. 지난해 27조원에 달했던 현대차와 기아의 영업이익 규모를 감안하면 관세 부과로 35% 이상이 줄어들 수 있다는 것이다.
◇현지 생산 확대 요구에 고민 중
트럼프 대통령이 현지 생산을 확대하면 관세 부과를 유예할 수 있다는 취지로 말하기도 했지만, 실제 공장 신설이나 증설도 만만찮다는 반응이다. 현대차·기아는 기존 미국 앨라배마(연 36만대), 조지아(연 34만대) 공장에 이어 지난해 10월부터 조지아에서 연 30만대 규모 현대차그룹메타플랜트아메리카(HMGMA)가 가동에 들어갔다. 갓 지은 새 공장이 아직 공식 준공식도 하지 않은 상황에서 추가 증설을 결정해야 할 판국이다. 일각에서 메타플랜트 부지의 여유 공간을 감안했을 때 연 20만대 증설이 가능하고, 이 경우 지난해 미국 판매량의 70% 정도를 현지에서 생산할 수 있다는 분석이 나오지만, 부품 생태계와 현지 시장 규모 등을 감안할 때 쉽지 않다는 부정적 분석도 나오는 실정이다. 한 자동차 업계 관계자는 “현대차·기아의 연간 생산 규모가 350만대에 이르고, 수십 년 전부터 공장을 가동해 온 국내와 달리 해외에선 주요 인기 차종 위주로 전략적 생산을 하는 게 일반적”이라며 “단순한 산술로 단기간에 생산을 늘리기는 어렵다”고 했다. 현대차·기아에 따르면 국내에서 미국으로 수출하는 차종은 GV80, G90, 스포티지 등 24종에 이르지만, 미국 현지 공장 3곳에서 만드는 차종은 현지에서만 판매하는 텔루라이드, 싼타크루즈를 포함해 9종에 그친다.
고태봉 iM증권 리서치센터장은 “관세 25% 부과가 시작되면 캐딜락을 현지에서 생산하는 GM 등 미국 브랜드의 가격 경쟁력이 강해질 것”이라며 “국내 기업이 어느 정도 손해는 감수해야 할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조재희 기자 joyjay@chosun.com
이영관 기자 ykwan@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