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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는 美, 경제는 中?… 21세기 신냉전에 그런 선택지는 없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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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지경제
02-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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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 초대석] 최병일 이화여대 명예교수

최병일 이화여대 명예교수는 지난 13일 서울 강남구 한국고등교육재단에서 국민일보와 만나 “대한민국 지도자와 트럼프 간의 ‘빅딜(Big deal)’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국제 통상 전문가인 최 명예교수는 지난달 출간한 저서 ‘트럼프 어게인’에서 “신(新)냉전의 단층선에 위태롭게 놓여 있는 대한민국의 좌표를 냉정하게 파악해야 한다”고 말했다. 권현구 기자


최병일 이화여대 명예교수는 1990년대부터 우루과이라운드, 세계무역기구(WTO) 통신 협상 등 통상 현장을 누빈 국제통상 분야 권위자다. 최 명예교수는 국민일보와 인터뷰에서 “트럼프 2기 행정부와 협상은 빅딜(Big deal)이 돼야 한다”고 잘라 말했다. 관세부터 방위비, 대북 문제 등을 모두 논의 테이블에 올리고 큰 틀에서의 합의를 끌어내는 게 최선의 해법이라는 것이다.


최 명예교수는 지난달 펴낸 저서 ‘트럼프 어게인’에서 “미국과 중국 중 어느 쪽을 선택하느냐는 질문은 더 이상 의미가 없다”고 지적했다. “오늘의 우크라이나는 내일의 대만일 수 있고, 오늘의 대만은 내일의 한국일 수 있다”는 것이 그의 시각이다. 지난 26일 미국 출장에서 돌아온 그를 출국 전인 13일, 27일 두 차례 인터뷰했다.


-트럼프 2기 한 달을 촌평한다면.


“2017년 취임한 트럼프는 한 마디로 ‘준비가 안 된 정치 이단아’였다. 미국을 바꾸겠다는 생각을 갖고 워싱턴에 입성했지만 미완성 상태로 끝났다. 그 이단아가 4년 공백 끝에 돌아왔다. 집권 시절 공화당을 자신의 정당으로 만들며 정치 이단아 타이틀도 벗었다. 부통령인 J.D. 밴스를 보라. 과거 뼛속까지 민주당원이었던 밴스도 정치 입문 후 ‘트럼프 충성파’로 돌아섰다. 집권 역량과 정치력이 과거와 완전히 달라졌다. 공화당을 장악한 트럼프는 이제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종식부터 북한 핵 문제, 중국과의 패권 전쟁 등의 첨예한 사안과 마주했다. 남은 임기 3년 11개월은 그 어느 때보다 격동의 시기가 될 것이다.”


-트럼프의 관세 위협으로 국내 불안 심리도 극에 달했는데.


“트럼프는 한국을 처음 상대하는 게 아니다. 우리도 이제 트럼프가 무슨 생각을 하는지, 또 미국의 파워 엘리트는 어떤 생각을 하는지에 초점을 더 맞춰야 한다. 왜 자꾸 트럼프는 요구만 하느냐는 시각에 매몰돼 있으면 해법이 보이지 않는다. 트럼프 머릿속에 한국은 머니머신, 돈이 나올 수 있는 나라다. 과거 미국이 압도적 우위에 있을 땐 자국민 세금으로 해외 파병을 하고 전쟁도 했다. 하지만 현재 미국 내 정서는 ‘우리가 왜 이런 걸 계속해야 하느냐’는 기류가 강하다. 이제는 동맹국도 책임을 져야 한다는 말을 트럼프는 거칠게 쏟아내는 것뿐이다. 미국도 달라졌다는 것부터 직시해야 한다.


-정부는 트럼프 2기와 논의 테이블에 앉지도 못했다.


“안타까운 일이다. 하지만 정부의 시간이 곧 올 것이다. 그 시간이 왔을 때 대한민국 지도자는 트럼프와 빅딜을 해야 한다. 반도체 관세 따로, 철강 관세 따로 식의 협상은 안 된다. 방위비와 안보 문제 등을 모두 테이블에 올려놓고 큰 틀에서 합의를 이뤄야 한다.”


-세부적인 협상 전략을 제언한다면.


“우선 트럼프 2기 이후를 생각해야 한다는 말을 하고 싶다. 미국 현지 공장을 짓는 것도 단순히 투자를 늘려서 해결될 사안이 아니다. 토지 확보부터 공장 건설, 인력 채용 및 가동까지는 수년이 걸린다. 정작 가동 시점은 트럼프 임기 이후가 될 수 있다는 것이다. 트럼프 정책의 지속 가능성과 4년 후 우리 경제, 산업 구조 등을 종합적으로 검토하는 작업이 필요하다. 또 수출을 줄이기보다 수입을 늘리는 협상도 필요하다. 1980년대 일본은 미국과의 무역 협상에서 스스로 반도체·전자제품 수출 물량을 줄이겠다고 나섰다. 그 결과 일본이 지금 어떻게 됐는가.”


-미·중 패권 경쟁에 한국의 반사 이익은 이제 기대할 수 없는 건가.


“그렇지 않다. 20세기와 21세기 산업의 쌀로 꼽히는 철강과 반도체가 모두 중국에 따라잡히고 있다. 이 상황에서 미국이 중국을 견제해주는 것은 우리에게 또 한 번의 기회다. 트럼프 1기 당시엔 기회를 살리지 못했다. 이번 2기에선 어떻게 살릴지에 초점을 맞춰야 한다. 다시 강조하지만 미·중 간 신(新)냉전은 우리에게 위기이자 기회다. 미국은 막대한 투자를 요구하며 ‘제조업 르네상스’에 심혈을 기울이고 있다. 전통적 제조업 자동차, 조선업을 비롯해 인공지능(AI)에도 투자 기회가 있을 것이다. 정부와 기업, 정치권이 모두 미·중 간 선택의 프레임에서 벗어나 신냉전을 어떻게 활용할지 복합적인 시각에서 판을 짜야 한다.”


-미국과 중국 중 어디를 선택하느냐는 말은 의미가 없다는 것은 그 때문인가.


“그렇다. 20세기 냉전은 소련과 미국을 중심으로 진영이 완전히 나뉘어 있어 한국도 어느 한쪽을 선택할 수밖에 없었다. 21세기 신냉전은 다르다. 전선(戰線)이 없고 정치와 경제도 분리되지 않는다. 정치나 사회 체제는 미국을 택하고, 경제는 중국과 손을 잡는다는 식의 선택지는 이제 없다.”


-한국 경제의 ‘애프터 트럼프’는 어떤 모습일까.


“트럼프는 2029년 취임할 후임 대통령이 반드시 공화당 소속이길 바랄 것이다. 트럼프의 공격적 초기 행보에는 그런 심리가 담겨있다. 그 과정에서 우리 수출의 토대가 된 다자무역 체제가 흔들리는 것은 엄청난 위기다. 그러나 역설적으로 우리에게 기회가 될 수 있다고 나는 말하고 싶다. 우리는 흔히 98년 국제통화기금(IMF) 외환위기나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를 이겨낸 저력이 있다고 한다. 운명론일 수 있지만, 국가적 위기가 올 때마다 온 국민이 똘똘 뭉쳐 돌파한다는 것이다. 이제 한국은 더 이상 물러설 곳이 없다. 트럼프 2기는 계기가 될 수 있다. 비상한 자세로 위기를 기회로 살리는 데 집중해야 한다.”


양민철 기자(listen@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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