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창용 한국은행 총재가 28일 오전 서울 중구 한국은행에서 열린 통화정책방향 기자간담회에서 발언하고 있다. 한국은행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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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 팬데믹(세계적 대유행)과 이후 고금리 터널을 통과한 한국 경제가 1%대 성장률의 저성장 시대에 진입하는 경로를 보일 것으로 전망됐다. 한국은행은 지난 3분기 관측된 수출 증가세의 둔화가 구조적인 경쟁력 약화에 따른 것으로 분석했고, 미국 대선에서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이 승리하면서 보호무역주의 기조가 강화할 경우 정책 불확실성도 커질 수밖에 없다고 강조했다.
28일 한국은행은 올해와 내년 경제성장률 전망치를 각각 2.2%와 1.9%로 지난 8월 전망치보다 0.2%포인트씩 하향 조정했다고 밝혔다. 앞서 한은은 지난 2월 올해 성장률 전망치를 2.1%로 예측한 뒤, 5월 전망에선 2.5%로 상향 조정했다. 코로나19 엔데믹(감염병 주기적 유행) 뒤 고통스러운 고금리 환경을 이겨낸 다음이라 경제성장률이 반등하는 ‘회복 탄력성’을 기대했던 셈인데, 예상보다 경기 하강이 빨라 1%대 저성장이 고착화할 수 있다는 비관론으로 돌아선 것이다. 한은은 트럼프 전 대통령 집권 뒤 글로벌 무역갈등이 격화할 경우 내년 성장률이 1.7%까지 추가 하락할 수 있다고 예상했다.
특히 한은 전망치에서 충격적인 숫자는 2026년 성장률 전망치인 1.8%다. 2026년 성장률 전망치는 한은이 이번에 처음 대외에 제시한 숫자다. 지난해 한국 경제는 잠재성장률 수준(2%)보다 낮은 1%대 중반 성장에 그쳤다. 그런데 올해 국내총생산이 2% 초반 성장, 내년 이후로도 계속 1%대에 머물 것이라는 전망을 내놓은 셈이다. 건설·설비투자, 민간소비 등 내수 회복이 더디고 수출증가율마저 빠르게 둔화하고 있다. 한국 경제의 성장 동력이 약화하고 있다는 진단이 이어지는 가운데 한은마저 우리 ‘경제 엔진’이 식어가고 있음을 공식화한 것이다.
한은이 내년 성장률을 잠재성장률(2%)보다 낮은 1.9%로 내다본 핵심 이유는 미국 대선 결과와 한국의 수출 둔화다. 미국 대선에서 트럼프 전 대통령이 당선된 것은 물론 공화당이 상·하원 선거에서 다수당 지위를 차지한 ‘레드 스위프’가 발생해 불확실성이 커졌다는 것이다. 한은은 이날 경제전망에 미국이 주요 교역국에 보편 관세(10%)를 적용하고, 중국에는 60%의 고환율을 적용하는 시나리오를 상정했다. 또 전자통신(IT)을 중심으로 한 수출 회복이 약화하고, 주력업종 경쟁이 격화하는 등 한국 경제의 성장 흐름 자체도 애초 예상보다 약화한 것으로 분석했다.
세부적으로, 한은은 이날 지난 8월 전망치와 비교해 올해와 내년 민간소비 증가율을 1.4%→1.2%, 2.2%→2.0%로 각각 0.2%포인트 하향 조정했다. 같은 기간 재화수출 증가율은 6.9%→6.3%, 2.9%→1.5%로 각각 0.6%포인트, 1.4%포인트 낮췄다. 올해 설비투자 증가율은 0.2%→1.5%로 높아질 것으로 전망했지만, 내년에는 4.3%→3.0%로 1.3%포인트 하향 조정했다. 수출 둔화 등 주요 산업의 충격파가 설비투자 감소 등 내수 부진으로도 영향을 미칠 것이란 진단이다. 트럼프 정부 2.0 시대 진입으로 인한 통상 환경의 변화 등 외부 충격을 넘어, 수출·내수 등 한국 경제의 기반이 동시에 허물어질 수 있다는 뜻이다.
이창용 총재는 “2025년, 2026년 전망치를 명확하게 제시하긴 어렵지만 잠재성장률이 빠른 속도로 떨어지는 것이 사실”이라며 “구조 개혁을 통해 장기 성장률이 떨어지는 것을 막는 노력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이번 금리 인하가 향후 성장률에 미칠 영향에 대해 이 총재는 “0.25%포인트 금리를 낮출 경우 경제성장률을 0.07%포인트 올리는 것으로 추정한다”, “금리를 어느 속도로 내릴 거냐에 따라 그 영향도 달라질 것”이라며 향후 금리 인하 가능성을 열어놨다.
노지원 기자 zone@hani.co.kr, 조계완 기자 kyewan@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