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유가에 영향을 미치는 산유량을 논의하기 위한 주요 산유국의 정례 회의가 돌연 연기됐다. 산유국 측은 회의에 참석해야 할 여러 장관의 지역 내 다른 중요 회의 참석을 연기 이유로 내세웠다. 하지만 일부 외신은 산유국들 사이에서 생산 목표치를 둘러싼 불만이 계속 제기되고 있다며 중동 석유 카르텔의 균열 조짐을 연기 배경으로 꼽았다.
28일(현지시간) 로이터통신·파이낸셜타임스(FT) 등 주요 외신에 따르면 석유수출국기구(OPEC)는 이날 성명을 통해 12월1일 개최 예정이던 OPEC+(OPEC과 비OPEC 산유국 협의체)의 장관급 감시위원회(JMMC)와 제38차 장관급회의(ONOMM)가 나흘 뒤인 5일로 연기됐다고 밝혔다.
성명은 OPEC+ 회의의 기존 개최일이 쿠웨이트에서 열리는 제45차 걸프협력위원회(GCC) 회의 일정과 겹쳐 OPEC+ 회의를 연기하기로 했다고 설명했다. 걸프협력위원회는 걸프 아랍 국가의 국제경제협력체로 회원국은 사우디아라비아, 카타르, 쿠웨이트, 바레인, 오만, 아랍에미리트(UAE) 등 6개국이다. GCC 회원국 중 바레인을 제외한 5개국이 모두 OPEC+에 속해있다.
그러나 FT는 "OPEC의 회의 연기 발표는 사우디와 러시아 그리고 카자흐스탄 간 3자 에너지 장관 회담 후 하루 만에 나왔다"며 일부 산유국의 목표 산유량 초과 문제를 둘러싼 OPEC+ 내 신경전이 이번 회의 연기의 배경이 됐을 가능성을 시사했다. FT에 따르면 사우디와 러시아 장관은 지난 26일 또 다른 과잉 생산국인 이라크를 방문해 산유량 문제를 논의했다고 한다.
카자흐스탄은 그간 OPEC+가 합의한 목표치를 초과한 원유 생산으로 계속해서 다른 산유국의 불만을 산 것으로 알려졌다. 카자흐스탄의 10월 하루 산유량은 129만배럴로 집계됐다. 이는 9월보다 29만2000배럴 감소한 것이나 OPEC과 합의한 목표 생산치보다 9만배럴 많다.
OPEC의 전 직원이자 에너지 컨설팅업체 리스타드의 지정학 분석 책임자인 호르헤 레온은 "카자흐스탄의 석유 생산과 관련해 (OPEC+ 내) 긴장감이 감돌고 있다"며 "카자흐스탄은 OPEC+에 더 높은 기준선(산유국의 실제 생산량 감축을 측정하는 기본 생산 능력)을 요구하고 있다. 문제는 한 국가가 기준선 상향을 요구하고 다른 산유국 모두 이를 요구할 수 있다는 것"이라고 말했다. FT에 따르면 카자흐스탄은 새로운 유전 '텡기즈'(Tengiz) 개발 이후 석유 생산을 늘리려 하고 있다.
사우디 등 주요 산유국은 국가 경제와 직결되는 국제유가 안정화를 위해 각 산유국의 생산능력에 따라 산유량을 제한하며 과잉 공급 차단에 나섰다. 지난해 11월부터는 하루 220만배럴의 자발적 감산을 시행하기도 했다. 당초 올해 9월까지였던 자발적 감산은 유가 약세에 12월까지로 한 차례 연장됐다.
하지만 일부 산유국은 자발적 감산으로 인한 국가 수익 감소, 경제성장 둔화 등을 이유로 감산 중단과 허용 생산량 증가를 요구한다. 아프리카 2위 산유국인 앙골라는 지난해 12월 사우디 주도의 원유 감산 기조에 반발해 OPEC을 탈퇴하기도 했다. 산유국들의 감산 기조 반대에도 중국 경기둔화 등으로 인한 수요 둔화 및 유가 약세 등을 이유로 OPEC+는 내달 회의에서 자발적 감산을 한 차례 더 연장할 것이라고 외신은 전했다.
한편 국제유가는 산유국들의 자발적 감산과 중동 지정학 위기에도 배럴당 70~80달러의 낮은 수준에서 거래되고 있다. 국제 원유시장의 벤치마크인 브렌트유는 지난 9월 배럴당 69달러까지 떨어져 2년9개월 만에 배럴당 70달러가 무너지기도 했다.
머니투데이 정혜인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