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정부가 미국이 저가 반도체를 덤핑하고 자국 칩 제조업체에 불공정 보조금을 지급했다는 의혹에 대한 조사에 나선다. 반도체 산업을 둘러싼 미국과 중국의 갈등이 더욱 첨예해지는 모습이다.
/사진= 픽사베이
16일(현지시간) 블룸버그통신에 따르면 중국 상무부는 성명을 통해 미국이 인센티브와 보조금을 통해 자국 반도체 제조업체에 불공정 경쟁 우위를 주고 중국 시장에서 자국의 성숙 공정 반도체를 저가로 판매해서 중국 현지 업체에 불이익을 줬는지 판단하기 위해 조사에 착수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조사 대상인 성숙 공정 반도체는 범용 레거시 반도체로도 불린다. 자동차, 가전제품을 비롯한 여러 기기에 탑재돼서 전력 흐름 조절과 디지털 신호 변환 등의 기능을 한다. 상무부는 조사 대상을 특정하지 않았지만 텍사스인스트루먼트와 아날로그디바이스를 비롯해 전력 및 아날로그 칩과 같은 성숙 공정 반도체 선두주자인 미국 기업이 포함될 것으로 예상된다.
중국 상무부는 중국 현지 산업 관계자들이 관련 의혹을 제기해 이에 대응하기 위해 조사에 착수하는 것이라고 전했다. 중국 반도체 생산업체들은 미국 내 첨단 반도체 공급망 확보를 위해 자국에 투자하는 기업에 자금을 제공하는 반도체지원법에 대해 불만을 표출했다. 반도체지원법에 따라 삼성전자, TSMC 등이 반도체 생산시설을 구축하는 대가로 지원금을 받기로 했다.
중국 반도체산업협회는 성명을 통해 "미국 반도체지원법은 시장 경제의 기본 원칙을 위반하며 글로벌 반도체 공급망에 심각하고 중요한 영향을 미쳤다"고 지적했다.
중국 세관에 따르면 지난해 중국은 3856억달러의 가치를 지닌 약 5500억개의 반도체 직접회로(IC) 칩을 수입했다. 이중 대부분이 세탁기, 전기자동차 등 다양한 제품 구동에 사용되는 레거시 칩이었다.
중국 상무부는 이번 조사에서 반독점법이나 반덤핑 규정을 위반한 것으로 확인된 기업에 대해 어떤 조치를 취할지는 밝히지 않았다. 다만 관세 인상, 제품 금지와 벌금 등이 거론된다.
블룸버그는 이번 조치가 "미국의 기술 제재에 대한 중국의 가장 강력한 보복 중 하나가 될 수 있다"며 "중국 정부가 글로벌 무역 협정을 위반해 자국 기업을 공개적으로 지원한다는 미국의 오랜 불만을 그대로 되풀이하는 것"이라고 진단했다. 그동안 서방 국가들은 중국 기업들이 빠른 속도로 성숙 공정 반도체를 생산해 글로벌 시장에 저가 제품을 범람시킬 위험이 있다고 경고해왔다.
과거 퀄컴은 중국에서 반독점법 위반 혐의로 60억위안의 벌금을 부과 받았고 이후 중국에서 사업과 라이선스와 관련된 일부 관행을 변경했다. 마이크론은 2023년에 중국 정부로부터 사이버보안 조사를 받아서 중국에 본사를 둔 고객으로부터 발생하는 매출의 절반이 타격을 입을 수 있다고 경고한 바 있다.
엔비디아는 2020년 이스라엘 반도체기업 멜라녹스를 인수하는 과정에서 반독점법을 위반한 혐의로 지난해 말부터 중국 정부 조사를 받고 있다. 이에 대해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당선인의 2기 행정부가 실행할 것으로 예상되는 관세 정책에 대한 경고 차원에서라는 분석이 나온다.
중국의 이번 조치는 조 바이든 행정부가 퇴임을 앞두고 중국 반도체 산업에 대한 제재 수위를 높이는 가운데 나왔다. 지난주 미국은 인공지능(AI) 반도체의 중국 유입을 막기 위해 추가 수출 규제를 발표했고 전날은 중국 및 싱가포르 AI 업체를 블랙리스트에 추가했다. 또 지난달에는 중국산 성숙 공정 반도체에 대한 불공정 무역행위 조사에 착수했다.
최경미 기자(kmchoi@bloter.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