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한국시간으로 21일 오전 2시에 제47대 미국 대통령으로 취임했다. 배터리 기업들은 트럼프 당선인이 수차례 공언해온 '취임 첫날 전기차 의무화 폐지' 관련 행정명령의 구체적인 내용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중국과의 무역 전쟁이 불가피한 만큼 공급망 재편에 대한 우려는 커지고 있다. 미국 시장을 겨냥한 글로벌 배터리 기업들은 중국 공급망 단절 작업에 속도를 낼 전망이다.
20일 업계에 따르면 트럼프 대통령은 취임과 동시에 '미국을 다시 위대하게'라는 슬로건 아래 100건에 달하는 행정명령을 발표했다. 인플레이션감축법(IRA)의 전면 폐지는 의회에서 개정안을 통과시켜야 가능하지만, 일부는 행정명령으로도 수정 또는 폐지가 가능하다. 트럼프 대통령은 당선인 시절부터 전기차 보조금에 대한 부정적인 견해를 피력한 바 있다.
◇30D 조항 개정 유력= IRA의 대표적인 세부규정인 '30D(친환경차 세액공제)'와 '45X(첨단제조생산세액공제)'는 대통령 행정명령으로 폐지와 수정이 즉시 가능한 상황이다. 30D는 미국에서 전기차를 구매하는 일반 소비자에게 최대 7500달러의 세액공제 혜택을, 45X는 미국 내에서 전기차와 배터리를 생산·제조하는 사업자에게 세액공제 혜택을 주는 IRA의 핵심 조항이다.
국내 배터리 기업들은 30D 조항의 개정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30D는 기업보다 소비자에게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지만 미국 내 전기차 시장 위축으로 이어진다는 점에서 배터리 업계에도 부정적인 영향을 준다.
이미 전기차 시장이 '캐즘' 단계인데 세액공제 혜택의 대상 차종이 축소되면 소비자들의 구매 결정이 지연되거나 보조금 혜택이 유지되는 특정 브랜드로 수요가 쏠릴 가능성이 높다. 전기차 보급 확대 속도를 저해하고 결과적으로 전기차 제조업체와 배터리 공급망 전반에 걸쳐 연쇄적인 영향을 미치는 수순으로 예상된다.
다만 국내 배터리 기업들이 영업이익에 포함하고 있는 첨단제조생산세액공제(AMPC) 혜택을 주는 45X조항은 유지 가능성을 높게 보고 있는 상황이다. 45X는 현지 투자 기업에 대해 배터리 셀은 kwh 당 35달러, 모듈은 kwh 당 10달러를 환급해주는 제도다. 국내 기업들은 AMPC 덕분에 지난해 적자를 피할 수 있었다.
구자민 커빙턴앤벌링 조세전문 변호사는 "AMPC 혜택은 유지될 것이란 의견이 우세한 상황이지만 조항 변경으로 전기차 수요가 줄면 전기차와 배터리 기업이 타격을 입을 수 있다"며 "한국기업들에게 유리하게 규정이 적용되도록 각 기업들이 진출해 있는 미국 주의회 의원들을 적극적으로 설득해야 한다"고 말했다.
◇관세와 FEOC 강화 우려·美 보호무역 본격화= 배터리 기업들이 가장 우려하는 문제는 핵심원자재에 대한 고율 관세 부과다. 트럼프 당선인은 그간 모든 수입품에 10~20%의 보편 관세를 부과하고 중국에 대해서는 60%의 관세를 부과하겠다고 공언해 왔다.
배터리도 예외가 아니다. 핵심광물에 관세를 부과할 경우 국내 배터리 산업에 상당한 부담이 예상된다. 특히 배터리 핵심 원료인 흑연은 중국의 채굴·가공 비중이 압도적으로 높고, 대체 공급망 확보가 쉽지 않다. 국내는 90% 이상을 중국산 흑연에 의존하고 있어 관세 부과시 원자재 조달 비용 급등에 더해 AMPC 보조금까지 받을 수 없을 가능성이 높다.
여기에 트럼프 당선인은 미중 무역전쟁의 일환으로 중국기업들이 가장 반발하는 30D 조항 내 FEOC 규정을 강화해 대중국 견제 조치를 시행할 것으로 보인다. FEOC는 중국이나 러시아, 이란, 북한이 25% 이상의 지분을 소유해 통제하는 외국기업을 의미한다.
한 배터리업계 관계자는 "AMPC라는 배터리 보조금이 수정될 가능성이 낮은 점과 FEOC로 미국 시장에 중국이 진출하기 어렵다는 점에서 긍정적인 측면이 분명 있지만 흑연이 정말 문제"라며 "흑연 음극재에 대해 2년 전에 FEOC 적용이 2026년 말로 유예 기간을 받아냈지만 핵심광물에 고관세나 FEOC를 강화하면 국내 업체들의 부담은 더욱 커질 것"이라고 말했다.
국내·외 배터리 기업들은 미국에서 생산되는 전기차 배터리에 대해 중국 공급망 의존도를 빠르게 줄여 나갈 것으로 전망된다. 트럼프 1기 당시 미·중 무역전쟁의 홍역을 치렀던 만큼 보호무역 기조 강화 가능성을 고려할 때 장기적인 공급망 리스크를 줄이기 위한 조치로 풀이된다.
테슬라의 공급업체인 일본 파나소닉에너지의 앨런 스완 북미법인 사장은 "트럼프의 계획과 관련하여 기업이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은 중국 공급망에 전적으로 의존하지 않는 것"이라며 "미국에서 생산되는 배터리는 중국 공급망 의존도를 완전히 끊을 계획이자 최우선 목표"라고 말했다.
미국 대통령 당선인 도널드 트럼프가 지난 19일(현지시간) 워싱턴 D.C. 내셔널 빌딩 뮤지엄에서 열린 촛불 만찬에서 멜라니아 트럼프와 함께 발언하고 있다. 연합뉴스.
박한나 기자(park27@dt.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