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신청 10건중 8건 中대상… 철강-화학 이어 산업용 로봇까지
기술 격차 줄고 가격 경쟁력 밀려… “고부가 제품으로 차별화 노려야”
“중국산이 국산 가격의 60% 수준이어서 경쟁 자체를 할 수 없습니다.”
지난해 국내 한 완성차 업체가 추진한 자동차 조립용 로봇기계 도입 입찰에 HD현대로보틱스 등 국내 업체와 중국 업체가 맞붙었다. 국산 산업용 로봇기계 성능은 중국산을 앞선 것으로 평가받았지만 가격에 밀려 입찰을 따는 데 실패했다.
국내 산업용 로봇기계 업체들은 저가로 밀려 들어오는 중국산 제품을 당해낼 재간이 없다고 토로한다. HD현대로보틱스 관계자는 “지난해부터 중국산에 밀려 입찰에서 줄줄이 쓴맛을 봤다”며 “중국이 손해를 감수하면서 저가로 물건을 팔고 있어 경쟁에서 밀릴 수밖에 없는 구조”라고 했다.
● 국내 기업 반덤핑 조사 신청 22년 만에 최다
20일 정부와 산업계에 따르면 중국의 ‘재고 떨이’와 ‘밀어내기 수출’ 등으로 국내 기업들이 몸살을 앓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중국산 저가 제품이 대량으로 국내에 쏟아져 들어오면서 국산 제품이 시장에서 도태되고 있다는 것. 기업들은 중국산 제품에 대한 반덤핑 조사를 정부에 요청하는 식으로 대응에 나서고 있지만 중국의 내수 침체와 공급 과잉이 맞물리며 중국산 밀어내기 공세는 당분간 이어질 것으로 전망된다.
산업통상자원부 무역위원회의 무역구제 통계에 따르면 지난해 한국 기업의 반덤핑 조사 신청 건수는 10건으로 2002년(11건) 이후 22년 만에 최다인 것으로 집계됐다. 이 가운데 예비조사 등을 거쳐 실제 조사에 착수한 사례는 8건으로 전년(2건)의 4배 수준이다. 지식재산권(IP) 침해 등 불공정 무역행위까지 더한 지난해 무역구제 신청 건수는 총 25건으로 1987년 관련 조사가 집계된 이래 가장 많았다.
현재 무역위가 조사 중인 반덤핑 의심 사례 8건 가운데 6건이 중국산 제품이다. 지난해 포스코, 코오롱인더스트리, 현대제철, 한솔케미칼 등이 중국산 저가 철강·화학 제품이 국내 기업에 피해를 주고 있다며 반덤핑 조사를 신청했다. 국내 기업들은 무역구제 통계 집계를 시작한 1987년부터 지난해까지 중국을 상대로 108건의 반덤핑 조사를 신청했다. 같은 기간 일본(58건), 유럽연합(34건), 미국(30건) 등을 대상으로 한 신청 건수보다 월등히 많다.
● “고부가가치 중심의 차별화 전략 추구해야”
이런 밀어내기 식 수출은 중국이 처한 대내외적 환경 탓에 당분간 지속될 것이란 전망이 지배적이다. 중국에선 내수 침체가 장기화되면서 생산자물가 하락 추세가 이어지고 있다. 지난해 12월 중국의 생산자물가지수는 전년 대비 2.3% 떨어지면서 27개월 연속 하락했다. 그만큼 중국 기업의 생산 비용이 감소하면서 수출 단가 역시 하락하고 있는 셈이다. 여기에 강달러 기조와 그에 따른 위안화 약세가 수출 단가 하락을 부추길 것이란 관측이 나온다.
도널드 트럼프 2기 행정부가 출범하면 중국이 관세 장벽을 피해 한국으로 더 많은 수출품을 보낼 것이란 분석도 나온다. 최근 국내 시장에는 중국의 전자기업 샤오미와 전기차 제조업체 비야디(BYD) 등이 잇따라 상륙하기도 했다.
도원빈 한국무역협회 수석연구원은 “한국은 중국보다 기술 우위를 점하고 있는 고대역폭메모리(HBM) 반도체, 액화천연가스(LNG) 선박 같은 고부가가치 제품 생산을 확대해야 한다”며 “미국, 유럽 등 주요국의 대중국 관세 장벽으로 생기는 중국산 제품의 빈자리를 한국 기업이 노리는 방안도 고려해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김형민 기자 kalssam35@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