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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의 말은 다 옳을까? 한국 기업들 웃고 울리는 젠슨 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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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지경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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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월 6일 미국 라스베이거스에서 열린 CES에서 기조연설을 하는 젠슨 황 엔비디아 CEO. photo 연합



그가 입을 열면 세계가 주목한다. 그가 맞다면 맞는 것이고 아니라면 아닌 것이 된다. 전 세계 언론은 웬만한 국가원수의 발언보다 그의 말을 더 비중 있게 보도한다. 그는 첨단 IT 기술로 무장하고 거기에 돈을 쌓았다. 스스로는 부인하겠지만 막강한 권력까지 갖고 있다. 말 한마디로 시장을 좌지우지하고, 주가를 뒤흔들며, 여러 기업들을 롤러코스트 태운다. 하지만 말이 많으면 해석도 다양해지는 법이다. 올해 62세가 된 경영자의 단순한 실언인지, 타고난 대인관계 매너에서 나오는 립서비스인지, 아니면 천재 비즈니스맨답게 고도로 의도되고 계산된 발언인지 모두 헷갈려 한다. 바로 요즘 가장 잘나가는 엔비디아(NVIDIA)의 CEO 젠슨 황이다.


올해 1월 7일부터 10일까지 미국 라스베이거스에서 열렸던 CES(국제전자제품박람회)의 키워드는 AI(인공지능)였고 주인공은 젠슨 황이었다. 몇 년 전만 해도 그저 새로운 백색가전이나 PC를 소개하던 CES가 지금은 첨단 IT 트렌드를 대표하는 행사로 업그레이드됐다. 젠슨 황은 엔비디아가 로봇이나 자율주행을 비롯한 AI의 모든 영역에서 주도권을 쥐고 있음을 과시했다.


지난 1월 6일 CES 2025에서 삼성전자 DX 부문장을 맡고 있는 한종희 부회장이 연설을 하고 있다. photo 뉴시스



"CES 10년 내 가장 중요했던 그의 발표"


그는 지난 1월 6일 기조강연(Keynote speech)에서 "이제 우리는 처리와 추론, 계획과 행동이 가능한 물리적 AI의 시대로 들어서고 있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로봇과 자율주행 등의 개발을 가속화하는 플랫폼인 '코스모스'를 비롯, 개인용 초소형 AI 슈퍼컴퓨터 '프로젝트 디지츠', 차세대 GPU(그래픽처리장치)인 '지포스 RTX 50' 시리즈도 소개했다. 젠슨 황은 "블랙웰 아키텍처를 기반으로 한 새로운 그래픽 카드인 '지포스 RTX 50'은 그야말로 괴물 같다. 920억개의 트랜지스터를 갖추고, 초당 3352조번의 AI 연산(TOPS) 처리능력, 4페타플롭(초당 4000조번의 부동소수점 연산)을 자랑한다. 전작(前作)인 에이다보다 3배 향상되었다. AI 로봇의 첫 이용 사례는 아마 제조업이 될 것이다. 기업들이 잃어버린 매출을 회복하고 생산성을 높여 세계적으로 인플레이션을 줄일 수 있다"고 말했다.


그의 기조연설에 대해 손재권 더밀크 대표는 "10년 내 가장 중요했던 발표"라고 평가했고, 정지훈 A2G캐피탈 파트너는 "엔비디아는 더이상 하드웨어 회사가 아니라 플랫폼 회사"라고 말했다. 대부분 청중들이 모두 "기존에 상상했던 것이 현실로 이뤄지는 시대가 열렸다"고 평가했다.


하지만 그는 한국 반도체 업체에 찬물을 끼얹는 발언을 했다. RTX 50에 미국 마이크론의 그래픽 D램 메모리(GDDR7)가 탑재된다고 언급했다. 꼭 찍어서 마이크론만을 언급하는 바람에, 세계 최초로 GDDR7을 개발하고 시장점유율이 높은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는 순간적으로 흔들렸다. 단순한 실수였을까. 아니면 의도적으로 그랬을까. 미국 기업을 응원하는 트럼프 2기 행정부의 출범을 의식한 정치적 발언이었을까.


한국 반도체에 찬물, 실수일까 의도일까?


젠슨 황은 지난 1월 7일 100여명의 기자들과 'Q&A 세션'을 통해 또 한국인들을 놀라게 했다. 그는 홀로 서서 모든 질문에 거침없이 대답했다. 기자들이 "어제 기조연설에서 RTX 50시리즈에 마이크론의 메모리를 탑재했다고 말했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는 채택하지 않았는가"라고 묻자, 젠슨 황은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는 그래픽 메모리를 만들지 않는 것으로 안다. 아닌가. 만드나. 왜 언급을 안 했는지 나도 잘 모르겠다. 알다시피 SK하이닉스와 삼성전자는 우리에게 가장 큰 공급업체 중 두 곳이다"라고 대답했다.


기자들은 이어 "삼성전자의 HBM 납품 테스트는 잘되고 있는가"라는 예민한 질문을 던졌다. 이에 대해 젠슨 황은 "하고 있다. 삼성전자는 성공할 거다. 그건 수요일이 오는 것처럼 분명하다. 삼성전자가 엔비디아에 HBM을 납품하게 되리라는 사실에 큰 확신을 갖고 있다. 엔비디아가 사용한 최초의 HBM 메모리는 삼성전자 것이었다. 삼성전자는 회복할 거다. 위대한 회사다"라고 치켜세웠다. 작년 한 해 삼성전자는 엔비디아에 HBM을 납품하지 못해 속이 시커멓게 타 들어갔었는데, 그런 우려를 단번에 씻어 주는 듯한 낭보였다. 하지만 그의 답변은 끝나지 않았다. 기자들이 다시 "그렇다면 왜 그렇게 오래 걸리나"라고 묻자, 그는 "그리 오래 걸리는 거 아니다. 한국 사람들이 좀 조급하다. 사실 그건 좋은 거다. 삼성전자는 새로운 디자인을 설계해야 한다. 그들은 매우 빠르게 일하고 있다. 매우 헌신적이다. 나는 그들이 해낼 것이라고 확신한다"라고 다시 대답했다.


젠슨 황은 삼성전자가 곧 HBM을 납품할 듯이 칭찬을 늘어놓아 한껏 기대감을 부풀게 했으나 말미에는 "삼성전자는 디자인을 새로 해야 한다"라는 말로 '현타(현실 자각 타임)'가 오게 만들었다. 발열 문제 등 하자가 심하니 제품 설계를 다시 해야 한다는 의미로 들렸다. 이 때문에 국내 증시는 요동을 쳤다. 국내 언론보도도 양극화되었다. '삼성전자 HBM 곧 납품'이라는 희망 섞인 기사가 나는 반면, '삼성전자의 겨울이 길어진다. 설계를 다시 해야'라는 부정적인 내용이 동시에 헤드라인을 장식했다.


때마침 삼성전자의 지난해 4분기 매출이 75조원, 영업이익이 6조5000억원이란 보도가 나왔는데, 영업이익은 시장의 예상보다 1조원 이상 적었다. 그래서 젠슨 황의 언급은 더욱 주목을 받았다. 사실 젠슨 황은 지난해 3월에도 엔비디아 주최 'GTC 2024' 현장에서 삼성전자 부스를 찾아 HBM3E 12단 제품에 '젠슨 승인(Jensen Approved)'이라는 사인을 해서 "삼성전자가 곧 HBM을 납품하는 모양"이라는 기사가 나왔으나, 이후 감감무소식이었다.


최태원 SK그룹 회장(오른쪽 둘째)이 지난 1월 8일 CES 2025가 열리고 있는 라스베이거스 컨벤션센터 센트럴홀 삼성전자 전시관을 방문해 한종희 삼성전자 부회장(왼쪽)의 설명을 듣고 있다. photo 연합뉴스



SK하이닉스에 대한 견제 의도?


그런데 10개월이 지난 지금에 와서 설계를 다시 해야 한다는 언급을 했으니, 시장은 헷갈리고 있다. 음모론적 시각에서 보자면, 엔비디아는 HBM 분야를 거의 전적으로 의존하고 있는 SK하이닉스에 대한 의존도를 낮추고 공급선을 다변화하거나, 아니면 SK하이닉스를 향해 '삼성전자에서도 받을 수 있다'는 메시지를 계속 던짐으로써 유리하게 가격 결정을 하겠다는 의도로 비쳤다. 실제 지난해 3분기만 보아도 SK하이닉스가 엔비디아에 공급하는 제품의 액수는 6조958억7500만원인 것으로 추정된다. 2분기보다 2배 가까이 뛰었다. 시간이 흐를수록 그 액수는 더 커질 가능성이 높다. 엔비디아와 SK하이닉스가 서로 의존도가 높아지는 것은 엔비디아 입장에서 반드시 바람직한 일은 아니다. HBM 가격 결정에 대한 주도권을 갈수록 잃게 되고, 제품 공급의 안정성도 위험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어느 정도 견제가 필요하다고 판단할 수 있다. 이런 분석이 맞다면, 젠슨 황의 눈치에 부합하지 못하는 삼성전자의 '나빠진' 기술력이 그저 아쉬운 상황이다. 김동원 KB증권 리서치본부장은 "HBM을 포함한 AI 반도체 제조사에 대한 지배력 강화를 위한 엔비디아의 전략적인 코멘트로 보인다"고 말했다.


뿐만 아니다. 젠슨 황은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도 그래픽 메모리를 만드는가"라는 자신의 발언이 큰 파장을 일으키자, 1월 8일에는 "엔비디아의 RTX 50에 마이크론뿐만 아니라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의 그래픽 D램도 탑재된다"라고 정정하기도 했다. 문제는 젠슨 황의 발언이 나이가 든 경영자의 실수인지, 아니면 고도로 계산된 언급인가 하는 점이다. 처음 RTX 50에 미국 마이크론 그래픽 메모리가 들어간다고 딱 짚어 언급한 것은 아무래도 1월 20일 출범하는 트럼프 2기 행정부를 의식한 행동으로 해석되기도 했다. 이에 대해 젠슨 황과 만났던 최태원 SK그룹 회장은 "황 CEO가 전체를 총괄하다 보니 세부적인 내용에서는 모를 수 있을 것"이라고 해석하기도 했다.


젠슨 황은 지난 1월 7일 월가와 가진 간담회에서 시장을 뒤흔드는 또 다른 발언을 했다. "매우 유용한(useful) 양자컴퓨터가 나오는데 15년이 걸린다고 하면 매우 이른 편이다. 많은 사람이 20년은 걸린다고 하면 믿을 것"이라는 말을 했다. 과학기술계는 양자컴퓨터의 상용화를 5~10년 정도로 전망해 왔는데, 젠슨 황의 발언은 이보다 훨씬 보수적이었다. 얼핏 듣기에는 뭐 개인 의견이니 그럴 수도 있겠다 싶었는데, 말하는 사람의 비중 때문인지 시장은 민감하게 받아들였다. 양자컴퓨터 기업인 아이온큐(IONQ)나 리게티컴퓨팅 등의 주가는 하루 만에 30% 이상 폭락했다. 시장에서는 양자컴퓨터가 일찍 상용화된다면 엔비디아의 주력품인 GPU의 시장지배력이 위협받기 때문에 젠슨 황이 그런 발언을 했다는 분석도 나왔다.


전문가들도 물음표 단 양자컴퓨터 발언


젠슨 황의 발언에 대해 전문가들도 물음표를 달았다. 김재완 고등과학원 교수는 "황 CEO가 만약 암호를 무력화할 정도의 양자컴퓨터를 말한 것이라면 현재 발전 단계에서도 분자 구조 분석, 신약 개발 등에서 충분히 산업적으로 활용 가능한 기술들이 있다"고 설명했다. 해외 전문가들도 젠슨 황의 발언을 반박하고 있다. 앨런 바라츠 디웨이브 퀀텀 CEO는 "마스터카드, 일본 NTT도코모 같은 기업들이 이미 양자컴퓨터를 사용하고 있으므로, 양자컴퓨터의 상용화 시점은 바로 지금"이라고 말했다. 그런데 젠슨 황에 이어, 1월 10일 공개된 한 팟캐스트에서 저커버그 메타 CEO 역시 양자컴퓨터의 상용화에 대해 회의적인 언급을 하면서 젠슨 황의 발언에 힘을 실어주었다.


그럼 도대체 젠슨 황은 어떤 사람인가. 1963년 2월 17일 태어난 젠슨 황은 영어로는 'Jensen Huang', 한자로는 '黃仁勳(황인훈)'이라고 표기하며, 현지 발음으로는 '황런쉰'으로 불린다. 그는 대만계 미국인으로 대만 타이난(台南)시에서 출생했으며 9살 때 가족과 미국 켄터키로 이민을 갔다가 오리건에 정착했다. 그래서 중국어를 약간은 구사할 수 있고, 지금도 중국 방송에 출연하면 영어와 중국어를 번갈아 구사하는 모습을 볼 수 있다. 젠슨 황은 미국 오리건에서 알로하고등학교를 졸업하고 1984년에 오리건주립대학교에서 전기공학 학사, 1992년에 스탠퍼드대학원에서 전기공학 석사를 취득했다. 햄버거 가게인 데니스에서 아르바이트했던 경험도 있다. 대학을 졸업하고 LSI로직과 AMD에서 마이크로프로세서 설계를 담당했고 1993년 30회 생일에 엔비디아를 공동 설립했다. 2020년대 이후로 AI 광풍이 불면서 핵심 칩을 만드는 엔비디아는 전 세계 스타 기업이 되었다. 모교인 스탠퍼드대학교에 3000만달러를 기부, '젠슨 황 공학센터(Jen-Hsun Huang School of Engineering Center)'를 건설했다. 2024년 6월에는 전 세계 시가총액 1위를 달성하였다. 엄청난 마진을 붙여도 물건이 없어서 구하기 어려운 게 엔비디아 제품이다. 당연히 엔비디아를 만든 젠슨 황은 전 세계에서 가장 주목받는 CEO로 등극했다. 2024년 12월 블룸버그 기준으로 젠슨 황은 세계 11위의 대부호다. 왼팔 어깨 세모근 위에 검은색으로 엔비디아 로고 문신을 했다. 대외 공개 행사 때 꼭 한 번은 입고 나오는 특유의 검은색 가죽 재킷 복장이 유명하다.


회사 비전에 대해 3시간 발언 가능한 CEO


엔비디아가 AI 열풍의 선두주자로 확실한 입지를 구축하면서, 젠슨 황의 말 한마디가 시장에 엄청난 영향력을 끼치고 있다. 그는 공식 석상에서 매번 임팩트 있는 말을 쏟아낸다. 회사의 실수는 선선히 인정하지만, 가짜뉴스에 대해서는 단호하게 부인한다. 회사의 비전에 대해 3시간 연속 설명할 수 있는 몇 안 되는 CEO이기도 하다.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나 제롬 파월 미국 연방준비제도이사회(Feb) 의장 정도에 맞먹는 말 영향력을 지니고 있다고 볼 수 있다.


그는 기자들에게 엔비디아가 관심을 갖고 있는 로봇이나 자율주행에 대해 자주 언급하고 있다. 그는 특히 자율주행차에 대해 "기존 자동차 회사의 생각을 완전히 바꾼 회사가 두 군데 있다. 하나는 물론 테슬라다. 하지만 아마도 가장 큰 영향력은 중국에서 나오는 놀라운 자동차 기술, 즉 니오, 비야디(BYD), 샤오미 같은 회사의 놀라운 기술일 것이다"라고 언급했다. 대만 출신인 그가 특별히 중국 차를 강조한 것이 인상적이었다. 과연 그는 무슨 생각을 하고 있을까.


AI 시대에 교육도 근본적으로 달라져야 한다고 그는 말한다. 젠슨 황은 "우리 세대는 컴퓨터 사용법을 배워야 하는 첫 세대였다. 다음 세대는 AI를 사용하여 업무를 수행하는 방법을 배운다. 농업을 도우려면, 양자물리학을 하려면, 기자가 되고 싶다면, 더 나은 작가가 되려면 AI를 어떻게 활용해야 할까. 미래의 모든 학생은 AI 사용법을 배워야 한다"고 강조했다. AI의 선구자이자 전도사로 자리매김하고 있는 발언들이었다.


직원들에겐 늘 "우린 망하기 30일 전"


앞으로도 젠슨 황이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에 대해 어떻게 말하는지가 뉴스의 초점이 될 것이다. 그의 성장 배경이나 비즈니스 경력으로 볼 때 앞으로도 실언인지, 립서비스인지, 전략인지 헷갈리는 말을 계속 할 것으로 보인다. 문제는 젠슨 황의 말에 있는 것이 아니라, 한국 기업 스스로 젠슨 황이 인정하지 않을 수 없도록 상황을 만드는 일이 중요하다. 젠슨 황은 직원들에게 늘 "우리는 망하기 30일 전이다"라고 외친다. 이건희 삼성그룹 회장의 "잘나갈 때가 위기이며, 10년 뒤를 생각하면 등에 식은 땀이 난다"는 언급을 연상시킨다.


그런 와중에 최태원 SK그룹 회장은 젠슨 황과 만난 뒤 인상적인 언급을 했다. 최 회장은 "그동안 SK하이닉스의 HBM 개발 속도가 엔비디아의 요구보다 조금 늦었으나, 최근에는 SK하이닉스의 개발 속도가 엔비디아의 요구보다 빠른 역전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고 자신감을 표현했다. 아마 근래 나온 한국 기업인의 발언 중에서 가장 자신감 넘치는 내용이었다. 삼성전자 경영진의 입에서도 그런 말을 들을 수 있으면 좋겠다.


최홍섭 객원기자 idfchoi@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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