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실화 한 '관세전쟁'과 '딥시크 충격' 여진에 외환시장 위기감이 다시 고조된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전세계를 상대로 관세 고삐를 조이고 딥시크 충격으로 국내증시에서 외국인 이탈이 가속화하면 원/달러 환율이 다시 1400원 후반대로 상승할 수 있단 관측이 제기된다. 계속되는 정치적 불확실성도 원화 약세를 부추기는 요인이다.
2일 금융권에 따르면 지난달 31일 서울 외환시장에서 원/달러 환율 종가(오후 3시30분 기준)는 전 거래일보다 21.4원 급등한 1452.7원을 기록했다. 주간거래 종가 기준 지난달 17일(1458.3원) 이후 가장 높은 수준이다.
원/달러 환율은 지난달 21일 이후 4거래일 연속 1430원대에 머무르며 다소 안정되는 흐름을 보였지만 설 연휴가 끝나자마자 다시 급등세로 돌아섰다.
당분간 환율 고공행진은 계속될 것으로 보인다. 트럼프 대통령이 1일(현지시간) 캐나다와 멕시코에 25% 관세를 부과하고 중국에 10%의 추가 관세를 매기는 내용의 행정명령에 서명하면서다. 트럼프 대통령은 나아가 유럽연합(EU)에 대한 보편관세 부과도 예고하고 반도체, 철강 등 부문별 추가 관세 방침도 밝히는 등 본격적으로 '글로벌 관세전쟁'에 나선 모습이다.
미국이 경쟁국은 물론 동맹국에도 예외 없는 무차별적 관세를 부과할 가능성이 높아지면서 시장에선 이른바 '트럼프 트레이드' 재개 우려가 높아진다. 위험회피 심리가 약화하며 대표적 안전자산인 달러화 강세가 확대될 것이란 우려다.
실제 주요 6개국 통화 대비 달러화 가치를 나타내는 달러인덱스는 지난달 27일 장중 106대까지 하락했지만 이후 트럼프 대통령이 당초 예고한 대로 캐나다·멕시코·중국에 2월부터 관세를 부과하겠다는 입장을 연일 재확인하자 반등했다. 주말 사이 로이터통신이 미국이 관세 부과를 3월로 미룰 것이란 보도가 나온 직후 107.6선까지 급락했다가 백악관이 이를 부인하자 다시 108.4선까지 치솟는 등 관세 정책에 민감한 모습을 보였다.
중국이 선보인 생성형 인공지능(AI) '딥시크' 여진도 환율에 부담이다. 딥시크가 고성능 AI 반도체 없이 싼 값에 '챗GPT'에 버금가는 모델을 내놓으면서 주요 빅테크 기업의 AI 과잉투자 우려가 부각, 미국 증시에 이어 한국 증시도 하락세를 면치 못했기 때문이다. 실제 지난달 31일 유가증권시장에서 외국인 투자자들은 약 1조2000억원 어치 국내 주식을 순매도하며 매물을 쏟아냈다.
이번주에도 딥시크에 대한 긍정적인 평가들이 나온다면 '외국인 투자자들의 국내 증시 이탈→원/달러 환율 상승'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높다.
아울러 국내 정국 불안도 여전히 원/달러 환율 상방 압력을 가하고 있다. 장민 한국금융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이 발표한 '최근 원/달러 환율 동향과 정책점 시사점' 보고서에 따르면 지난해 12월 비상계엄 이후 지난달 20일까지 원/달러 환율은 3.5% 상승했다.
장 선임연구위원은 "2017년 (탄핵 정국)과 달리 정치적 불확실성이 확대·지속될 경우에는 해외신인도 저하, 경제심리의 위축, 금융시장의 변동성 확대 등을 통해 실물경제에 대한 부정적 영향이 확대되고 우리 경제의 취약성 노출, 경제기반의 훼손으로 연결될 수 있다"며 "이 경우 정치적 불확실성과 경기 부진이 상승 작용을 일으키면서 원/달러 환율이 빠르게 상승하고 변동성도 높아질 우려가 있다"고 밝혔다.
한편 최근 기준금리 인상(0.25%→0.5%)에도 일본 엔화는 뚜렷한 강세를 나타내지 못하고 있다. 일본은행(BOJ)이 추가 금리 인상 가능성을 시사하고 있지만 트럼프 대통령의 관세 정책이 엔/달러 환율 하락을 제한하는 분위기다.
실제 일본은행의 금리 인상 직후 엔/달러 환율 156엔대에서 154엔대로 낮아졌지만 이후 트럼프 대통령의 관세 발언이 이어지자 다시 달러당 155엔대로 오른 상태다.
머니투데이 박광범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