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세 전쟁'에 성장률 전망 기존보다 0.4%p 낮춰
경기 부양 위해 한은, 기준금리 3.00%→2.75%로
추가 금리는 속도 조절할 듯…美 금리 격차 고려
이창용 한국은행 총재가 25일 오전 서울 중구 한국은행에서 열린 금융통화위원회에서 의사봉을 두드리고 있다. 왕태석 선임기자
도널드 트럼프 미국 행정부의 거센 '관세 압박'이 우리 경제 성장을 가로막으면서 결국 기준금리 인하로 연결됐다. 25일 한국은행 금융통화위원회(금통위)는 통화정책방향회의를 열고 기준금리를 연 3.00%에서 2.75%로 0.25%포인트 인하하기로 만장일치로 결정했다. 예상보다 강한 미 관세정책에 올해 우리 국내총생산(GDP) 성장률 전망을 1.9%(11월)에서 1.5%로 0.4%포인트 하향 조정한 데 따른 판단이다. 금리를 인하해 시중에 돈이 풀리면 기업 투자 및 소비 증가 효과로 성장률 하락 폭을 방어하겠다는 취지다.
예상보다 강했던 美 관세정책에 어두운 경제 전망
성장률 하락세가 심상치 않다는 건 이미 예견됐다. 12·3 불법 비상계엄 사태 이후 국내 소비 심리가 급격히 얼어붙으면서 한은은 이례적으로 1월에 수정 성장률 전망치를 내놓았다. 당시 1.6~1.7% 성장할 것으로 예상했는데, 불과 한 달 사이 더 낮춘 것이다.
'트럼프 관세 전쟁'이 결정타였다. 이창용 한은 총재는 이날 "미 신정부의 새 관세 정책이 중국을 대상으로는 2분기 이후, 다른 국가에 대해서는 내년쯤 시행될 것으로 가정했었다"며 "그런데 예상보다 관세 부과 시기가 앞당겨지고 관세율도 높아질 가능성이 커졌다"고 말했다. 이로 인한 불확실성이 우리 경제에 하방 압력으로 작용하고 있다는 것이다.
한은은 분기별로 1분기 0.2%(전분기 대비)로 시작해 2분기 0.8%, 3분기 0.7%, 4분기 0.5% 성장할 것으로 예측했다. 불법 계엄 등으로 전망치(0.5%)를 크게 밑돌았던 지난해 4분기(0.1%)의 여파가 1분기까지 이어지고, 2·3분기에는 기술적 반등 수준에 그친다는 것이 한은의 분석이다. 결국 우리 경제는 지난해 2분기 역성장(-0.2%) 이후 거의 성장하지 못한다는 전망으로, 이는 금리 인하가 만장일치로 결정된 배경이라는 설명이다.
그래픽=송정근 기자
"지난 10년 새 산업 못 키운 정부…1%대 성장 韓 실력"
금리 인하 결정에는 현재 환율 변동성이 크지 않고 물가는 관리 가능한 수준이라는 진단도 한몫했다. 한은은 올해 소비자물가는 지난해 11월 전망과 같은 1.9% 상승할 것으로 봤다. 여전히 1,400원대를 넘는 원·달러 환율도 최근 변동폭이 크지 않다고 판단했다. 이지호 한은 조사국장은 "물가에 환율은 상방 요인, 내수 둔화(낮은 수요압력)가 하방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다"면서 "올해 1.5% 성장을 하더라도 물가를 크게 자극하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다만 우려스러운 부분은 저성장 기조가 장기화할 수 있다는 점이다. 한은은 올해 1.5% 성장률을 전망하면서 내년에는 1.8% 성장할 것으로 예상했다. 2년 연속 1%대의 저성장이라는 것인데, 이 총재는 "내년 성장률 전망이 우리 실력"이라고 말했다. 경제 펀더멘털(기초체력) 자체가 약화됐다는 뜻이다. 이 총재는 "지난 10년간 정부가 뼈아프게 느껴야 하는 건 새 산업을 도입하지 못한 것"이라며 "(산업 구조조정을 위해) 창조적 파괴가 필요하고 그 과정에서 누군가는 고통을 느껴야 하는데 사회적 갈등을 감내하기 어려워 피한 결과"라고 꼬집었다.
그래픽=송정근 기자
연내 1, 2회 추가 금리 인하 예상...시기는 불투명
경기 하방 압력만 고려하면 상반기(4, 5월) 추가 금리 인하도 거론되지만 현실은 복잡하다. '연내 1, 2회 추가 인하'라는 시장의 예상에 대해 이 총재는 "한은의 가정과 크게 다르지 않다"고 답하면서도 시기는 불투명하다고 덧붙였다. 이날 금통위 위원 6명 중 4명이 "3개월 내 현 2.75% 금리를 유지할 가능성이 크다"고 답했고, "인하 가능성을 열어놓아야 한다"는 의견은 소수(2명)였다.
미국과의 금리 격차가 변수다. 이번 인하로 1.5%포인트에서 1.75%포인트로 금리차는 벌어졌는데, 미국 연방준비제도이사회(연준·Fed)는 여러 차례 속도 조절을 시사한 상황에서 이 격차가 확대되는 건 우리 경제에 부담이 크다. 원·달러 환율 상승과 이로 인한 물가 상승까지도 고려해야 하기 때문이다.
한 차례 인하로 운신의 폭이 좁아진 상황에 이 총재는 경기 부양을 위해 재정정책과 공조, 정치적 불확실성 해소 등을 거듭 강조했다. 15조~20조 원 규모의 추가경정예산(추경)이 2분기 내에 편성된다면 현 전망치(1.5%)보다 0.2%포인트 성장률이 더 높아질 여지가 있다고 한은은 분석했다. 다만 이 총재는 재정 건전성 등을 이유로 "20조 원 이상 규모로는 안 했으면 좋겠다"며 야당이 내놓은 35조 원 규모의 '슈퍼 추경안'에 대해 사실상 반대했다.
지난달 금융중개지원대출 규모를 확대한 한은은 이날 해당 대출 금리를 연 1.50%에서 연 1.25%로 인하하기로 했다. 금융중개지원대출은 한은이 금융기관에 대출해주는 자금으로 금융기관은 이 자금을 다시 중소기업과 자영업자 등에 빌려주는데, 규모 확대와 금리 인하는 대표적인 취약계층 지원책이다. 금융권에서는 정부와 국회를 향해 취약계층 지원을 위한 추경을 편성하라는 한은의 암묵적 압박이라는 해석이 나온다.
진달래 기자 (aza@hankookilbo.com)
강유빈 기자 (yubin@hankookilb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