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병호 고려대 AI연구소 교수
“추론형 AI 알고리즘 베일 벗어
예상보다 적은 비용도 희망적
자체 기술로 독자 AI 개발 시급
늦어지면 美·中 의존성 굳어져
인재 육성 등 정부도 뒷받침을”
“‘딥시크 쇼크’가 한국 인공지능(AI) 산업에 기회이지만 남은 시간은 1년 남짓입니다.”
25일 서울시 성북구 교내 연구실에서 만난 최병호(사진) 고려대 AI연구소 교수는 중국의 저비용·고효율 생성형 AI 딥시크를 두고 벌어지는 ‘갑론을박’에 대해 한마디로 이렇게 정리했다.
최 교수는 딥시크 R1 모델이 오픈소스(소스가 공개돼 수정·재배포가 가능한 프로그램)인 것이 비(非)미국 국가, 그중에서도 AI 기술력을 일정 수준 갖춘 한국에는 절호의 기회라는 입장이다. 미국의 오픈AI가 그동안 공개하지 않아 추측만 하던 추론형 AI의 알고리즘을 확인했고, 이를 필요에 맞게 수정·발전시킬 수 있는 길이 열렸기 때문이다.
추론형 AI란 논리적 결론을 도출하는 AI다. 가령 기존의 지도학습형 AI의 경우 모든 기보를 입력시켜 놓고 이에 따라 바둑을 둔다면, 추론형 AI는 마치 인간처럼 사고해 기보에 없는 수를 생각해내는 식이다.
이와 더불어 그동안 천문학적 비용이 들 것으로 예상하던 추론형 AI 제작에 비교적 돈이 적게 드는 길이 있다는 사실을 확인한 것도 우리에게 희망적이라는 것이 최 교수의 설명이다.
최 교수는 “이번 딥시크 출현을 계기로 전 세계 과학자가 추론형 AI 제작에 뛰어들 가능성이 커졌다”며 “그동안 만드는 방법을 추정만 했고 H100 같은 고가의 그래픽처리장치(GPU)가 많이 필요한 천문학적 비용의 사업이라 여겨 자체 대규모언어모델(LLM) 제작에 회의적이었지만 이제는 상황이 바뀌었다”고 말했다. 딥시크가 미국 독점의 AI 시장에 균열을 냈다는 의미다.
이런 균열을 비집고 한국이 소버린 AI(자체 인프라에 기반해 독자적인 알고리즘과 데이터로 만든 AI)를 만들어야 한다고 최 교수는 주장한다. AI를 구성하는 데이터는 문화와 관습은 물론 정체성을 담고 있어 미국이나 중국의 추론형 AI가 범용화할 경우 삶의 미세한 부분까지 나도 모르게 영향받을 수 있다는 우려에서다. 딥시크가 고구려와 발해의 역사에 대해 ‘중국의 고대 역사에 속한다’는 답을 한 것이 한 예다.
최 교수는 “미래에 AI는 물, 공기와 같은 존재로 눈에 보이지 않지만 어디에나 존재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최 교수는 “우리나라처럼 네이버, 카카오와 같은 토종 플랫폼이 있고 자체적으로 방대한 양의 데이터가 확보된 나라는 미국과 중국을 제외하고 없다”며 “여기에 추론형 AI 제작 방식에 대한 실마리가 풀렸으니 서둘러 독자적 AI로 최소한 미국과 중국을 쫓는 ‘3위 전략’을 취해야만 한다”고 강조했다.
다만 우리에게 주어진 시간은 앞으로 1년 정도에 불과하다는 것이 최 교수의 생각이다. 이 ‘골든타임’을 놓칠 경우 미국이나 중국 AI에 대한 경로 의존성이 굳어지는 것은 물론 기술 격차가 벌어질 것이기 때문이다. 또 그 과정에서 정보기술(IT) 인재들이 유출돼 기술자 부재로 개발이 요원해지는 지경에 이를 것이란 판단에서다. 최 교수는 “최근 샘 올트먼 오픈AI 최고경영자(CEO)가 카카오와 동맹을 맺은 게 결국 그들에게는 없는 카카오의 서비스와 데이터를 이용하려는 것”이라며 “만약 국내 기업이 오픈AI에 기대 자체 AI 제작을 포기할 경우 라인, 야후 등 외국 플랫폼에 의존하는 일본의 전철을 밟게 될 것”이라고 우려했다.
그러면서 최 교수는 정부의 역할을 강조했다. △인재전략 수립 △인프라 지원 △데이터 규제 완화 이 세 가지를 정부가 해결해 줘야만 소버린 AI 구축이 가능하다는 것이다. 최 교수는 “대학에 석박사 AI 전문 인력을 대규모로 키울 수 있는 환경 및 H100 이상의 GPU 약 10만장 확보를 위한 자금 투자와 더불어 개인정보 활용에 대한 ‘규제샌드박스’ 적용 등이 당장 필요하다”며 “인재는 기다리지 않는다. 지난해 정부의 연구개발비 삭감 때 석박사 엑소더스(대탈출)를 목격하지 않았느냐”고 반문했다.
채명준 기자 MIJustice@segy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