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정의 “전국민에 AI 비서 보급”
인터넷·모바일 시대 주도하고
이젠 인공지능 패러다임 제시
최근 기업용 ‘AI 플랫폼’ 공개
오픈AI와 손잡고 기술 개발
기업 의사결정 효율 확 올려
손정의 소프트뱅크그룹 회장. [사진 출처 = 연합뉴스]
“스티브 잡스가 모든 사람의 손에 스마트폰을 쥐여 줬듯이 모든 사람에게 AI에이전트(비서)를 전달하고 싶다.”
손정의 소프트뱅크그룹 회장이 인공지능(AI)에 대해 꿈꾸는 미래다.
오픈AI와 구글, 마이크로소프트(MS), 여기에 중국의 딥시크까지 전 세계 수많은 기업이 AI 각축전을 벌이고 있다. 이런 가운데 이를 활용한 사업 모델을 제시한 경영인은 손정의 회장이 거의 유일하다.
1990년대 인터넷 시대의 도래를 예언하고 미국 야후와 중국 알리바바에 투자한 것, 2000년대 통신 시대를 선언하고 일본에 처음으로 스마트폰인 애플 아이폰을 도입하는 등 그가 가진 승부사 기질이 이제는 AI에서 다시 뿜어나오고 있다는 평가다.
손 회장은 AI를 통해 디지털에 늦은 일본 기업의 각성을 촉구하고 있다. AI로 모든 산업의 규칙이 ‘리셋(초기화)’되는 시대에서 새로운 기회를 찾으려면 기업이 AI로 무장해야 한다는 것이다.
1945년 패전 이후 공업화에 주력해온 일본은 기계공학과 전자공학 기술을 통해 첨단 제조업 실력을 갖췄다. 하지만 지난 30년간 소프트웨어의 존재를 간과하고 디지털보다는 아날로그에 집착하다 경쟁력을 조금씩 잃어가는 상황이다.
‘모노즈쿠리(장인정신)’로 요약되는 일본 기업의 경쟁력에 AI의 날개를 달면 다시 한번 세계 산업을 호령할 기회가 올 수 있다는 것이 손 회장의 판단이다.
이러한 AI에이전트의 하나로 그가 지난달 일본 기업을 대상으로 공개한 것이 ‘크리스털 인텔리전스’다. 일본 기업에 AI를 통한 변화의 바람을 일으키기 위해 손 회장이 선보인 사업 모델이다. 대기업용 최첨단 AI 서비스가 구체화되는 것은 일본이 처음이다.
손 회장은 먼저 소프트뱅크그룹 자회사에 이를 도입할 예정이다. 사용료로 연간 오픈AI에 4500억엔을 지급할 계획이다. 손 회장은 “일본 기업에 AI 비서를 주는 것”이라며 “AI는 인간 뇌의 활동을 모방하고 있어 모든 산업이 영향을 받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오픈AI의 기술을 활용하는 이 서비스는 기업에 맞춤형 AI 비서를 두는 것이다. 기업이 가진 시스템과 회의자료, 메일 등 모든 데이터를 활용해 업무 효율화와 의사결정을 지원할 수 있도록 해주는 것이 핵심이다.
손 회장은 “크리스털이 있는 회사와 없는 회사는 전기가 있는 나라와 없는 나라 정도의 큰 차이가 생긴다”며 “AI가 장기기억을 통해 회사의 모든 것을 이해할 수 있기 때문에 기업으로서는 큰 경쟁력을 갖추게 된다”고 강조했다.
손 회장은 2016년 “AI가 인류역사상 최대 수준의 혁명을 불러올 것”이라며 2017년으로 예정된 은퇴를 번복하고 현역으로 남았다. 그는 2035년에는 인간 지능의 1만배에 달하는 초인공지능(ASI)이 현실화될 것으로 보고 있다.
샘 올트먼 오픈AI 최고경영자(CEO)도 10년 이내에 인간의 지성에 육박하는 고성능 만능 AI인 AGI(범용 인공지능) 개발을 목표로 하고 있다. 소프트뱅크와 오픈AI가 손을 잡은 것도 AI에 대한 두 사람의 비전이 일치하기 때문이다.
손 회장은 “ASI의 실현을 위해서는 9조달러 규모의 투자가 필요하다”며 “이는 세계 GDP의 5% 수준으로 ASI가 실현되면 1년 만에 회수 가능한 금액”이라고 말했다.
이를 고려할 때 그가 올해 미국 백악관에서 발표한 ‘스타게이트’ 프로젝트에 투입되는 5000억달러(약 723조원) 규모의 투자는 큰 금액이 아니라는 얘기다. 그는 “경쟁에 이기기 위해서는 망설임 없이 ‘올인’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특히 데이터센터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또 보안 문제를 고려할 때 각국이 데이터를 처리해 자국민을 위한 AI로 변환해야 한다는 것이 그의 신념이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스타게이트를 반길 수밖에 없는 이유다.
손 회장은 “데이터센터를 다른 나라에 두게 되면 다른 사람에게 자신의 뇌를 주는 것과 같다”며 “도로와 같은 기본 인프라가 없으면 자동차 산업이 클 수 없는 것처럼 데이터센터와 전력망 같은 기반 시설은 AI 산업에 필수 요소”라고 강조했다.
다만 손 회장의 AI 도전을 불안하게 보는 분위기도 있다. 우선 상명하복식의 의사결정 구조에 익숙한 일본의 보수적인 기업문화에서 AI에 대한 의존도가 높지 않을 것이란 분석이다. 또 맞춤형 AI라고는 하지만 소프트뱅크의 시스템에 회사 모든 정보가 집결된다는 것에 대한 불안감도 크다.
니혼게이자이신문(닛케이)은 “궁극적으로 아마존이나 마이크로소프트(MS) 같은 업체와 경쟁해야 하는데 자금 규모면에서 소프트뱅크가 이겨내기에 벅찬 상황”이라며 “중국의 딥시크처럼 저비용 AI 개발이 가능해지면 미국의 AI 인프라에 5000억달러를 투자하는 손 회장의 구상은 과대하고 비효율적인 계획에 그칠 수 있다”고 우려했다.
이승훈 특파원(thoth@mk.co.kr)